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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5

소나무의 결을 새긴 삼각형 미술관

송은문화재단의 새로운 신사옥.
개성 없는 건물이 즐비한 서울 청담동 한복판에 거대한 삼각형의 콘크리트 건물이 우뚝 솟았다. SF 영화 속 우주선처럼 느껴지는 이 건물은 지난 30년 동안 한국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해 온 송은문화재단의 새로운 공간이다.
ST / 송은 빌딩 © Jihyun Jung. All rights reserved

 

서울 청담동에는 사치스러운 건물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건축물 하나, 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똑같은 디자인임을 알 수 있다. 아마 번쩍거리는 간판을 모두 치우면 청담동의 화려함은 사라지고 삭막함만이 남을지도 모른다. 특별한 특징이 없는 청담동 대로변에 날카로운 삼각형 건물이 우뚝 솟았다. 콘크리트로만 이루어진 기하학적인 건물은 SF 영화에서 본 듯한 기분도 든다. 이 독특한 형태의 거대한 건물은 주변의 천편일률적인 건물 사이에서 확연히 눈에 띈다.

 

ST송은 빌딩, 2021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 Jihyun Jung. All rights reserved

 

케이크 조각 같다는 평을 듣기도 하는 이 건물은 30여 년간 한국 젊은 미술가들을 후원한 송은문화재단의 새로운 공간이다. 그동안 송은문화재단은 송은아트스페이스와 송은아트큐브로 나눠져 전시를 진행했었다. 지난 2018년, 송은은 이 둘을 합쳐 하나의 건물을 세우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담당할 건축가로 스위스의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을 선택했다.

 

 

© oneslist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듀오 건축가다. 개인 주택부터 도시 디자인까지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 설계를 맡으며 위상을 떨치고 있다. 특히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 스위스 샤우라거 미술관, 미국 페레즈 미술관, 독일 노이에 갤러리, 홍콩 M+미술관 등 미술관 건축 설계 경험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설계한 미술관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건축 외에도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은 예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멤버 중 한 명인 헤르조그는 초창기 예술 활동을 했으며, 레미 차우그, 토마스 루프와 같은 아티스트와 꾸준히 협업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예술을 사랑하는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은 “미술관을 설계할 때는 크기보다 예술 및 건축과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송은문화재단 신사옥에도 사람과 미술관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작은 공유 공간이 마련되었다. 건물 오른쪽 입구를 지나면 누구든지 즐길 수 있는 작은 정원이 그것이다. 비록 생각보다 좁은 면적이라 아쉽지만, 건물과 자동차만 가득한 청담동에서 보기 힘든 자연 공간임에는 틀림없다.

 

ST / SongEun Building, 2021 © Jihyun Jung. All rights reserved

 

송은문화재단 신사옥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건물 외관이다. 건물 가까이 다가가 위를 올려보면 건물 외벽에 새겨진 나뭇결을 발견할 수 있다. 콘크리트로 만든 각 패널에는 각기 다른 소나무 결이 새겨 있는데, 이는 ‘송은(松隱, 숨어있는 소나무)’이라는 이름에서 영감을 받아 일일이 한 판씩 제작한 것이다.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은 콘크리트의 거칠고 차가운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번의 실험을 거쳐 문양 외에도 그만의 독특한 촉감을 찾아냈다. 공예적 특성까지 품은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의 콘크리트 작업은 신사옥 내 리딩룸에 전시되어 있다.

 

기묘한 건물 형태는 주변 환경과 법적 조건이 결합된 결과다. 청담동이라는 특성상 사용할 수 있는 부지가 그렇게 넓지 않았다. 그리고 신사옥이 위치한 대로변에는 높은 상업 건물이 나란히 서 있지만, 마주하는 뒤편에는 2~3층의 주택 건물들이 포진되어 있다.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은 주변 환경과 조화롭고 최대치의 연면적을 사용하기 위해 앞면 파사드는 높게 올리고 뒤로 갈수록 건물의 높이가 점점 완만해지는 삼각형이라는 형태를 선택했다. 덕분에 도로변의 높은 건물들과 이질감이 들지 않고, 뒤편의 주택가에도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는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신사옥 개관을 위해 내한한 피에르 드 뫼롱은 “건축이란 여러 가지 조건 안에서 최적의 경우의 수를 찾는 것입니다. 송은문화센터 신사옥은 합리적인 결정의 결과물이며, 특별하면서도 건축의 기능적인 면까지 충족시킨 프로젝트입니다.”라고 설명했다.

 

ST / SongEun Building, 2021 © Jihyun Jung. All rights reserved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의 미학과 기능이 조화로운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지상 11층, 지하 5층으로 구성된 건물 공간 중에서 전시 공간은 지상 2층, 지하 1층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건축가는 좁은 면적의 공간을 다양한 크기로 구분하여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전시 공간의 묘미는 벙커 같은 지하 2층이다. 공간 중앙, 로비층까지 뚫린 거대한 원형 통로는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거대한 통로는 조명 효과까지 담당하는데, 지상에서 들어오는 자연광과 인공광이 섞여 어두운 지하 갤러리에 빛이 부드럽게 퍼진다.

 

통로가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듯이, 로비에서 시작되는 나선형의 계단은 2층 갤러리와 건물 외부 정원과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동선과 시선을 유도한다. 로비에서 시작되는 계단은 반바퀴를 돌면 1층과 2층 중간에 마련된 계단식 극장의 좌석이 되어 또 다른 갤러리 공간을 만들어 준다.

 

개관전 전경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지은 송은문화재단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개관전을 9월 30일부터 11월 20일까지 개최한다. 전시에서는 신사옥이 완공될 때까지의 과정은 물론,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의 대표적인 건축물의 모형과 그를 촬영한 건축 사진,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이 창작한 예술 작품이 전시된다. 이와 함께 송은의 새로운 CI를 디자인한 슬기와 민, 3년간의 공사 과정을 영상과 사진으로 기록한 박준범·정지연 작가, 신사옥 이전 건물의 잔재물로 작품을 창작한 백정기·강호연 작가 등 국내 작가 7명이 송은문화재단 신사옥을 주제로 작업한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본 전시가 끝나면 송은문화재단의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인 <제21회 송은미술대상전>이 12월 10일부터 개최될 예정이다. 전시는 무료이며, 네이버 예약을 통해 예약을 해야 관람할 수 있다.

 

 

허영은

자료 제공 송은문화재단

장소
송은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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