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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1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사진

남종현, 필름카메라의 맥을 잇다.
옛 금고가 있던 창고가 갤러리로 변신했다. '갤러리 SAFE'라는 전시 공간을 오픈한 여의도 한국수출입은행 본점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첫 개관전의 주인공은 필름카메라로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사진을 작업하는 남종현 작가이다.
한국수출입은행 여의도 본관 전시 전경

 

한국수출입은행은 수출입 회사들에게 장기 자금을 빌려주고 경제협력기금 등의 사업에 금융 지원을 하는 곳으로, 일반인이 여간해서 방문할 일이 없는 장소다. 그런 한국수출입은행이 사용하지 않는 창고 공간을 갤러리로 만들어 한국 문화의 예술적 가치를 알리고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금고미술관’이라는 뜻을 살려 ‘갤러리 SAFE’라 이름 붙이고 첫 개관전으로 남종혁 작가의 <공백>을 열었다.

남종현, , 2016, 210*210, 한지 Pigment Print

 

남종현 작가는 필름 카메라 마지막 세대다지금은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이 낭만적인 일이지만 그때는 달랐다필름이 비싸기 때문에 셔터 하나를 누르는 데에도 신중할 수밖에 없었고 현상과 인화를 기다리며 어떤 작품이 나올지 상상하고 고대했다의외의 발견과 기쁨을 느끼는 시간을 통해 사진을 바라보는 눈과 진중한 태도를 키웠다.

 

“나는 주로 풍경과 정물을 찍는다. 풍경은 흐르면서 지나가는 시간을 기록하는 방법으로, 정물은 그 기물을 빚고 사용한 선조들의 손길과 내면의 정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작업한다. 두 작업 모두 풍경과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나만의 노력이고 구애다.”

 

남종현, , 2016, 930*1100, 한지 Pigment Print

 

그의 사진을 보면 느낄 수 있다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빛과 각도에 대해 얼마나 충분히 고민했는지 말이다직접 사진을 인화하며 톤과 색채에 대한 감각을 익힌 사람과 컴퓨터 화면으로만 작업한 사람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실체가 사라졌을 뿐 의미와 경험은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을 그의 사진이 증명한다.

남종현, , 2021, 210*210, 한지 Pigment Print

 

남종현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담아낼 재료로 20년 넘게 한지를 고집해왔다한지 중에서도 전통 외발지를 사용한다외발지는 한지를 만드는 전통적인 초지 방법으로 흘림 뜨기 방식을 사용해 질기고 보존성이 탁월해 조선왕조실록에도 사용되었다좋은 한지를 찾기 위해 전국의 한지 장인을 찾았고 완벽한 표현을 위해 미국에서 특별히 공수한 잉크로 작업한다.

 

“한지를 백지라고도 하는데 그 백자가 흰 백자가 아니라 일백 백자를 쓰는 이유는 닥나무를 베고, 찌고, 삶고, 말리고, 벗기고, 또 삶고, 두드리고, 종이를 뜨고, 말리고, 두드리는 아흔아홉 번의 손길을 거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종이를 쓰는 사람이 백 번째로 만져 종이로 완성된다는 지장의 말을 들으며 내가 사진으로 담는 대상이 머물 곳은 바로 이곳이라는 결론을 내게 되었다.”

남종현, , 2021, 600*600, 한지 Pigment Print

 

한지에 인화된 사물은 수묵화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사진에 찍힌 사물의 그림자를 지우는 작업을 통해 회화 작품 같은 사진을 만든다. 그것이 풍경이라 할지라도 그의 작품은 사물을 재현하는 사진의 기능을 벗어나 회화 작품 한 점을 마주한 느낌을 준다.  폭의 동양화 같고, 흑백 오브제 같다. 

 

 

자료 협조 한국수출입은행

장소
한국수출입은행 본점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38)
일자
2021.09.13 - 20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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