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제작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올해로 18회를 맞았다. 11월 6일부터 8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국내외 255팀이 참여해 사진집, 아티스트북, 진(zine) 등 개성 넘치는 출판물을 선보인다. 평소 서점에서 만나기 어려운 책을 발견하고, 만든 사람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다. 100권 이상의 신간을 처음 공개하는 전시를 비롯해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사흘간 펼쳐지는 책의 축제에서 무엇을 놓치지 말아야 할까? 눈여겨볼 프로그램과 에디터가 고른 부스 열 곳을 소개한다.
18년째 이어진 독립출판 축제
관람객 900명, 판매된 책 900권. 2009년 처음 열린 제1회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성적표다. 지금의 규모를 생각하면 소박한 시작이다. 독립서점 유어마인드를 운영하던 이로는 책을 만드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서로 만날 기회가 부족하다는 고민을 안고 있었다. 독립출판물은 기존 유통망을 통해 독자를 만나기 어려웠고, 제작자 역시 자신의 책이 누구에게 읽히는지 알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판을 벌이기로 했다. 창작자들이 자신의 책을 들고 나와 독자와 만나는 시장을 연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행사는 2017년부터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개최되며 규모를 키웠고, 이제는 매년 2만 명 이상이 찾는 국내 대표 아트북페어로 자리 잡았다.
규모가 커지면서 참가팀의 면면도 한층 다양해졌다. 개인 창작자와 소규모 출판사는 물론 그래픽 디자이너, 사진가, 예술가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책을 들고 모인다. 누군가는 오랫동안 수집한 자료를 책으로 엮고, 누군가는 자신의 작업을 새로운 인쇄와 제본 방식으로 표현한다. 주제도 형식도 제각각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제작자들이 직접 부스를 운영하며 독자와 마주한다는 것.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면 어떤 계기로 만들었는지, 종이와 디자인은 왜 그렇게 선택했는지 이야기를 나눠볼 수도 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해마다 새로운 작업을 소개하는 데도 공을 들인다. 참가 조건 중 하나가 해당 연도에 발간한 신간을 보유하는 것이다. 주최 측 역시 매년 행사에 맞춰 포스터와 서체 등 시각 디자인을 새롭게 선보인다. 덕분에 여러 해 참여해 온 익숙한 출판사의 신작은 물론, 처음 참가하는 창작자들의 작업도 만날 수 있다. 18년째 이어지는 행사지만 해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이유다.
책만 구경하고 돌아가기엔 아쉽다
255팀의 부스를 어디부터 둘러봐야 할지 고민된다면 2층 프로그램룸을 먼저 찾아가 보자. 〈초신간 환영회 Just Published〉에서는 이번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처음 공개되는 신간 100권 이상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갓 세상에 나온 책들을 미리 살펴보고, 관심 가는 출판사의 부스를 찾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행사 첫날에는 조금 특별한 달력도 만들 수 있다. 〈함께 만드는 나만의 2027〉은 약 100팀이 디자인한 열두 달의 달력 중 마음에 드는 낱장을 골라 한 권으로 엮는 프로그램이다. 11월 6일 금요일에만 진행되며,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후원사들이 마련한 특별 부스에도 흥미로운 기획이 숨어 있다. 뉴스레터 플랫폼 스티비는 엠디랩프레스와 함께 진(zine) 『After Send』를 만들었다. 일곱 팀의 창작자가 뉴스레터를 발송한 뒤 만난 사람과 새롭게 얻은 기회,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것들을 ‘뉴스레터의 효능’이라는 주제로 풀어냈다. 행사장 곳곳에는 관람객끼리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랜덤 레터’ QR 코드도 설치된다. 코드를 발견하면 같은 날 같은 공간에 있는 누군가에게 익명의 편지를 보내거나, 다른 사람이 남긴 편지를 받아볼 수 있다. 한국파이롯트는 익숙한 말을 새롭게 표현하는 놀이를 제안한다. ‘대박’, ‘레전드’처럼 입버릇처럼 사용하는 단어를 자신만의 문장으로 바꿔 쓰는 것이다. 가령 ‘레전드’를 ‘가히 독보적이네’, ‘전무후무한 일이네’, ‘두고두고 회자될 일이야’처럼 표현하는 식이다.
종이를 좋아한다면 두성종이 부스에서 발길이 멈출지도 모른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아카이브 바인더’다. 글을 매개로 전시와 출판 프로젝트를 펼치는 ‘수건과 화환’과 함께 선보이는 제품으로, 전시 리플릿이나 진(zine), 미니 포스터처럼 흩어지기 쉬운 인쇄물을 한데 모아 보관할 수 있다. 전시나 여행에서 챙겨 온 종이들을 어떻게 보관할지 고민했다면 반가운 물건이다. 이 밖에도 문구 편집숍 포인트오브뷰와 협업한 노트 ‘라이팅 패드’, 주요 종이 47종에서 312가지 색상을 추린 샘플집 ‘두성종이 서치엔진’을 선보인다.
어디부터 둘러봐야 할지 고민된다면
올해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참가하는 255팀 가운데는 자신만의 공간을 운영하는 이들도 있다. 그중 인상적인 작업을 선보이는 국내 일곱 팀과 해외 세 팀을 선정했다. 건축 전문 서점부터 사진집을 소개하는 갤러리, 독립출판물을 직접 제작하는 인쇄 스튜디오까지. 저마다의 취향으로 꾸린 공간에서 책과 사람을 이어온 이들이 이번에는 북서울미술관에 모인다. 평소 어떤 공간을 운영하고, 어떤 작업을 펼쳐왔는지 함께 살펴보자.
PRNT | 1층 C-7
‘글만 있는 책은 팔지 않는다.’ 서울 상도동의 독립서점 PRNT(프린트)가 책을 고르는 조금 특별한 기준이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과 만화, 해외 독립출판물을 주로 소개하는 이곳은 웹툰 작가 써니사이드업(박선희)이 2021년 문을 열었다.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찾던 그는 비슷한 고민을 가진 동료 창작자들을 위해 직접 공간을 마련했다. 1층 서점과 2층 갤러리, 3층 출판 작업실로 구성된 PRNT에서는 책을 소개하고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물론, 자체 출판사 PRNTpress를 통해 새로운 책을 제작한다. 이번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는 지난 10월 PRNT에서 개인전을 연 와니 소우마(Wani Souma)의 미니 키링 작품집을 최초 공개한다. 전시에서 선보인 인형들을 모아 가로 50mm, 세로 70mm의 앙증맞은 책으로 제작했다.
도미노프레스 | 2층 L-12
건축과 예술을 중심으로 책을 펴내는 출판사 도미노프레스는 지난해 8월 연남동에 건축 전문 서점 ‘도미노 아키텍처 북샵’을 열었다. 국내외 건축 신간은 물론, 출간된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작품과 건축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다른 분야의 책까지 두루 소개한다. 건축적 사고를 바탕으로 책과 공간, 사람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 온 출판사의 관심사가 서가에도 반영된 것이다. 최근 출간한 책에서도 이러한 시선을 엿볼 수 있다. 김수진의 『우연과 상상의 장소』는 ‘어쩌다 책방’을 10년간 운영하며 거쳐 온 열두 공간의 이야기를 담았고, 공간 디자이너 김기석의 『수행의 집』은 집을 소유와 휴식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그곳에서 살아가는 일과 잃어버린 집의 감각을 탐색한다. 두 책 모두 건축과 공간을 일상의 경험과 감각을 통해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소장각 | 2층 J-15
태국의 문방구, 미얀마의 달력, 말레이시아의 간판. 조금 낯선 소재들이 소장각에서는 한 권의 책이나 진(zine)으로 탄생한다. 그래픽 디자이너 노성일이 운영하는 소장각은 동남아시아의 시각문화를 탐구하는 1인 출판사이자 디자인 스튜디오다. 『태국 문방구』, 『미얀마 8요일력』, 『크메르 문자 기행』 등 현지의 일상과 문화를 독창적인 시선으로 기록해 왔다. 책의 내용뿐 아니라 종이와 서체, 색감까지 세심하게 디자인하는 것도 특징이다. 이러한 관심은 출판을 넘어 자신이 수집한 자료와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활동으로도 이어진다. 동교동의 작업실에는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수집한 아트북 500권 이상이 모여 있는데, 이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예약제 프로그램 ‘소장각 리딩룸’을 운영한다. 건축과 타이포그래피, 매거진 등 매번 다른 주제로 책을 소개하며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운 이 지역의 시각문화를 공유한다.
닻프레스 | 2층 I-24
사진가들이 꾸준히 작업하고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환경. 주상연 대표가 2010년 닻프레스를 설립한 이유다. 닻프레스는 사진가와 디자이너, 북아티스트가 함께 시각예술을 중심으로 책을 만드는 출판사다. 작가의 작업을 한 권의 책에 온전히 담기 위해 종이와 인쇄, 제본 방식까지 세심하게 고민한다. 이러한 활동은 책을 전시하고 독자와 나누는 공간으로도 이어졌다. 서울 구의동에 마련한 ‘D’ARK ROOM(다크룸)’에서는 1,000여 권의 사진집과 시각예술 서적을 열람할 수 있으며, 전시와 강연, 작가와의 대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올해 봄에는 아름다운 책을 만드는 세계 각국의 출판사 아홉 곳을 소개하는 전시 〈Bibliophily〉를 열기도 했다. 이번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는 산책길에 채집한 식물을 압화한 김윤수의 아티스트북 『the other year』와 알츠하이머를 앓던 남편을 돌본 시간을 사진과 글로 기록한 발레리 용옥 김의 『Only the Bones』 등을 선보인다.
Poets&Punks | 2층 I-4
삼청동 서점 ‘커리큘럼(Curriculum)’에는 요즘 영국에 관한 책들이 가득하다. 왕실과 펑크 문화, 브루탈리즘 건축부터 맨체스터의 축구와 음악까지. 커리큘럼은 하나의 주제를 정해 책과 음반, 물건을 큐레이션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새로운 주제로 서가를 채우는 독특한 서점이다. 첫 번째 주제인 ‘소녀(The manner of girl)’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인 주제는 ‘The Brit Edit’. 영국 문화와 역사를 다양한 시선으로 살펴볼 수 있는 수백 권의 책을 모았다. 이곳을 운영하는 Poets&Punks(포엣츠앤펑크스)는 런던을 기반으로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독립출판사다. 한식 안주와 내추럴 와인의 조합을 소개한 『Anju & Banju』, 서울의 숨겨진 모습을 기록한 『A Journey to Modern Seoul』, K팝을 넘어 한국의 다채로운 음악을 조명한 『Fighting for Your Right to Party』 등을 펴냈다. 이번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는 그동안 출간한 책과 직접 수집한 빈티지 서적, 출판물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굿즈까지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kozelnants | 1층 G-17
인사동 인사관 4층에 자리한 코젤앤엔츠(kozelnants)는 빈티지 의류와 예술 서적을 함께 소개하는 작은 편집숍이다. 특히 사진집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일본의 가와우치 린코와 아라키 노부요시부터 국내 사진가 양승우의 작업까지 국내외 사진집과 구하기 어려운 중고 서적을 폭넓게 다룬다. 책을 수집하는 데서 나아가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최근 펴낸 『종로 호스트(Jongno Host)』는 고을희가 2017년부터 2025년까지 종로에서 아이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엮은 책이다. 평범한 거리와 골목에서 포착한 장면들이 작은 판형의 사진집에 담겼다. 이들의 활동은 전시 공간 ‘스페이스 앤트(Space Ant)’로도 이어진다. 다양한 작가의 작품과 시각적 실험을 소개하며 빈티지 의류부터 사진, 출판, 전시까지 자신들만의 취향을 펼쳐 보이고 있다.
고스트북스 × 리틀룸 | 1층 A-5
대구 교동에 있는 고스트북스는 작은 서점이자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독립출판사다. ‘고스트’라는 이름에는 평소 눈에 띄지 않던 창작자가 작품을 발표하는 순간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작가 김인철과 일러스트레이터 류은지가 함께 운영하는 이곳에서는 예술과 디자인, 우주과학부터 해외 독립출판물까지 두 사람의 취향이 반영된 책들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언리미티드 에디션에는 일러스트 브랜드 ‘리틀룸(little room)’과 함께 참가한다. 류은지가 작은 작업실에서 마주한 자연과 일상의 풍경을 따뜻한 색감으로 그려내는 브랜드로 이번 행사에서는 포스터와 엽서, 문구류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BOOK AND SONS | 1층 B-10
도쿄의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한 BOOK AND SONS(북앤선즈)는 타이포그래피와 그래픽디자인을 전문으로 다루는 서점이다. 디자인 회사 풀사이즈이미지를 운영하던 가와다 오사무가 오랫동안 수집해 온 디자인 서적을 바탕으로 문을 열었다. 일본어와 영문 서체를 다룬 전문 서적부터 그래픽디자인, 사진, 건축에 관한 책까지 신간과 희귀 고서를 폭넓게 소개한다. 공간에서도 디자인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높은 천장과 커다란 창, 벽면을 가득 채운 나무 서가가 인상적이며, 한편에는 전시 공간도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는 사진가와 일러스트레이터의 전시를 비롯해 책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여 왔다.
Terry Bleu | 2층 J-5
책 한 권이 전시가 될 수 있을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독립출판사 테리 블루(Terry Bleu)는 책을 ‘휴대할 수 있는 작은 전시’로 바라본다. 2016년 프랑스 출신 작가 위고 로치(Hugo Rocci)가 설립한 곳으로,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과 협업해 개성 넘치는 아트북과 진(zine)을 제작한다. 특히 리소그래프와 실크스크린 인쇄를 활용한 대담한 색감과 자유로운 표현이 특징이다. 암스테르담의 작업실에는 작은 서점 ‘Terry’s Bookstore’도 마련돼 있다. 직접 제작한 출판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독립출판사의 책을 소개하고, 신간 출간 행사도 개최한다. 국내 고스트북스와 키오스크키오스크 등에서도 테리 블루의 출판물을 소개해 온 만큼 독립출판 애호가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이름일지도 모른다. 이번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는 테리 블루 특유의 유쾌한 감각과 인쇄 실험이 담긴 책들을 만나볼 수 있다.
Quintal | 2층 K-13
프랑스 파리 퀸탈(Quintal)은 리소그래프 인쇄를 전문으로 하는 출판·디자인 스튜디오다. 2018년부터 다양한 예술가,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며 아트북과 포스터, 실험적인 인쇄물을 제작해 왔다. 리소그래프 특유의 색감과 질감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 종이와 인쇄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표현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러한 활동은 2021년 문을 연 서점 겸 갤러리 ‘Quintal Librairie Galerie’로도 이어졌다. 퀸탈이 직접 제작한 출판물과 세계 각국의 독립출판물을 소개하고, 작가들의 전시와 출간 행사도 개최한다. 현재는 인쇄 작업실과 서점을 별도로 운영하며 책을 만들고 소개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글 김기수 기자
자료 및 사진 출처 언리미티드 에디션, PRNT, 도미노프레스, 소장각, 닻프레스, Poets&Punks, 고스트북스, 리틀룸, BOOKANDSONS, Terry Bleu, Quint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