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8

볼티모어 해안가의 낡은 집

부산에 들어선 아메리칸 빈티지 하우스.
웻에버(WETEVER)는 신생보단 재생이란 가치에 집중한 공유 주택이다. 80년대 노후 건물을 허물고 다시 설계한 뒤 이내 매력적인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건 클래식과 오래된 집을 사랑하는 스물 일곱의 청년들이었다. 번쩍이는 타일 자리엔 폐교의 나무 바닥이 깔렸고, 길들지 않은 새 가구 대신 손수 복원한 빈티지 가구들로 꾸며진 이곳. 광안리 특유의 바다 내음과 기분 좋은 축축함으로 뒤덮인 영화 같은 숙소, 웻에버를 소개한다.
© WETEVER

 

웻에버를 이끄는 ‘27club’은 어떤 팀인가요?

공간을 기반으로 재생의 가치를 해석하는 공동체입니다. 처음엔 저와 파트너, 단둘이 시작했어요. ‘좁은 나라에 온 사방이 건물 천지인데 굳이 새로 지을 필요가 있을까?’란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사이였죠. 이후,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팀을 이룬 뒤 낡은 집 개조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상업 공간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할 만할 주거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공간을 계속 유지하려면 상업적 요소가 필수불가결했고, 이로 인해 집을 닮은 ‘숙소’란 분야에 도전하게 됐어요.

 

© WETEVER

 

광안리가 보이는 바다 앞 대신 주택가인 민락동 안쪽에 자리 잡았어요. 프로젝트 취지와도 관련이 깊다던데.

민락동은 재개발 얘기가 심심찮게 들릴 정도로 오래된 건물이 많은 곳이에요. 처음부터 깨끗한 건물과 좋은 상권을 갖춘 구역이 아닌 이런 장소를 원했습니다. “낡은 건물을 멋지게 리노베이션 해 작은 공간으로 큰 골목을 만들어 보자. 그럼 동네도 자연스레 재밌어지겠지”란 생각이 우리의 취지이자 목표였어요.

 

 

디자인부터 설계까지 직접 도맡아 하셨다고 들었어요. 모티프가 된 것은 영화 <세이브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이었죠.

전 영화광이에요. 사실 꿈도 영화 쪽이었고요. 항상 영화를 촬영한다고 생각하며 작업에 임해요. 설계는 마치 시나리오를 짜는 일과 같아요. ‘이 공간엔 이런 주인공이 살았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단초 삼아 구도 잡습니다. 영화 <세이브 오브 워터>의 축축함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웻에버의 첫인상도 ‘축축하게 젖은 집’이었거든요. 그렇게 ‘6,70년대 볼티모어 해안가의 낡은 집’을 콘셉트로 삼았아요. 요새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허연 콘크리트의 공간보단, 웻에버만의 심해 같은 느낌을 살려 디자인했습니다.

 

© WETEVER

 

작업 과정도 궁금해요. 모든 것을 손수 해내야 하는 만큼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가스 시공같이 특별한 능력을 요하는 것을 제외하곤 전부 직접 작업해요. 페인트를 칠하고 배관을 까는 것까지 거의 모든 일을요. 이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어요. 가구 공방에 다니고 실제 현장에서 목수 일을 배웠죠. 부족한 부분은 유튜브나 외국 사이트, 각종 문헌을 참조하며 공부했어요. 현장과 공방에서 일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 WETEVER

 

에메랄드빛 벽지와 우드톤 가구의 조화가 돋보입니다. ‘아메리칸 빈티지 하우스’라는 타이틀이 딱 들어맞아요.

초록색을 좋아해요. 깊고 차분하며 심해처럼 신비로운 컬러잖아요. 아무래도 젖은 집을 더 젖게 하려다 보니, 축축함이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한 초록색을 찾기 위해 노력했어요. 클래식과 미래가 공존했던 미국의 6,70년대 분위기 역시 좋아합니다. 평소 스페이스 에이지의 광팬이기도 했고, 오마주한 영화의 배경이기도 해 이것저것 잘 들어맞았어요.

 

© WETEVER

 

목재 바닥에 특히 많은 신경을 썼어요. 폐교에서 자재를 구해 일일이 성형을 마쳤고요.

옛날 폐교에서 쓰던 나무를 구하고 싶었어요. ‘삐거덕’ 할 것 같은 복도 소리가 연상되게끔요. 보관 상태가 좋진 않았지만, 수소문하던 오래된 적목(赤木)과 아비동(apitong)을 김해에서 구할 수 있었어요. 목재가 단단한 탓에 전처리에도 애를 먹었죠. 쉐브론 패턴에 맞춰 일일이 잘라냈어요. 틈새는 톱밥으로 메우고, 다시금 평탄하게 사포로 갈아내는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깊고 묵직한 느낌이 나도록 발색도 새로 하고 마감도 다시 했어요. 인내와 고뇌의 과정이었어요. 저희들 끼린 우스갯소리로 ‘5천만 원짜리 바닥’이라고 말하곤 해요. (웃음) 그래도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부분이에요.

 

© WETEVER

 

공간 구성에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웻에버는 재밌는 복층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집이 좁고 깁니다. 가파른 계단을 오로지 위만 보고 올라가야 해요. 이를 포인트로 삼아 층마다 다르게 레이아웃을 잡았어요. 1층은 심해에 잠긴 모습으로, 2층은 뭍으로 나오는 느낌으로요. 그렇지만 콘셉트가 다르다고 해서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차이를 두고 싶진 않았어요. 색감은 다를지언정 한 공간으로 느껴질 수 있었으면 해요.

 

© WETEVER

 

루프탑에서는 신진 작가를 위한 전시를 운영하고 있어요.

전시 공간의 이름은 ‘Artist’s Cabin’입니다. 현재는 “A dreamer”라는 주제로 전시 중이에요. 이 공간에 살았을 법한 페르소나를 상상하며 작가님을 섭외했어요. 그러다 찾은 분이 ‘엄주’님이었고요. 날카로우면서 러프한 크로키가 웻에버와 아주 잘 어우러집니다. 공간과의 조화도 훌륭해 작품 설치를 마친 뒤 다 같이 환호를 질렀던 기억이 나요.

 

@rotenbaum_official

 

전주에서의 두 번째 독립 건축 프로젝트, ‘로텐바움’을 준비 중이에요.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가상의 주인공인 프랑스인 조르그(zorg)가 독일의 낡은 친구 집을 고쳐 살아간다는 상상으로 탄생한 공간이에요. 50년 된 주택을 개조했어요. 뼈대만 남겨놓은 뒤 벽을 다시 세웠고 방의 배치나 구조도 모두 바꿨죠. 웻에버가 60년 대 미국 항구 도시를 슬로건으로 삼았다면, 로텐바움의 슬로건은 ‘공생’이에요. 막 작업을 마쳐 현재 가오픈 중에 있습니다.

 

© WETEVER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계획을 세운다고 계획대로 되진 않더라고요. 어쩌다 회사를 그만둔 뒤 웻에버를, 또 로텐바움을 만들게 된 것처럼요. 곧 처음으로 상업 공간에 도전합니다. 올해의 목표는 이곳의 완공과 작업실 시공이에요. 사무실과 공방을 겸한 작업실을 만들어 가구를 제대로 제작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후엔 저희의 공간을 통해 작은 단편 영화를 만들어 볼 예정입니다.

 

 

지선영

자료 협조 웻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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