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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6

오대수의 갈깃머리, 금자의 붉은 눈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분장감독 송종희의 30년 〈FACE TO FACE: 얼굴의 변주〉

전시장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가늠하기 어렵다. 영화 속 장면을 다시 들여다보고, 작업 중에 남긴 기록을 읽고, 익숙한 배우의 얼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한참을 머물게 된다. 마음만 먹으면 몇 시간이고 보낼 수 있을 만큼.

 

〈FACE TO FACE: 얼굴의 변주〉는 분장감독 송종희가 지난 30년간 만들어온 얼굴과 그 과정을 한자리에 펼쳐 보이는 전시다. 1995년 영화계에 들어선 이후 〈올드보이〉, 〈괴물〉, 〈밀양〉, 〈은교〉, 〈아가씨〉, 〈헤어질 결심〉, 〈왕과 사는 남자〉 등 수많은 작품을 거치며 배우의 얼굴 위에 시간과 성격, 삶의 흔적을 쌓아왔다. 우리가 스크린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캐릭터 뒤에 얼마나 많은 조사와 테스트, 수정과 선택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분장은 촬영이 끝나면 지워진다. 가발은 벗겨지고, 피부 위에 더해진 흔적도 사라진다. 이번 전시는 한 분장감독의 대표작을 모아놓은 회고전이라기보다, 영화 속에서 잠시 존재했다가 사라진 얼굴과 그 얼굴을 만들기 위해 축적된 시간을 다시 꺼내는 자리다. 작은 전시장 안을 오래 서성이게 된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얼굴을 만드는 일

영화 분장은 배우가 거울 앞에 앉기 훨씬 전부터 시작된다. 시나리오를 읽고 인물의 나이와 성격, 직업, 생활환경을 파악한다. 시대와 계급, 살아온 시간에 따라 피부와 머리카락이 어떻게 달라질지 고민하고, 이야기 흐름에 따라 얼굴이 어떤 상태로 변해갈지 설계한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연속성을 지키는 일도 분장의 몫이다. 촬영 순서와 서사가 다르게 진행되는 만큼, 인물의 상태를 끝까지 기억해야 한다.

 

전시장 한편에 적힌 ‘배우 얼굴 위에 인물의 서사를 새기는 일’이라는 문장은 송종희가 지난 30년간 해온 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물을 이해하고, 그가 살아온 시간을 상상하고, 필요한 만큼 더하거나 덜어내며 스크린 안에서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도록 한다. 때로는 눈에 띄는 변화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듯 보이는 선택이 더 중요하고, 완성도가 높더라도 인물과 맞지 않으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기술력보다 인물을 얼마나 정확하게 읽었는지가 포인트다. 송종희 분장 감독은 지난 30년간 쌓아온 작업물을 이번 전시를 통해 다시 펼쳐 보였다. 완성된 얼굴뿐 아니라 그 얼굴에 도달하기까지의 시행착오를 함께 꺼내놓으며 분장감독이라는 직업의 보이지 않는 과정을 보여준다. 

30년의 기록을 하나의 전시로

전시장에 방문한 배우 김고은 출처: 김고은 인스타그램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익숙한 얼굴들을 마주하게 된다. 김혜수, 이영애, 최민식, 전도연, 송강호, 이병헌 등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작품마다 어떤 모습으로 변해왔는지, 그 과정을 하나씩 따라갈 수 있다. 기록은 놀랄 만큼 구체적이다. 배우와 함께 보낸 시간을 되짚은 송종희의 글은 이번 전시의 백미다. 분장 방식이나 기술을 설명하는 기록이라기보다 한 사람을 오래 가까이에서 바라본 이가 남긴 에세이에 가깝다. 어떤 배우와는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리고, 어떤 배우와는 수많은 작품을 함께하며 쌓인 신뢰를 돌아본다. 분장감독은 촬영 현장에서 배우의 얼굴을 가장 가까이에서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 중 하나다. 배우가 그 인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함께 만들어가는 셈이다.

전시장에 방문한 배우 이영애 출처: 이영애 인스타그램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동안 작업한 영화의 대본들이 이어진다.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가 실제 촬영에서 썼던 대본에는 배우들의 풋풋한 얼굴과 함께 실제 촬영 과정에서 달라진 대사, 장면의 변화, 상처의 위치와 분장 상태를 적어둔 메모까지 남아 있다.

 

이번 전시는 송종희가 직접 기획하고 구성했다. 몇 해 전부터 전시를 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고, 여러 차례 시도 끝에 결국 자신의 힘으로 30년의 기록을 꺼내놓았다. 영화 분장팀이 실제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문제의식도 그 배경에 있다. 그래서 전시장 곳곳에는 작품의 결과뿐 아니라 분장감독이라는 직업을 설명하는 문장과 작업 방식이 함께 놓여 있다. 한국 영화의 익숙한 얼굴들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얼굴 뒤에서 오랜 시간 영화를 읽고, 배우를 관찰하고, 장면과 장면을 이어온 사람의 시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사랑한 그때 그 얼굴들

〈올드보이〉 오대수

꼬일 대로 꼬인 삶을 머리로 보여주다

〈올드보이〉의 오대수를 생각하면 단연 사자 갈기처럼 부풀어 오른 곱슬머리가 떠오른다. 하지만 배우 최민식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할 법한 머리’라며 난색을 표했다. 송종희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4시간에 걸쳐 완성한 갈깃머리는 오대수의 외형을 넘어 인물 자체를 설명하는 장치가 됐다. 이는 단정한 중년 남성의 이미지를 벗어난 최민식의 새로운 얼굴이기도 했다. 한 인물의 내면과 지나온 시간을 외형으로 드러내는 분장의 힘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사례다.

〈친절한 금자씨〉 이금자

대사보다 먼저 완성된 붉은 눈

시나리오 속 이금자 분장에 대한 지시는 ‘스모키 아이섀도’ 정도였다. 하지만 송종희는 이미 대중에게 익숙한 이영애의 얼굴과 ‘복수’라는 감정 사이에 더 강한 균열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때 선택한 색이 빨강이었다. 눈가를 붉게 물들이고, 장면의 감정에 따라 색의 농도와 번짐을 조금씩 조절했다. 그렇게 완성된 붉은 눈은 금자의 복수심을 직접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인물의 안쪽에 쌓인 긴장을 먼저 보여주는 장치가 됐다.

 

흥미로운 건 분장이 영화의 서사를 따라간 데서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촬영이 진행되면서 금자의 붉은 눈은 캐릭터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됐고, 결국 박찬욱 감독은 그 모습을 받아 대사를 만들었다. 지금도 〈친절한 금자씨〉를 떠올리면 함께 따라오는 그 대사다.


“왜 눈만 시뻘겋게 칠하고 다녀?”
“친절해 보일까 봐.”

〈은교〉 이적요

노인을 만드는 데서, 한 사람을 만드는 일로

〈은교〉의 이적요는 송종희의 작업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남은 인물이다. 30대 배우 박해일을 70대 노인으로 만드는 일 자체도 큰 도전이었지만, 문제는 첫 테스트를 마친 뒤에 찾아왔다.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정교했고 노인처럼 보였지만, 송종희의 눈에는 정작 ‘이적요’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완성된 분장을 다시 걷어내고 처음으로 돌아갔다.

 

전시장에서도 〈은교〉는 유독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쪽 벽면 전체가 이 작품에 할애돼 있고, 테스트 이미지와 작업 기록은 물론 실제 분장 테스트 영상까지 볼 수 있다. 수많은 실패와 수정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이적요가 단순한 ‘노인 분장’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송종희에게 이 작품은 늙어 보이는 얼굴을 만드는 법보다, 한 사람의 시간과 내면을 얼굴에 남기는 법을 다시 배운 작업에 가까웠다.

〈파반느〉 미정

“오늘도 너무 예뻐”

송종희와 고아성의 인연은 〈괴물〉에서 시작됐다. 어린 배우였던 고아성이 여러 작품을 거치며 배우로 성장하는 시간을 가까이에서 지켜봤고, 그 신뢰는 〈파반느〉까지 이어졌다. 이번 작품에서 고아성이 맡은 미정은 설정상 ‘못생긴 여자’다. 하지만 송종희는 단순히 외모를 추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세상과 쉽게 섞이지 못하고 스스로를 숨기는 사람의 상태를 분장으로 표현하고, 사랑을 통해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을 담았다.

 

그리고 분장이 끝난 뒤에는 또 다른 작업이 이어졌다. 송종희가 말하는 ‘입으로 하는 분장’이다. 촬영 내내 고아성에게 “아성아, 오늘 너무 예뻐”라는 말을 수없이 건넸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못생긴 여자’를 연기한 고아성은 이 작품을 촬영하며 그 어느 때보다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괴물〉에서 처음 만난 어린 배우가 〈파반느〉의 미정이 되기까지. 두 사람이 쌓아온 시간과 신뢰를 생각하면, 이 말은 단순한 칭찬이라기보다 배우가 자신이 만든 인물을 끝까지 믿을 수 있도록 건넨 응원에 가깝게 들린다.

글·사진 김기수 기자

프로젝트
〈FACE TO FACE: 얼굴의 변주〉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홍연길 24
일자
2026.06.20 - 2026.08.09
시간
목요일 - 일요일 13:00 - 19:00
참여작가
송종희
김기수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 음주가무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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