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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2

지금 가봐야 할 연희동 새 공간 6

건축, 가구, 미식으로 완성한 산책 코스

매일 마주하는 풍경이 지겨워질 때면, 늘 걷던 길이 아닌 다른 골목으로 향한다. 발걸음의 방향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도 익숙한 동네가 낯설게 다가온다. 15년 가까이 연희동에 머물며 이곳의 변화를 지켜봐 왔지만, 요즘처럼 동네의 흐름이 신선하게 느껴진 적은 드물다. 최근 개성 있는 장소들이 잇따라 문을 열고, 아트 페어와 플리마켓처럼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행사도 부쩍 늘어난 덕분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변화가 어느 한 장르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갤러리와 빈티지 오브제 편집숍, 가구 쇼룸, 웰니스 카페가 각자의 방식으로 연희동의 풍경을 넓혀간다. 빠르게 소비되는 핫플레이스라기보다, 시간을 들여 머물고 싶은 장소에 가깝다. 연희동 특유의 호젓함 속에서 지금 가장 생생한 장면을 만들어가는 여섯 곳을 만나보자.

연희정음

© 길보경

연희동의 랜드마크인 사러가마트와 인접한 ‘연희정음’. 한국 1세대 건축가 김중업의 말년 주택을 복원해 조성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외관과 구조, 비례 등 건축적 뼈대는 최대한 보존하되, 전시와 문화 프로그램을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내부를 새롭게 정비했다. 오래된 주택이 지닌 아늑한 스케일과 함께 원형 계단, 스테인드글라스 창, 둥근 지붕처럼 김중업 건축 특유의 조형적 요소가 곳곳에 남아 있다. 이곳은 지난해 11월 새로운 쓰임을 얻고 다시 문을 연 이후, 분기마다 다양한 전시를 선보이며 연희동의 문화 거점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 길보경

현재 건축사진가 김용관의 개인전 〈풍경으로의 건축〉이 진행 중이다. 김용관은 오랜 시간 현대건축을 기록해온 사진가로, 건물을 단순한 피사체가 아닌 시간과 빛, 주변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달라지는 존재로 포착해왔다. 이번 전시는 건축과 풍경이 맺는 관계를 따라가며, 한 장의 사진이 형태뿐 아니라 장소의 맥락과 공기까지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종묘와 궁궐, 해방촌과 평창동 일대, 제주 수풍석 뮤지엄, 가파도, 울릉도 등 도시와 자연이 맞닿는 장면을 두루 만날 수 있다. 전시는 1층과 2층에 걸쳐 진행되며, 오는 7월 31일까지 이어진다. 근대건축의 흔적이 남은 공간에서 건축사진을 감상하는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연희정음을 산책의 시작점으로 삼아도 좋겠다.

© 길보경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희맛로 17-3

타바키 밀라노

© 타바키 밀라노

연희정음에서 도보로 1분 남짓이면 ‘타바키 밀라노’에 닿는다. 밀라노에 거주하며 가구 브랜드 ‘라보엘 빈티지’를 운영해 온 김한나, 남준우 대표가 선보인 오브제 편집숍이다. 브랜드명은 이탈리아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타바키(Tabacchi)’에서 착안했다. 현지에서 타바키는 담배뿐 아니라 티켓, 우표, 각종 생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상의 거점이다. 타바키 밀라노 역시 그 이름처럼 이탈리아의 감성과 문화를 편안하고 친근한 방식으로 소개한다. 실제 이탈리아 가정집에 들어선 듯 꾸민 매장에는 벽면을 채운 액자와 포스터, 곳곳에 놓인 오브제와 가구가 이탈리아 특유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드러낸다.

© 타바키 밀라노

이곳에서는 이탈리아와 유럽 각지에서 수집한 빈티지 소품을 만날 수 있다. 전체 컬렉션의 약 80%는 이탈리아 제품으로, 북유럽이나 다른 서유럽 빈티지와는 다른 대담한 형태와 섬세한 디테일이 눈에 띈다. 1940~50년대 이탈리아 현대 디자인을 대표하는 지오 폰티의 실버 플레이트 피처, 1969년 파비오 렌치가 디자인한 포커스 플로어 램프처럼 희소성 있는 피스도 눈여겨볼 만하다. 컬렉션은 1~2주 간격으로 꾸준히 업데이트되며, 오는 6월 중순에는 ‘파크먼트 연희’에서 라보엘 빈티지의 빈티지 가구 팝업 전시가 열리니 참고할 것.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희맛로 17-18

OSE 오리지널리티 사치

© OSE

연희동의 유명 맛집이 이어지는 대로변에 자리한 ‘OSE’. 부산에서 시작해 최근 이곳으로 거점을 옮긴 빈티지 가구 편집숍이다. 장 프루베, 샬롯 페리앙, 조지 넬슨처럼 디자인사에서 중요한 이름으로 꼽히는 디자이너의 컬렉터블 피스부터 빈티지를 처음 접하는 이들도 편안하게 살펴볼 수 있는 제품까지 폭넓게 소개한다.

 

쇼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블랙 마루로 마감한 1층이 시선을 끈다. 어두운 바닥 위에 놓인 프랑스 오리지널 피스는 목재와 메탈, 가죽의 질감을 한층 선명하게 드러낸다. 노출 콘크리트 벽과 통유리 너머의 나무, 그 곁에 놓인 피에르 잔느레의 가구가 어우러진 장면도 인상적이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오르면 분위기는 한층 생활 공간에 가까워진다. 테라스가 보이는 자리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둘러보면, 각기 다른 방을 지나듯 저마다의 무드를 지닌 가구와 오브제를 만날 수 있다.

© OSE

버건디 컬러 타일과 소나무 가구가 어우러진 구역은 샬롯 페리앙의 스키 리조트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아 구성했다. 이어지는 방에서는 메탈과 가죽 소재의 가구가 보다 묵직한 분위기를 만든다. 디터 람스(Dieter Rams)의 대형 유닛 시스템(Large Unit System)이 놓인 공간도 놓치지 말 것. 오래된 목재 바닥과 경사진 천장, 창밖의 녹음이 어우러져 마치 유럽의 오래된 주택이나 별장을 천천히 둘러보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장 프루베(Jean Prouvé)의 스칼 베드(SCAL Bed), 조지 넬슨(George Nelson)의 스테레오 캐비닛(Stereo Cabinet), 앙드레 소르네(André Sornay)의 캐비닛(Cabinet)처럼 희소성과 역사성을 지닌 작품도 눈에 띈다. 빈티지 가구가 어렵게 느껴졌다면, OSE는 좋은 시작점이 되어줄 것. 가구를 작품처럼 감상하는 동시에, 일상 속에서 어떻게 놓이고 쓰일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상상해볼 수 있는 장소다.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25길 82

템포라

© 템포라

매번 마시던 커피 대신 조금 색다른 음료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템포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이곳의 대표 메뉴는 일반 커피가 아닌 치커리 브루다. 치커리 뿌리를 로스팅해 우려낸 치커리 커피는 카페인 없이도 묵직하고 구수한 풍미를 지녀, 커피를 좋아하지만 카페인을 줄이고 싶은 이들에게 반가운 대안이 되어준다. 

© 템포라

아메리카노와 비슷한 인상을 주는 치커리 브루를 비롯해 아이스 치커리 브루, 치커리 라떼, 치커리 아포가토 등 치커리의 향을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우베 벨벳, 고수 빙수처럼 이름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메뉴도 갖췄다. 아담한 규모의 매장이지만, 좌석 간격이 넉넉해 잠시 쉬어가기 좋다. 날씨가 좋을 때면 바깥을 향해 앉을 수 있는 좌석도 있다. 산뜻한 컬러감과 아늑한 내부도 매력적이다.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다길 9

벨리시모

© 벨리시모

사러가쇼핑센터 인근 골목 안쪽, 커다란 이탈리아 국기가 먼저 시선을 끄는 작은 레스토랑이 있다. 지난 4월 문을 연 벨리시모는 연희동에서 이탈리아 요리를 선보이는 다이닝 공간이다. 번화한 대로변에서 살짝 벗어나 있어, 여행 중 우연히 발견한 동네 식당처럼 편안하게 다가온다. 

 

메뉴는 수플리와 뽈뻬떼, 지중해식 그린 샐러드, 갑오징어 오렌지 펜넬 샐러드, 비프 카르파치오처럼 식사의 시작을 열어주는 요리부터 봉골레, 까르보나라, 아마트리치아나, 볼로네제 등 기본에 충실한 파스타까지 폭넓게 구성된다. 튀긴 뇨끼와 고르곤졸라 소스, 트러플 라자냐, 감베리 리조또, 그린 페퍼콘 소스를 곁들인 한우 안심 스테이크도 준비되어 있어 점심과 저녁 어느 때 찾아도 좋다.

© 벨리시모

사의 끝에는 티라미수와 커피를 곁들이기 좋다. 이탈리아 산지에서 생산된 와인 컬렉션을 비롯해 유기농 갈바니나 오렌지 소다, 산베네데토 탄산수도 마련되어 있다. 연희동을 걷다 조금 더 느긋한 한 끼가 필요할 때, 벨리시모는 완벽한 선택지가 되어줄 것.

텀어스 연희

© 텀어스

연남동의 활기와 연희동의 느긋함이 만나는 길목, 텀어스 연희는 골목의 풍경을 한 박자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카페다. 태성골뱅이신사 연희점 2층에 자리한 이곳은 수원에서 시작한 카페 텀어스가 연희동에 새롭게 선보인 공간이다. 통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 넉넉한 좌석 구성, 곳곳에 놓인 디자인 가구와 조명이 어우러져 차분하고 편안한 무드를 완성한다. 방문객 대부분이 노트북을 펼쳐두고 작업을 하거나 조용히 머무는 분위기라, 업무를 보거나 독서하기에도 좋다. 

© 길보경

텀어스 연희의 시그니처 메뉴는 크림버터라떼인 ‘크림쇼떼’와 크림 더티 얼그레이 라떼인 ‘더티쇼떼’가 있다. 고소한 우디 향의 원두부터 꽃내음과 시트러스 향미를 지닌 원두까지 세 종류의 드립 커피도 준비되어 있어 취향에 따라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다. 커피 외에도 여름과 잘 어울리는 레몬 청귤 에이드, 자두 복숭아 에이드, 토마토 바질 에이드처럼 산뜻한 음료가 마련되어 있으며, 디카페인 티 메뉴도 갖췄다. 디저트 선택지도 다채롭다. 버터 애플파이를 비롯해 말차 바스크 치즈케이크, 흑임자 갸또, 에그 타르트, 말차 롤케이크 등 커피와 곁들이기 좋은 메뉴가 고루 마련되어 있다. 단, 노펫·노키즈 공간으로 운영된다는 점은 방문 전 참고할 것. 카페를 나서면 연남동 경의선숲길, 이른바 연트럴파크로 이어지는 길목과도 가까워 커피 한 잔 후 가볍게 산책을 이어가기에도 좋다.

길보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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