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30

박찬경이 스스로 ‘눈알’을 뽑은 이유

전통 회화에서 발견한 그로테스크
박찬경 작가 개인전 〈안구선사(眼球禪師)〉가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는 동명의 작품인 〈안구선사〉를 비롯해 회화 20여 점으로 구성되며, 3월 19일부터 5월 10일까지 이어진다.

사찰에 그려진 벽화나 탱화는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적·녹·군청색이 만드는 강렬한 대비와 신성하면서도 압도적인 형상은 보는 이를 압박하기도, 때로는 낯선 기운을 전하기도 한다. 박찬경은 그 지점을 작품으로 끌어올리는 작가다. 조선 민화와 사찰 벽화처럼 익숙한 이미지를 가져오되, 그것을 ‘전통 문화’라는 이름으로 정돈하지 않는다. 그로테스크와 숭고, 판타지와 유머가 뒤섞인 감각을 드러내며,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이미지를 다시 보게 만든다.

박찬경은 영상과 설치를 중심으로 작업해 온 작가다. 분단과 냉전, 민간신앙과 종교적 서사를 교차시키며 한국 사회의 기억과 믿음의 구조를 탐구해 왔다. 1997년 금호미술관 개인전 〈블랙박스〉를 시작으로 아틀리에 에르메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 등 국내외 기관에서 작업을 선보였다. 그의 이름에서 영화감독 박찬욱을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두 살 터울 형제이자, ‘파킹찬스(PARKing CHANce)’라는 이름으로 협업해 온 파트너다. 2011년 발표한 단편 영화 〈파란만장〉은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 부문에서 수상하면서 주목받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박찬경 작가가 국제갤러리에서 9년 만에 선보이는 개인전이다. 무엇보다 매체 변화가 눈에 띈다. 그동안 영상과 사진을 중심으로 작업해 온 그가 회화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박찬경은 오랫동안 중단했던 그림을 다시 시작했다며, 회화를 ‘고향 같은 존재’에 비유하기도 했다. 새로운 시도라기보다, 작업의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선택한 방향에 가깝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업은 민화와 탱화에서 출발했지만, 이를 그대로 재현하진 않는다. 서로 다른 형식을 뒤섞고, 과장하고, 변형하는 과정을 거치며 이미지의 결을 다시 조직한다. 그 안에 내재해 있던 그로테스크와 판타지, 해학적 감각이 드러나면서, 전통은 더 이상 고정된 유산이 아니라 끊임없이 갱신되는 이미지로 읽힌다. 작가가 전통을 보존 대상이 아니라 의문이자 에너지, 나아가 자원으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전시는 동명의 작품인 〈안구선사〉를 비롯해 회화 20여 점으로 구성된다.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 세 점을 먼저 소개한다. 

〈안구선사〉

중국 당나라 승려 구지선사의 일화를 변형해서 그린 작업이다. 스승의 동작을 따라 하던 동자승이 손가락을 잃고서야 깨달음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작가는 ‘눈’으로 치환한다. 모방을 반복하던 존재가 시각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설정이다. 화면 속 동자는 화가이자 작가 자신을 가리키는 존재로 읽힌다. 이미지를 따라가는 행위가 결국 스스로의 감각을 무너뜨리는 순간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다소 자학적인 질문을 품는다. 무엇을 보고 있는가보다,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되묻게 한다.

〈혜가단비도〉

혜가단비도는 달마대사 앞에서 자신의 팔을 끊어 결기를 보인 혜가선사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다. 그중에서도 동굴을 실감 나게 표현한 셋슈 토요(雪舟等楊)의 작품에서 착안해 구성했다. 박찬경은 동굴 괴석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설정하고, 서로 다른 시간의 장면으로 나누어 펼쳐 보인다. 팔을 잘라 바치는 행위의 기이함과 동굴을 이루는 기암괴석의 형상이 겹치며, 화면 전체에 낯선 긴장을 만든다.

〈고란사〉

박찬경 작가는 국내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며 받았던 인상을 작업으로 옮겼다. 고란사 역시 그중 하나다. 일본의 한 가족이 불법을 배우고자 백제로 향하는 장면을 그린 부여 고란사 벽화 일부를 인용했다. 작은 나룻배에 의지해 넓은 바다를 건너는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정성’이라는 감각을 떠올렸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반복하고 쌓아가는 태도, 그리고 그 과정 자체에 깃든 소박하고도 깊은 기원을 화폭에 담았다. 

글·사진 김기수 기자

프로젝트
박찬경 개인전 〈안구선사〉
장소
국제갤러리 K1
주소
서울 종로구 삼청로 54
일자
2026.03.19 - 2026.05.10
시간
매일 10:00 - 18:00
참여작가
박찬경
김기수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 음주가무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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