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7

사람 많은 ‘핫플’에 지쳤다면, 공릉동 경춘선숲길 어때요

서울생활사박물관부터 빈티지 디카숍까지

주말 서울은 어딜 가나 북적인다.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곳이면 더욱 그렇다. 가령, 연남동 경의선숲길. 몇 년 전만 해도 경의선숲길은 낭만을 찾아 떠나는 데이트 코스였다. 골목골목 숨어 있는 작은 상점들과 카페, 철길을 따라 고즈넉하게 산책하던 길목. 하지만 이제 경의선숲길에서 낭만을 찾기는 조금 힘들다. 내국인뿐 아니라 관광객까지 더해져 사시사철 붐비는 곳이 됐기 때문이다.

공롱동 경춘선숲길. '핫플'보다 동네의 맛이 느껴진다. © 김은빈

그렇다면 이번 주말엔 서울 끄트머리로 시선을 돌려보는 건 어떨까? 같은 폐철길이지만 여유가 흐르는 곳, 바로 공릉동 경춘선숲길이다. 경춘선숲길은 서울의 동쪽 끝자락,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해 있다. 경춘선숲길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된 건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상봉과 춘천을 오가는 경춘선 복선전철이 개통되면서, 경춘선 무궁화호의 운행이 종료됐다. 남아 있던 1.9km의 폐철길은 서울시의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2015년부터 변신하기 시작했다. 공원이 된 철길은 ‘경춘선숲길’로 불리기 시작했고, 작은 상점과 카페가 문을 열었다.

 

공릉동이 서울과학기술대학교가 위치한 ‘대학가’라는 것도 경춘선숲길 조성에 한몫했다. 20대 대학생이 숲길 이용자의 주 소비자층으로 자리 잡으며 경춘선숲길은 ‘공트럴파크’라는 별명이 붙었다. 공릉동의 대표 랜드마크로 경춘선숲길이 자리 잡은 지 10년이 지난 지금, 철길을 따라 산책하기 좋은 장소를 소개한다. 데이트 코스로도, 혼자 동네를 걷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서울생활사박물관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 174길 27

출처: 서울생활사박물관

2010년, 경춘선 무궁화호와 함께 사라진 게 있다. 서울북부지방법원과 북부지방검찰청이다. 북부 법조단지가 현재의 도봉구 신청사로 이전을 하면서, 철길 공원 조성과 동시에 도시재생 사업이 시작됐다. 북부법조단지는 리모델링을 거쳐 2019년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서울생활사박물관’이다.

서울생활사박물관 전경. 출처: 서울생활사박물관

서울생활사박물관은 거창한 왕조의 역사나 전쟁의 기록이 아닌, 서울을 터전으로 살아온 보통 사람들의 생활사를 전시한다. 박물관은 총 3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관동, 별관, 구치감동이다. 본관동에서는 서울 풍경을 볼 수 있는 생활사 전시실과 어린이 체험실이 있다. 생활사 전시에서는 과거의 서울, 그리고 서울 시민의 모습까지 삶의 터전인 서울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법정 체험실, 구치감 전시실에서는 과거 서울북부지방법원의 모습을 재현해 건축적인 의미까지 되새길 수 있다. 현재는 서울 시민의 임신 및 출생을 주제로 다룬 <아가 마중> 전시가 진행 중이다. 

네코정

서울 노원구 동일로192길 77 2층201호

출처: 네코정

공릉동의 역사에 대해 알아봤으니 이제 배울 채울 시간이다.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 나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방향으로 철길을 따라 걸으면 아파트 단지와 상가, 그야말로 사람 사는 동네가 나타난다. 즐비해 있는 상가 2층, 수상한 식당이 하나 있다. 닫힌 문 옆 초인종을 눌러야 들어갈 수 있는 일식전문점 ‘네코정’이다.

 

공릉동의 터줏대감 같은 일식집, 네코정의 이름에는 사연이 있다. 10여 년 전, 네코정은 지금의 위치가 아닌 공릉동의 끄트머리 작은 마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당시 이름은 〈드래곤볼〉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온 ‘고쿠’였다. 구석진 자리에 위치해서인지 오픈하고 한 달 동안 손님이 없었다고 한다. 대신 길고양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이에 영감을 받아 ‘고양이가 쉬어가는 곳’이라는 뜻의 ‘네코정’으로 상호를 바꿨다. 2014년의 이야기다. 

 

요일마다 주문 가능한 메뉴가 다르니 요일 메뉴를 참고하고 방문하길 바란다. 특히 화, 수, 금, 토요일에 주문할 수 있는 텐동을 추천한다.

블루마일스 커피로스터스

서울 노원구 동일로190길 65 2층

출처: 블루마일스 커피로스터스

배를 채웠으니, 커피를 마시러 떠나 보자. 경춘선숲길은 좋은 카페가 많기로 유명하다. 매년 ‘경춘선 공릉숲길 커피축제’가 열릴 정도니 말이다. 그 중에서도 추천할 곳은 ‘블루마일스커피로스터스(이하 블루마일스)’다. 직접 커피를 로스팅하고, 원두를 판매하는 몇 안 되는 공릉동의 카페 중 하나다. 참고로 블루마일스의 임동현 대표는 2025년 하반기 GCS 로스팅 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할 정도로 실력 있는 바리스타다.

출처: 블루마일스 커피로스터스

임 대표는 뮤지션 출신이다. 그 정체성을 토대로 블루마일스는 재즈를 거대한 콘셉트로 내세운다. 이름조차 흑인 음악 장르 ‘블루스’와 재즈 아티스트 ‘마일스 데이비스’에서 따왔다. 블루마일스의 시그니처 블렌드 커피 역시 재즈 아티스트의 이름을 붙였다. 초콜릿, 구운 아몬드, 블랙베리의 향과 크림 같은 질감을 가진 ‘마일스 데이비스’와 천도복숭아, 라즈베리, 자두캔디 과즙 같은 단맛을 내는 ‘쳇 베이커’가 그 주인공이다. 블렌드 커피를 주문하면 해당 아티스트의 추천곡을 들을 수 있는 QR 카드도 함께 받는다.

 

개인적으로 산미가 있는 쳇 베이커와 과일 케이크를 함께 주문해 맛보기를 권한다. 이 집, 커피 말고 디저트도 정말 잘한다.

스탠다드 모노 스토어

공릉로39길 18-3

© 김은빈

공릉동엔 왜 이리 신비로운 곳이 많을까. 최근 SNS에서 “이곳에 가면 빈티지 디카를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보고 방문했다. 지하로 내려가면, 200종이 넘는 빈티지 디카와 일본 빈티지 소품 ·애니메이션 굿즈 등 세월을 견딘 수집품의 세계가 펼쳐진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비디오테이프, 1980년대 산리오 인형, 빈티지 디즈니 접시까지. 정리되지 않은 채 빼곡히 쌓인 물건 사이를 뒤적이며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는 ‘보물찾기’를 경험할 수 있다. 카메라를 구매할 때는 사장님이 1대 1로 30분 넘게 상담을 진행한다.

 

찾아가는 방식도 이 공간의 분위기와 닮았다. 상호가 온라인 지도에 등록되어 있지 않아 주소로 찾는 편이 빠르다. ‘대흥애드컴’을 검색해 가면 같은 건물 지하에 위치해 있다. 가게 안 안내문에는 ‘스탠다드 모노 스토어’라고 적혀 있지만 정확한 상호인지는 알 수 없다. 대신 건물 입구에 “지하 소품샵, 빈티지 디카 200종 이상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모니터가 세워져 있다.

토리쿠 공릉본점

서울 노원구 공릉로20길 3 1층 이룸빌딩

출처: 토리쿠

이제 배도 꺼지고 날도 어둑해졌다. 마지막으로 공릉동 감성에 취할 차례다. 태릉입구역 방향으로 철길을 따라 산책하다 보면, 공릉동인지 일본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이자카야 ‘토리쿠’가 나타난다. 2020년 문을 열어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이 된 곳으로, 가게가 위치한 사거리는 ‘토리쿠사거리’라는 별칭이 생겨났다. 2025년 맥주 브랜드 ‘켈리’와 블루리본이 선정한 더블 임팩트 맛집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대표 메뉴는 야키토리.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꼬치를 맛볼 수 있다. 

 

토리쿠는 동네에서 한잔하기 좋은 이자카야를 지향하면서도, 정성을 놓치지 않는다. 최고급 비장탄 숯으로 꼬치를 굽고, 직접 만든 항아리에 소스를 담는다. 바 테이블에 앉으면 꼬치를 구우며 부채질하는 주방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케나 기린맥주 등 대중적인 일본 술부터 현지에서 인기 있는 ‘츄하이(소츄+하이볼)’까지, 일본 주류 라인업도 탄탄하다. 

공릉동의 경춘선숲길은 낭만 있는 소규모 상점으로 가득 찼던 몇 년 전의 ‘연트럴파크’를 떠오르게 한다. 경의선숲길과 가장 다른 점은 ‘사람 사는 동네’라는 인상이 강하다는 것이다. 철길을 걷고 있으면 데이트를 나온 연인뿐 아니라 동네 산책을 나온 노년층, 엄마와 손을 잡고 나온 어린아이도 자주 보인다. 주말에는 비정기적으로 철길을 따라 플리마켓도 열린다. 이번 주말엔 서울 중심에서 벗어나 공릉동으로 떠나 보는 건 어떨까. 잃어버린 낭만을 찾아서 말이다.

김은빈 객원기자

김은빈
서울과 로컬의 브랜드를 인터뷰하고, 글을 씁니다. 규모와 상관 없이 가치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브랜드가 오래 살아남는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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