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하는 이들을 만나다 보면 그들을 어느 한 분야의 카테고리만으로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을 종종 깨닫는다. 옷을 디자인하다 가방을 만들기도 하고 주얼리를 만들기도 하는 것처럼 모두 큰 줄기로 이어지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한 분야로 한정하지 않지만 다른 분야의 작업을 했을 땐 ‘도전’이라는 말로 그들의 작업을 칭할 때가 있다.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 우노초이는 그런 ‘도전’ 보다 ‘자연스러움’이 어울린다.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이지만 분야마다 쉽게 된 것도 아니요, 억지로 하고자 달려든 것도 아니요, 그저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를 기다리다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았다. 그 사이사이 나이를 먹었고 생활 터전도 옮겼지만, 그동안 그녀가 살아온 일상과 써보고, 즐기고, 낭비해 본 경험이 녹여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방이 탄생했다. 2년 정도 준비한 전시 ‘Colorful Energy’를 앞두고 막바지 작업 중인 그녀를 만나 든든한 빽(BAG)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의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 비하인드스토리가 있다고 들었어요.
코로나 이전에 우연히 가죽을 다루는 분을 만났는데 사람도 좋고, 가죽도 너무 좋은 거예요. 성수동에서 공방처럼 운영하는 곳인데, 직접 만져보니 정말 부드럽고 가볍더라고요. 가죽을 구해서 가방을 만들고 싶어도 재료를 다량 구매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시도를 못 했었는데, 글쎄 나한테 몇십 개도 내어 주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 이번에 내가 원하는 대로 한 번 만들어보자’ 하고 시작하게 된 거예요.
5-60개 정도 주문했는데, 막상 그러고 나니 가죽 값도 걱정인 거예요, 하하. 처음에는 내가 만들어서 지인들에게 판매할 생각이었는데, 후배가 전시를 열자고 제안을 했어요. 그래서 ‘네가 기획을 하면 할게’ 하고 전시도 하게 된 거죠. 하하하. 지금 작업이 거의 끝나가는데 돌이켜보니 모든 것이 제때에 맞춰서 하나씩 온 것 같아요. 가죽 공방도 그렇고 전시를 하자는 후배도 그렇고요. 제가 하고 싶다고 막 달려들어서 찾지 않았는데, 이렇게 제 곁으로 와 줬으니 얼마나 감사해요.
과감하고 자유로우면서도 이렇게 다양한 페인팅은 처음 보는데요. 이것도 마음에 들고, 저것도 마음에 들어서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모를 정도로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만들어요. 저마다 매력 있는 페인팅을 하려면 꽤 오래 고민의 시간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즉흥적인 붓 터치를 한 듯도 보여요.
신발을 신다 보면 헤진 곳이 보일 때가 있잖아요. ‘그럼 여기를 한 번 칠해볼까?’ 가방 손잡이 떨어질 것 같으면 ‘아, 여기를 다른 색으로 입혀보자’ 이런 생각이 들어요. 자연스럽죠.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거나 의식적으로 ‘오늘은 이걸 고쳐봐야지’, ‘저걸 다시 손봐야지’ 하는 게 없어요. 가방도 마찬가지예요. 작업실에 도착하면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가방을 계속 봐요. 그리고 ‘이 아이에게는 무엇이 어울릴까’ 생각하죠. 그날의 기분, 만남, 상황, 날씨, 주변 환경 등등 내가 영향받았던 것들에서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하루는 샴페인을 마시고 기분이 너무 좋아서 휙-휙 손이 가는 대로 페인팅한 적이 있어요. 다음날 보니까 그날 기분이 그대로 표현됐더라고요. ‘샴페인’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그 가방을 보면 해피 바이러스가 뿜어져 나와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요. 남편 빈센트에게 이야기했더니 ‘그게 그렇게 좋으면 계속 샴페인 마셔야 돼!’ 하더라고요, 하하하.
가방의 활용성이 좋아서 매번 가지고 다니게 돼요. 직접 가방을 사용해 본 사람만 아는 포인트들이 녹아 있어 더 유용하게 사용이 가능한 것 같아요.
가방 포켓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정확한 위치에 적당한 높이와 너비로 들어가 있어야 카드지갑, 휴대폰 같은 것을 손쉽게 넣었다 뺄 수 있어요. 가방끈도 중요해요. 손으로 드는 경우 가방끈이 어중간하면 안 돼요. 적당하게 짧아야 가방을 들었을 때 전체 길이가 맞춰질 수 있어요. 작업하는 분들이 놀라더라고요. 가방끈을 이렇게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처음이라면서요.
외국에서 오래 살았고, 모델 활동을 할 때는 비행기를 자주 탔어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용도의 가방을 많이 사용했지요. 그런 경험 덕분에 자연스럽게 어떤 가방이 쓸모 있는지 체득한 것 같아요.
눈에 띄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 쓴 세심함 또한 우노초이 디자인의 특징인 듯합니다.
모델을 했었기 때문에 가방을 들었을 때 어떻게 보이는지 잘 알아요. 흔히 가방의 디자인된 부분만 신경 쓰는데, 사실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이 보여요. 누군가 멀리서 걸어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상대방에겐 가방의 옆모습이 보일 수도 있어요. 어떻게 들고 있느냐에 따라서 가방의 밑부분도 보이고요. 작업실에 거울이 있어요. 가방 모양을 잡고 페인팅을 끝내고 나면 다양하게 가방을 들어봐요. 그 순간 내가 그 가방의 모델이 되는 거예요. 혼자서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하면서 페인팅을 더해야 할 부분들을 체크하죠.
단추, 주얼리, 가방… 그동안 해 온 작업을 보면 손으로 직접 만드는 걸 굉장히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요.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지금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직접 만든 손 봉투에 감사의 의미를 담아 새벽에 미화원분들에게 건네곤 해요. 내가 옷을 만들고 싶으면 옷을 잘라 보고, 신발을 만들고 싶으면 신발도 잘라보고, 가방도 그래요. 내가 가진 것으로 잘라보고 그리면서 내게 맞는 것을 하나씩 만들어갔어요.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가방을 디자인하기 시작한 건 몇 년밖에 안됐지만 사용한 시간은 아주 오래됐잖아요. 그렇게 가방을 사용하면서 ‘왜 가방 손잡이는 똑같아야 할까?’, ‘왜 한 쪽은 빨갛게 한 쪽은 까맣게 하지 않는 걸까?’, ‘왜 밑바닥과 안감은 칠하지 않는 걸까?’와 같이 평소에 가졌던 의문들이 지금 작업의 방향이 될 때도 있어요. 그래서 안감을 찢고, 페인팅 한 가방이 나온 거지요. ‘왜 남들은 안 하지? 그럼 내가 해보자’ 하는 거죠.
선생님의 작업은 마치 그에 어울리는 얼굴을 찾아주는 것 같아요. 남들은 발견하지 못한 것을 찾아 자꾸 예쁘다고 말하며 보살피는 듯합니다.
마음을 담지 않은 작업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즐거움 없이 하는 건 노동이잖아요. 내가 디자인한 가방은 나도 볼 때마다 새로워요. 그래서 오랜 시간 지켜봐요. 어제 페인팅 한 색과 오늘 보는 색이 다르면 조금 더하거나 빼면서 계속 디벨롭 해나가요. 빛을 받아서 더 반짝이라고 작업실에 불을 켜놓고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어요. 그렇게 하나씩 애정으로 보살핀 아이들이죠. 안감까지 모두 페인팅 작업을 했다는 것에 굉장히 자부심을 느껴요. 물론, 재료도 아끼지 않았고요. 어딜 내놔도 든든한 빽BAG 이에요.
글 양한나
자료 협조 팬시&로즈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