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8

디자인 전공생이 고른 다시 찾고 싶은 공간

피크닉·부산현대미술관·스누피가든이 특별한 이유
1년에 기록하는 팝업과 전시만 100여 개. 내 취미는 새로운 공간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공간’에 빠져든 나는 실내 건축학까지 복수 전공했다. 다른 동기들이 제품과 UX 디자인을 파고들 때, 공간에 매료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시작은 뮤지엄 산이다. 전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생 시절, 동기와 함께 뮤지엄 산에 간 적이 있다. 건축가가 안도 다다오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따라갔을 때 봤던 뮤지엄산의 모습은 충격에 가까웠다. 돌벽으로 이루어진 외장재와 노출 콘크리트가 깊은 산 속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전시 공간은 물 위를 걸어가서 마주할 수 있었다. 도착한 전시 공간은 높은 층고에 보일 듯 안 보일듯 빛이 투과되는 창문과 제임스터렐의 작품까지. 그 모든 게 인상적이었다. 그때부터 내게 공간은 취미이자 전공이고 또 삶이었다.

디자인 전공생이라면 빠질 수 없는 행사가 있다. 바로 졸업작품전시회다. 그때마다 선배에게 왜 어떤 분야를 선택했는지 물었던 기억이 있다.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정말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답이었다. 나 역시 공간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었다. 특히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으면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공간(space,空間)에 더 매료됐다. 그렇다면 공간을 볼 때 무엇을 봐야 할까? 무언가 ‘공간’이 되려면 3가지 기준이 필요하다. “인간, 행태, 공간” 

 

공간디자인을 전공하는 학부생이라면, 매번 교수님께 듣는 말이 있다. “우리는 모든 이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디자인 해야 한다. 공간을 이용하는 대상은 사람이다. 행태는 공간 속 프로그램이다. 즉 아무리 좋은 공간이어도 그 안에 무언가를 할 목표가 없으면 공간은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공간은 인간과 행태를 어울릴 수 있게 하는 소통의 장이다. 이 3가지 키워드가 골고루 충족됐을 때 그 공간은 사랑받을 수 있다. 이런 관점을 기준으로, 공간과 콘텐츠의 매력이 돋보이는 다시 가고 싶은 곳을 꼽았다.

피크닉

회현역은 지나치기 쉬운 역 중 하나다. 근처 직장이 있거나, 시장을 방문하지 않는다면 찾을 일이 자주 없다. 이곳에 숨은 전시 공간이 있다. 바로 피크닉이다. 역에서 내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며 몇 번 숨을 들이쉬고 내쉬다보면, 붉은 벽돌로 된 3층 전시장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을 처음 방문한 여름, 푸른 녹음의 나무로 둘러싸인 전시장을 가는 길은 산책로를 걷는 느낌이 들었다. 붉은 벽돌의 외부와 달리 흰색과 우드 톤을 메인으로 하는 내부가 눈에 띈다. 이날 본 전시는 <Nike x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 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달리기를 주제로, 외부의 트랙으로 바닥 맵핑된 입구가 관람객을 맞이했다. 일반적으로 전시장에서는 조용히 해야한다는 규칙을 깨고 실내에서 직접 뛰는 모습을 보며 전시에 빠져들었다. 그래선지 일반적인 전시와 달리 운동을 하고 싶은 이들이 모여 실내에서 체험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내부에는 직접 뛰면서 심박수를 체크할 수 있는 콘텐츠와 다양한 마케팅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피크닉의 최대 장점은 옥상이라 생각한다. 서울 시내를 한눈에 360도 뷰로 볼 수 있는 곳은 흔하지 않다. 옥상에서 서울 전경을 둘러보며, 마지막으로 나만의 러닝 플레이리스트와 코스 추천 콘텐츠까지 보며 전시 관람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주소 서울 중구 퇴계로 6가길 30

스누피 가든

남쪽의 섬 제주도는 매년 많은 사람이 오가며 여행과 휴식을 즐긴다. 4년간의 학부 생활과 앞으로 남은 추가 학기, 졸업 작품 전시회 위원장까지 하며 고생한 나를 위해 새해에 제주도로 홀로 떠났다. 그중 여행 칼럼을 읽다가 찾은 곳이 ‘스누피 가든’이다. 수많은 오름을 지나 평야 속 우뚝 솟은 건물 하나가 현무암 돌담 사이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특히 다양한 연령대가 이곳을 찾는데, 거동이 불편한 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설치한 경사로와 동선이 돋보였다. 또 아이들의 눈높이에 캐릭터나 조형물을 배치해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먼저 발견할 수 있도록 신경 쓴 것도 흥미로웠다. 

이곳의 매력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제주도라는 점을 곳곳에 녹여낸 제주도 축소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백꽃과 나무가 가득한 외부 정원에 숨겨진 스누피 조형물이 있었고, 그곳을 관람하며 겨울이지만 따뜻한 제주의 날씨와 자연을 느낄 수 있었다. 스누피 조형물만 설치했다면 다른 캐릭터 테마파크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제주도의 지형을 활용한 수(水) 공간과 갈대밭, 그리고 절구까지 활용해 매력적이었다.

전시도 다양한 테마로 구성돼 있었다. 영화시청, 스탬프 찍기, 종이로 만화를 출력할 수 있는 존과 포토존까지. 스누피의 일생부터 친구 관계 그리고 꿈까지 스누피에 대해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풍자적이면서도 진솔하며 넉살 좋은 캐릭터는 마치 미국판 둘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주소 제주시 구좌읍 금백조로 930

부산현대미술관

국내에서 방문한 미술관 중 특이한 곳으로 가장 먼저 떠올랐다. 부산 ‘속도’라는 섬 위에 세워진 부산현대미술관이다. 높은 층고의 붉은 벽돌과 함께 이를 덮고 있는 수많은 덩굴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건물 자체를 수직 정원이라는 작품으로 만든 만큼, 입장하기 전부터 이곳은 미술관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내부로 들어가면, 중앙 계단을 중심으로 전시장이 설계돼 있다. 중앙 계단을 두고 양옆에 동선을 만든다는 건,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아마 공간마다 다른 전시를 진행하기 위해 이렇게 설계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본 전시는〈 ‘미안해요 테이크 유감이지만 난 그럴 수 없어요’ 〉였다. 설치 미술과 미디어아트 등 작품의 규모가 큰 작품이 대다수였다. 그럼에도 층고가 높아 공간에서 개방감을 느낄 수 있었고, 또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는 숨겨진 공간을 찾는 재미가 있었다. 거대한 전시 규모에 더해, 아이들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어 가족 단위 방문에도 좋은 미술관이었다.

 

주소 부산 사하구 낙동남로 1191

글·사진  헤이팝 서포터즈 장효정

헤이팝
팝업 공간 마케팅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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