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06

초대형 오브제가 된 일용품

미국 소비주의를 조명한 닉 도일.
‘아메리카나Americana’. 미국이나 미국인을 연관 짓게 하는 특징적인 자료, 고정 관념을 의미하는 단어다. 꼭 오래될 필요는 없다. 성조기, 야구, 애플파이, 카우보이 같은 고착화된 문화적 상징일 수도 있고 코카콜라, 나이키처럼 요즘 잘 나가는 브랜드일 수도 있다.

뉴욕에서 나고 자란 예술가 닉 도일Nick Doyle에게 ‘아메리카나’는 중요한 작업의 재료다. 도일은 ‘미국의 신화’ 혹은 ‘미국에 대한 자부심’을 상징하는 미국적인 아이콘과 재료를 사용해 미국 소비주의가 만든 어두운 면에 대해 성찰한다.

 

유명 상표의 쉐이빙 크림, 자판기, 재떨이… 겉보기에는 평범한 물건이다. 도일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용품을 초대형 오브제로 만든다. 올덴버그의 작품을 떠올리게 되는데, 올덴버그가 평범한 물건이 신격화되는 예술을 비꼬았다면, 도일의 작품은 현대 문화에 대한 의심과 비난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나는 미국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종종 생각한다. 나는 항상 수치심이라는 개념을 떠올린다. 소비 문화는 수치심에서 비롯된다”고 말한 바 있다. “완벽하기 위해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느낌” 때문에 미국 특유의 자유롭고 사치성 소비를 즐기고 동경하는 문화가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다.

8월 26일부터 10월 1일까지 서울 페로탕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닉 도일의 개인전 은 한발 더 나아가 남성성을 상징하는 소품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도일의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나비넥타이, 신사화, 그리고 세면도구 세트에 들어있을 법한 내용물들은 도일이 탐구하고 비평하길 원하는 일반적인 미국 남자들의 개인적인 모습의 한 부분이다.

 

 

도일은 남성적으로 인식되는 오브제들의 무익함을 드러낸다. 여행 가방은 그것이 나타낼 법한 정처 없는 자유 대신 드러난 텅 빈 내부 속으로 고독함이 스며들어 있다. 냉온수기는 그것의 위치가 의미하는 회사 속 모임과 경쟁을 의미하는 대신 홀로 황량하게 놓여있다. 스위스 아미 나이프는 마치 공작새처럼 자신이 가진 것을 뽐내고 있지만, 이 뽐내는 모습을 관람하는 관중은 없다.

 

 

두 개의 올가미, 나비넥타이, 벨트 등 질식시키는 많은 도구는 성별화된 이상의 숨 막히는 본질에 대한 메타포로 사용된다. 도일은 남성성의 편협함, 감정을 표현하고 느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비극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고 인식한다. 물론 작품의 첫인상에서는 이런 요소들이 직접적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이 오브제들은 마치 범죄 현장의 사진처럼 감정 없이,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증거 서류가 더 큰 현장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도일의 작품 또한 그러하다.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재료다. 바로 데님. 도일의 작품 속에서 재료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더 크고 전반적인 그림에 부여되는 고유 속성이다. 도일이 선호하는 재료인 데님은 미국의 역사 속 많은 부분을 거론한다. 데님은 블루칼라 노동자, 기술 기업가 등 미국 남성성에 대한 모든 명백한 진부한 내러티브가 관련되어 있다.나아가 아프리카에서 인디고가 수입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 사실상 노동자들의 작업복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동시에 반문화 운동의 기표로서 사용되는 이중적인 재료이기도 하다.

 

작가는 창작을 위한 재료로 베지터블 가죽을 새로 도입했다. 안장을 만드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는 이 재료를 통해 도일은 미국 카우보이의 신화 같은 존재를 소환한다. 그는 개념적 기교를 통해 그들의 투박한 성향을 암시한다. 작품 ‘Outlaw’에서는 나무로 만들어진 여행 가방 속에서 선인장의 축 처진 팔이 쏟아져 나온다. 선인장을 구속하지만 동시에 그 반대편에는 아무것도 묶여있지 않은 한 쌍의 수갑은 점점 져가는 미국 서부의 모습, 특히 미국 서부가 역사적으로 상징했지만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던 자유와 도망을 상징한다.

 

 

도일은 일상의 단조로움과 상상 속 미국의 장엄함을 대조한다. 작가의 ‘Executive Toys’ 시리즈의 신작인 ‘No One Can Know’는 지쳐 체념한 개인의 회사 속 모습을 보여준다. 손잡이를 돌리면 기어가 작동하여 책상에 앉아 있는 사람을 닮은 나무 조각이 움직인다. 작품의 상세한 메커니즘은 사용된 복잡한 기술과 노동이 필요로 하는 영혼 없는 반복성을 보여주기 위해 훤히 드러나 있다. 사람 모습의 조각상은 주의 산만하게 발로 툭툭 바닥을 치며, 컴퓨터 모니터에서 고개를 돌려 서랍 속 무방비하게 꿈을 꾸며 자는 자신의 모형을 보여준다.

 

 

전시의 제목은 “모든 게 괜찮다”며 확신을 하지만 도일의 시선 속 비친 미국에서의 삶은 오히려 불안한 기운이 감돈다. 멀티탭은 올가미로 형상화되었으며, 면도날은 번뜩이며 날카롭게 유인하고, 배수구는 끝이 없는 절망을 표현한다. 비꼬는 유머, 블랙 유머로 가득한 닉 도일의 이번 전시는 10월 1일까지 서울 페로탕 갤러리(서울특별시 종로구 팔판길 5)에서 진행된다. 입장료 무료, 사전 예약 필수.

 

 

 

유제이

자료 협조 페로탕

장소
페로탕 갤러리 (서울특별시 종로구 팔판길 5)
일자
2021.08.26 - 202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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