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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8

2025년 지금 서울에서 가장 많이 본 전시, 론 뮤익을 제대로 감상하는 법 3

"질문하는 순간 달라진다" 국립현대미술관 홍이지 학예사
올해 예순여섯, 30년간 만든 조각은 단 48점. 그런데 지금, 서울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을 모으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작가 론 뮤익(Ron Mueck)이다. 전시는 개막 한 달 만에 21만 명을 넘겼고, 서울관 단일 전시 사상 최다 관람 기록을 세웠다.
론 뮤익의 자화상을 표현한 〈 마스크 II〉. 전시장에서 관람객을 마주하는 첫 번째 작품이다. © 마커스 리스

SNS도 하지 않는다. 인터뷰도 거의 없다. “작가가 말하는 순간, 해석의 가능성이 닫힌다” 작품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다. 그는 데미안 허스트도, 마우리치오 카텔란도 아니다. 팔기 위해 작품을 만들지 않고, 의뢰받은 작업도 하지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건 ‘팔리는 작품’이 아니라 ‘만들고 싶은 작품’이고, ‘잘 보관해 줄 수 있는 곳’을 찾아 전시를 연다. 이번 전시에서는 매일 작업실에 출근해 묵묵히 조각하는 예술 노동자인 그를 만날 수 있다.

 

피부의 질감부터 머리카락 한 올까지. 그의 조각은 극도로 사실적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실제 사람 크기로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크거나, 작다. 현실인지 작품인지 헷갈리는 ‘하이퍼리얼리즘’과 다른 이유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점은 작품만이 아니다. 전시 설계도 달라졌다. 벽에는 어떤 설명도 없고, 오디오 가이드는 설명하기보다 질문을 던진다.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질문하며 전시를 관람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전시를 잘 감상하기 위해 무엇을 알고가면 좋을까? 전시 감상 포인트와 비하인드를 국립현대미술관 홍이지 학예사에게 물었다.

Interview | 국립현대미술관 홍이지 학예연구사

—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론 뮤익전을 기획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다양한 연령층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했어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죠. 무엇보다 작가의 장인정신을 전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자기 PR이 중요한 시대잖아요. 때로는 작품이 얼마나 비싸게 팔렸느냐에 따라 작가의 명성이나 유명세가 결정되기도 하죠. 그런데 론 뮤익은 평생 48점밖에 만들지 않았어요. 작품을 쉽게 팔지도 않고요. 돈보다는 작품을 잘 보관할 수 있는가를 보고 소장처를 정하죠. 다양한 아티스트가 있는데, 하루하루 성실하게 작업하는 예술 노동자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화려하게 보이는 아티스트만 있는 게 아니고요. 

 

— 다큐멘터리도 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인가요? 내내 작업만 할 뿐, 말소리가 거의 없습니다.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 고티에가 론 뮤익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인데요. 뭐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작업이에요. 인터뷰도 안 하고, 외부에 드러나는 게 전혀 없으니까요. 관찰자 시선으로 CCTV처럼 찍은 영상이죠. 작가가 워낙 말수가 없다 보니 소리를 켰는데도 오디오가 거의 없어요. 작업실에 틀어둔 라디오 소리를 빼고는요. 

 

 

론 뮤익의 작업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스틸라이프〉 © 고티에 드블롱드

일반적인 전시 다큐멘터리라면 전혀 다른 모습일 거예요. 스트레스를 받으며 치열하게 전시를 준비하는 모습이 나오고, 전시 오프닝으로 마무리되겠죠. 그런데 ‘스틸라이프’에서는 똑같은 모습으로 작업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나와요. 같은 장면이 계속 반복되는데 끝까지 보고 싶죠. “라디오 같은 사람” 가까운 협업자인 고티에가 론 뮤익에 대해 한 이야기인데요. 같은 시간, 같은 주파수를 틀면 나오는 라디오처럼 일하는 그의 모습을 빗대서 표현한 것 같아요.

 

 

  •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영화 〈 퍼펙트 데이즈〉가 생각났다. 빔 밴더스 감독 영화로 76회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작품이다. 영화는 도쿄 시부야의 화장실 청소부인 주인공 히라야마의 일상을 조명한다. 그의 일상은 똑같이 반복된다. 하지만 매일 성실하게 살아내는 태도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어떤 면에서 론 뮤익과 영화 속 주인공 히라야마가 닮아 보였다.

 

—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면에서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의 형상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닮아 보일 수 있지만, 두 작가는 굉장히 달라요.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작품을 실제 사람처럼 만들죠. 이게 조각인지 사람인지 헷갈리도록요. 또 그걸 통해 현대미술을 희화화하거나 우리의 속물적인 모습에 대해 말하는 작가예요. 하지만 론 뮤익은 실제 사람 크기로 작품을 만든 적이 없어요. 똑같이 만들려는 의도가 없거든요. 오히려 사람을 엄청나게 확대하거나 축소해서 전복시키는 경험을 주죠.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은 이탈리아 출신 현대미술가로, 실제 사람과 구분이 어려울 만큼 정교한 하이퍼리얼리즘 조각과 기발한 설치미술로 알려져 있다.

 

조각이라는 점에서 회화와는 다른 흥미로운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회화나 평면은 앞면이 확실하잖아요. 그런데 조각은 ‘이게 앞면인 게 확실해?’라고 질문할 수 있거든요. 또 관람객이 직접 움직이면서 볼 수밖에 없는 매체잖아요. 회화 전시에서는 평면적으로 움직이는데, 조각 전시에서는 쭈그려 앉기도하고 몸을 자유롭게 쓰죠. 그래서 더 오래 기억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몸을 움직이면서 기억하는 거니까요.

 

 

100개의 해골 조각이 한 작품인 〈 매스〉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부피가 커서 준비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특히 매스는 부피가 크기도 하고, 조각이 100개여서 배로만 움직일 수 있었는데요. 암스테르담에서 부산항까지 오는 데만 60일이 걸렸어요. 또 부산에서 서울로 작품을 옮길 때도 3일이 걸렸죠. ‘무진동 차량’이라고 하는 전문 차량으로 움직였는데, 진동 없이 천천히 움직여야 해서 새벽이나 밤에만 옮길 수 있었거든요. 그 과정을 거쳐 볼 수 있는 거니까, 이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게 행운 아닐까요?

 

시오타 치하루(塩田 千春)라는 작가가 있는데요. 실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고, 현장에서 해체하는 설치 미술을 해요. 이 작품을 보는 것 또한 동시대에 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경험이죠.  아무리 매뉴얼을 잘 만들어도, 작가가 작고한 뒤에는 같은 느낌일까 싶어요. 

“전시를 본다는 건 작가도 존재하지 않고,  
   큐레이터도 등장하지 않는 결과물을 읽는 것”

전시를 볼 때 깊게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점을 염두하고 관람하면 좋을까요?

전시는 결과물을 보는 공간이에요. 작가도 큐레이터도 존재하지 않고, 준비 과정은 보이지 않죠. 전시된 작품만 보지 않고, 질문을 던지면서 보면 좀 더 재밌거든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왜 이걸 첫 작품으로 했을까?’ ‘전시의 마지막 작품은 왜 이걸로 했을까?’ ‘동선은 왜 이렇게 짰을까?’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 미술관, 작가, 큐레이터가 무엇을 중점에 두고 전시를 기획했는지 짐작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보기 시작하면, 전시를 보는 자기만의 방법이 만들어지기도 하죠. 전시에 왔다, 봤다, 간다가 아니고요. 전시를 충분히 여러 맥락으로 다채롭게 볼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왜 사람들은 머리가 아프고 마음이 복잡할 때 미술관에 가는지, 또 누군가는 이렇게 치열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지 를 생각하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거든요.

론 뮤익 전시를 잘 관람할 수 있는 포인트 3

1. 조각은 어디를 보고 있을까?
시선을 따라가 보자
조각의 시선을 따라 설계한 동선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여는 첫 작품은 론 뮤익의 자화상인 〈마스크 II〉. 이 조각이 바라보는 방향에 다음 작품을 배치했다. 두 번째 조각도 마찬가지다. 시선을 따라가면 세 번째 작품이 보이고, 그렇게 치킨맨 속 노인과 눈을 마주친다. 이후엔 시선을 피하는 조각들이 등장한다. 10대 청소년과 쇼핑하는 여인이다. 

 

작품을 배치할 때 조각의 시선을 따라 관람할 수 있게 설계됐다는 점을 떠올리며 작품을 관람해 보자. 동선을 해치지 않기 위해 전시장 벽의 모든 설명도 지웠다. “벽에 설명이 있으면, 어떻게든 앞에서 머무는 시간이 생기거든요.” 홍이지 학예사의 설명이다.

2. “누가 봐도 아는 건 넣지 말자”
설명 대신 질문하는 오디오 가이드

전시장에 설명이 없는 대신, 오디오 가이드가 더욱 중요해졌다. 하지만 여느 전시와 다르다. 형태에 대한 기본 정보는 과감히 덜어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굳이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 표정, 어떻게 느껴지나요?” 같은 질문을 던진다. 관람객이 해석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기는 방식이다. 김영하 작가가 직접 녹음한 오디오 가이드는 그 철학을 잘 보여준다.

3. “왜 이 자리에 놓였을까?”
장소의 맥락을 이해하자

전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지 작품 그 자체만이 아니다. ‘어디에 어떻게 놓였는가’에 따라 맥락은 달라진다. 

작품 〈매스Mass〉는 100개의 해골 조각으로 구성된 거대한 설치물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지하 묘지, 카타콤에서 영감받아 만들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전시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과거 병원과 의과대학이 있던 자리다. 죽음을 형상화한 조각이, 한때 삶과 죽음을 오가던 공간에 놓인 셈이다. 그 지점에서 매스를 읽을 때, 서울이라는 도시 역사와 맞물려 새로운 맥락을 갖게 된다.

 

설치 위치도 중요하다. 매스는 창문이 보이는 공간에 놓였다. 관람객은 작품을 보다가 문득 창밖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여기가 ‘지하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작품은 그 자체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것이 놓인 위치까지 함께 읽을 때 더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다.

 김지오 기자

자료 제공 및 취재협조 국립현대미술관

프로젝트
론 뮤익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주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30
일자
2025.04.11 - 2025.07.13
시간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 금요일, 일요일: 10:00 ~ 18:00
수요일, 토요일: 10:00 ~ 21:00 (18:00 ~ 21:00 야간 개장)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주관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자/디렉터
홍이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키아라 아그라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큐레이터, 찰리 클라크 론 뮤익 스튜디오
참여작가
론 뮤익
링크
홈페이지
김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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