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반려 식물로 공허함을 달랜 이들이 많았다. 플랜테리어, 식집사 등 관련 신조어가 트렌드를 넘어 일상으로 자리한 요즘, 조금 더 특별한 식물을 다루는 팝업 전시가 열렸다. 브랜드 웨트룸, 에이스트리맨과 국내외 공예, 미술 작가 30인이 함께한 〈공예가의 괴근식물 정원:CAUDEX GARDEN OF CRAFTSMAN〉이다.
낯설지만 눈을 뗄 수 없는 식물

‘MZ세대의 분재’라고 알려지며 알음알음 인지도가 늘고 있지만, 괴근식물은 대중에게 여전히 낯선 존재다. 거기엔 언뜻 괴이한 생김새가 한몫한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맨드레이크를 닮은 것도, 거북이 등껍질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식물도 있다.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괴근’이라는 글자를 보고 분명 괴이하다는 뜻을 떠올릴 수밖에 없지만 의외랄까, 한자는 ‘덩어리 괴(塊)’와 ‘뿌리 근(根)’을 쓴다. 몸통과 줄기, 뿌리가 한 덩어리로 동그랗게 팽창된 다육식물을 말하는데, 그 모양이 독특해 보는 순간 ‘괴이하다’라는 뜻과도 쉽게 연결된다. 몸체가 덩어리처럼 팽창한 이유는 아프리카, 북남미, 마다가스카르 등 원산지의 고온 건조한 기후에 순응할 수 있도록 체내에 수분을 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연적으로 변형된 외형 덕분에 그 자체로 살아있는 조각이자 수집품으로 여겨진다.

괴근식물에 대한 인기는 일본에서 흘러왔다. 특히 패션 신과 연관이 깊다. 음악, 패션 등 일본 서브컬쳐의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후지와라 히로시(Fujiwara Hiroshi)도 괴근식물을 아낀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네이버후드(NEIGHBORHOOD)는 괴근식물 브랜드 에스알엘(SRL)을 만들었고, 일본 파르코나 이세탄 백화점에는 괴근식물만 취급하는 섹션이 있을 정도다. 뿌리 깊이 정착된 인기는 대만, 홍콩 등 주변국으로 퍼졌고, 2020년 즈음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반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국내에서도 괴근식물과 그 문화를 주제로 전시, 협업 등 다채로운 활동이 확산되고 있다.
괴근식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

〈공예가의 괴근식물 정원〉은 괴근식물 문화를 보다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확산하는 장이다. 무엇보다 괴근식물 컬렉션을 기대할 만하다. 전시를 준비한 웨트룸은 국내에서 괴근식물을 정식으로 수입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브랜드 중 하나다. 이번 팝업을 위해 웨트룸은 숨겨왔던 고가의 식물들을 공개할 뿐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많은 수량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희귀할수록 가격대는 높은 편이지만, 평소에 마주하기 힘든 식물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 미술관 작품을 관람하는 것처럼 흥미롭다.

다른 식물과 대비되는 괴근식물의 특징은 마니아를 중심으로 관련 문화, 예술 영역이 견고히 쌓이고 있다는 점이다. 화분도 그중 하나다. 멋진 옷과 신발을 매치하듯 괴근식물 애호가들은 개성 있는 화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식물 원산지인 아프리카 본토 느낌을 좋아하는 이도 많다. 팝업 현장에서도 그 분위기가 드러나는데, 빈티지 가구 숍 오드플랫(Oddflat)이 빈티지 아프리칸 스툴 오브제와 가구로 공간을 채운 덕이 크다. 그 외에도 보타니움(Botanium), 아카이빙(Archiving), 롬버스랩(Rhombus lab) 등 브랜드에서 괴근식물을 위한 선반과 가구를 선보여 의미를 더했다.

이번 팝업스토어는 괴근식물을 소개하는 한편 그를 둘러싼 문화, 예술을 보이는 자리기도 하다. 인상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도예가 조희진, 우시형 등이 만든 개성 있는 화기뿐 아니라 아티스트 노보의 평면 회화, 김민주의 손바느질 작품 등 괴근식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식물을 매개로 단단한 취향을 가진 커뮤니티와 독특한 라이프스타일까지 엿볼 수 있는 이번 팝업은 수집가들의 잔치이자 그들의 세계를 살짝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좋은 기회다.
글&사진 김기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