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독거노인의 수는 2024년 기준 219만 6,738명. 가족의 관심과 지원이 부재한 독거노인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 신체, 정신 건강에도 취약하다. 마냥 타인의 문제일까. 저출생, 고령화 현상이 이어지며 노인 인구 비중이 늘어가는 와중에 홀로 거주하는 노인의 비율 역시 2000년 16%에서 2024년 22.1%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먼 시대의 설화가 아닌 나와 우리 주변의 이야기다. 하지만 독거노인을 향한 한국 사회의 시선은 납작하기만 하다.
우리들의 이야기, 3355 콜렉티브
독거노인의 삶을 그루터기로 재해석해 관람객들의 사유와 공감을 이끄는 전시 〈그루터기: 시간이 만든 자리〉가 서울 종로구 사사사가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3355 콜렉티브가 준비했다. 3355 콜렉티브는 인문학, 예술, 경영, 디자인, 홍보, 콘텐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삼삼오오 모여 결성한 소셜 크리에이티브 그룹이다. 이들은 수면 아래에 있는 사회 이슈를 문화예술 형태로 구현해 사회 문제를 ‘우리들의 이야기’로 관점을 변화시키는 프로젝트들을 기획한다.
실종 아동의 실종 일자가 적힌 풍선 871개(2022년 기준 장기 실종 아동의 수)를 시민들에게 전달한 〈Project 871〉, ‘정신과’를 ‘꽃가게’에 비유해 정신과 허들을 낮추고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점검하도록 도왔던 참여형 전시 〈정신과 꽃가게〉, 실종 아동 가족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던 참여형 퍼포먼스 행사 〈당연하지 않은 저녁 식사〉까지 사회적 문제를 문화 예술 프로젝트로 조명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이번 전시명은 〈그루터기: 시간이 만든 자리〉이다. 그루터기는 초목을 베고 남은 나무의 밑동을 말한다. 생명력이 다한 듯 보이는 그루터기는 주변 나무와 뿌리가 연결되어 있어, 지속적으로 숲의 생태계를 지탱하는 존재다. 전시를 통해 독거노인 역시 그루터기처럼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의 존재가 우리 사회에 유의미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9명의 독거노인, 9개의 의자
9명의 독거노인이 한평생 이어온 취미와 관계, 기억을 바탕으로 9명의 국내 가구 아티스트(고범석 가구, 그라운닷, 목공방 구조, 보아즈 우드, 비바움, 스튜디오 이이, 시도 스튜디오, 은퍼니쳐, 이용희)가 제작한 의자들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세 차례 인터뷰를 통해 독거노인의 이야기와 음성을 수집했고, 아티스트들은 그 내용을 바탕으로 오직 한 명의 독거노인만을 위한 의자를 제작했다.
전시장에 놓인 의자를 통해 관람객들은 독거노인에 대한 추상적인 이미지를 넘어 고유한 형태를 지닌 개인의 삶을 오감으로 경험하고 상상하게 된다. 생각이 많아질 때마다 기타를 치고 휘파람을 부는 ‘정자 나무’, 나 홀로 신촌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가는 ‘장미 나무’, 직접 그린 그림으로 고마운 마음을 선물하는 ‘미완성 나무’처럼 9명의 독거노인은 자신을 하나의 나무로 표현했다. 관람객은 각각의 의자에 앉아 독거노인의 음성을 들으며 그들이 제시한 미션을 하나씩 수행한다. 옆에 있는 기타 연주하기, 선물 주고 싶은 사람 떠올리기, 옆 식물에게 물 주기… 독거노인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던 부정적인 어감은 사라지고, 그들의 뿌리가 나의 뿌리와도 연결되어 있음을 체감하게 된다.
두 개의 층으로 구성된 전시를 다 보고 나면, 건물 밖으로 나와 지하로 내려가자. 전시장에서 봤던 의자 미니어처와 함께 가구 아티스트들의 후일담을 읽을 수 있다. 가구 제작을 위해 직접 어르신을 만나고 온 사람, 인터뷰를 보고 나서 설계한 디자인을 전면 수정한 사람, 디자이너로서 욕심을 내리고 오직 한 명의 어르신을 위해 제작했다는 사람.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전시에 참여했고, 독거노인의 목소리를 가구 디자인에 어떻게 반영했는지 확인하다 보면 전시를 통해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가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Q. 제작자로서, 전시 관람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동을 위한 가구는 기능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디자인도 아기자기 귀엽게 제작되어 시중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애인이나 노인을 위한 기능적인 가구는 오로지 기능에만 집중된 것들이 많습니다. 이왕이면 기능에 멋스러움까지 더한 디자인으로 제작된다면 어떨까요? 저 역시 ‘독거노인’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온전히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이는 ‘독거노인’이라는 단어에서 그려지는 이미지가 밝지 않아서일 것입니다. 만약 노인분들의 모습이 멋진 물건, 가구, 의류 등과 함께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면 우리의 노년기도 현재의 노년기이신 분들도 좀 더 멋진 하루하루를 그려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전시 내 보아즈우드 인터뷰 중
글 김기수 기자
자료 제공 3355 콜렉티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