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31

피부를 인테리어로 표현한 안경점?

건축적 아방가르드, 오르오르
무수히 새로운 시도를 보여줬던 푸하하하프렌즈가 안경점의 새 얼굴을 창조해 냈다. 아이웨어 편집숍 '오르오르 사운즈한남점'을 통해서다. 새로운 건축재료를 실험하고, 공간 활용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 끝에 탄생한 오르오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노경

서울 한남동의 내리막길에 자리한 복합문화공간 사운즈한남에 자리한 아이웨어 편집숍 ‘오르오르’가 지난 5월에 새롭게 리뉴얼을 마쳤다. 사운즈한남 구석 통로의 끝에 자리한 오르오르. 출입구의 우측 외벽에는 시계추가 난생처음 보는 몸짓으로 움직이며, 실내 곳곳에 사용된 낯선 질감의 라텍스가 한데 뒤섞여 생경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환한 조명과 안경을 진열하는 유리 쇼케이스로 익숙한 안경점의 인테리어 문법을 뒤흔든 파격적인 오르오르의 인테리어는 마치 ‘우리는 남들과 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라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공간 리뉴얼을 담당한 푸하하하프렌즈*는 대표적으로 2021년에 엔터테인먼트 하이브(HYBE)의 사옥을 디자인했으며, 국내 건축가들에게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손꼽히는 ‘젊은 건축가상’을 2019년에 수상한 바 있다. 위트 있는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푸하하하프렌즈는 오르오르를 디자인하며 어떤 도전의 과정을 겪었을까?

*푸하하하프렌즈는 윤한진, 한승재, 한양규 대표 건축사와 김학성, 윤나라, 최영광, 조영호, 전중섭, 김민식, 이호림, 이호정, 변지민, 지시형이 함께 모여 일하는 건축사사무소다.

Interview with 푸하하하프렌즈 한승재 대표

건축재료로 변신한 라텍스

ⓒ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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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경 진열대 마감과 조명 가림막으로 라텍스 소재를 사용한 점이 가장 먼저 눈에 띄더라고요. 어떻게 선정하게 된 재료인가요?

푸하하하프렌즈를 처음 설립했던 10년 전보다 지금은 인테리어가 상향 평준화됐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새로운 소재나 새로운 디테일을 써보고 싶은 욕구가 가득했어요. 그중 라텍스를 쓴 이유는 콘크리트나 유리처럼 딱딱한 재질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안경의 배경이 되는 공간 자체가 ‘피부’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결과죠.

 

— 라텍스는 본래 건축재료로 흔하게 쓰이지 않는 소재이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라 예상되는데요.

라텍스를 형태 위에 부었더니 어느 정도 모양이 잡히더라고요. 그 상태로 미술 작품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건축 재료화하기 위해 다양한 조색제를 바르고, 두께를 다르게 해서 바르고, 빗자국을 내기도 하는 등의 여러 실험을 거쳤어요.

ⓒ노경

— 안경 진열대 구조에 라텍스를 고정하기 위해 직접 건축 현장에서 바느질도 했다고요.

개인적으로 일하면서 가장 재미없다고 느끼는 때가 설계 도면을 시공 쪽에 넘기고 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입니다. 다행히도 팀원들 또한 같은 성향이라서 공사 중에 저희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참여하려고 해요. 중장비나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라면 당연히 시공사에 의지해야 하지만, 라텍스를 철골에 고정하는 것처럼 누구도 해보지 않은 작업이라면 저희 손으로 직접 완성하려고 합니다.

구석구석 숨겨진 오르오르 로고

ⓒ노경
사진 출처: 푸하하하프렌즈 공식 홈페이지

— 주 출입구 바닥에 반복되는 반원과 다각형 패턴이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어디서 영감을 받았나요?

기존에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하려고 했던 계획이 틀어지게 되면서 형태는 슬라이딩 도어이지만, 사실상 여닫이문인 주 출입구가 완성됐어요. 문을 바꾸는 것보다는 지금 형태도 재미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문을 열면서 슬라이딩 도어 형태와 어긋나며 생기는 삼각형 공백이 마치 오르오르 로고 같다고 생각했어요. ‘oror’ 모양의 오르오르 로고가 저에게는 동그라미와 세모가 연상했거든요. 그렇게 해서 바닥에 패턴이 채워지게 됐고, 그래픽 디자이너에게도 모티브가 되었는지 전면 유리에 붙일 시트지도 바닥 모양과 잘 어울리게 제작되었죠.

 

— 주 출입구로 들어가기 전, 벽면에 설치된 시계도 독특하더군요.

설계를 다 마칠 때쯤, 간판을 달기 위해 빼놓은 전선을 활용해 팀원이 제안한 아이디어가 시계였어요. 처음에는 로고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동그라미와 세모 모양으로 제작한 받침을 비추며 만드는 그림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점점 시계추의 움직임이 돋보이더라고요. 반복적으로 불규칙한 움직임을 만들어내죠.

사용자와 시간을 염두에 둔 설계

ⓒ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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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기 다른 비율의 사각형 모양으로 만든 벽면의 캐비닛도 재미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제작하게 된 건가요?

이번 오르오르 프로젝트는 공간에 오래 머무는 직원들에게도 용이한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수납을 최대한 확보했어요. 출입문이나 벽면이 일직선이 아니고 살짝 틀어져 있어서 틈이 생기게 되었는데 모두 수납으로 활용한 거죠. 비스듬한 면을 활용한 수납이기 때문에 뒤쪽으로 갈수록 수납 면이 점점 넓어져요. 부피가 크지 않은 안경을 보관하는 수납용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만약, 부피가 큰 물품을 보관해야 하는 스포츠용품점이었다면 설계가 달라졌겠죠. 자세히 보시면, 시력 검사실 문을 열면 그 문에 선반이 숨겨져 있어요. 거울을 보다가 안경을 몇 개 올려놓을 수 있는 용도로 가구를 섬세하게 제작했어요.

 

— 공간 전체적으로 흰색이 주로 사용됐어요. 오염될 우려는 없었나요?

오히려 지금의 가구가 새것이어서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흐르면서 가구나 벽면에 계속 페인트를 덧칠하게 되거든요. 그렇게 생겨난 자국과 켜켜이 쌓인 흔적들이 어색함을 덜어낼 거예요. 라텍스 색깔도 마찬가지예요. 점점 노랗게 변하면서 가죽처럼 보일 테죠. 바닥도 녹이 슬면서 자연스러움이 더해질 거라고, 지금보다 미래를 상상하며 만든 공간이에요

성채은 기자

사진 노경

자료 제공 및 취재 협조 푸하하하프렌즈 

장소
오르오르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대사관로 35 사운즈한남 1층 오르오르
시간
매일 11:00 - 21:00
크리에이터
푸하하하프렌즈
성채은
희망과 다정함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는 낙천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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