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3

밤의 타이베이 여행자를 위해, 공간 콘셉트가 독특한 바 3

헤이팝 Editor’s pick
휴가를 생각하기 좋은 7월입니다. 저도 대만 타이베이에서 보낸 휴가를 떠올려 봤어요. 그때는 타이베이 골목골목, 지하와 지상에 자리한 주점들을 여럿 누볐는데요. 당시 방문했던 곳 중 낯선 감각을 일깨우는 콘셉트의 바(bar) 세 곳을 모아 소개합니다. 평소에는 평범하고 아늑한 바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평소와 다른 선택을 하는 데 여행의 기쁨이 있기도 하니까요.

1. 언더랩

밤이 되면 조용한 다안 구의 골목, 휴대폰 지도를 켜고 갸웃거리는 이들이 보인다면 그 가까이 언더랩(unDer lab)이 있습니다. 평범한 빌라처럼 보이는 건물의 1층, 여기가 맞나? 확신하지 못한 채 들어서면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나올 텐데요. 계단을 따라 내려가세요. 그곳이 지금 타이베이에서 뜨겁게 주목받는 바 중 한 곳, 언더랩입니다.

언더랩의 디귿자 바 형태. 조명 컬러는 시즌마다 바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진은 ‘오션’을 테마로 푸른색 조명을 사용했던 때의 모습. 이미지 출처: 언더랩 인스타그램(@u_n_d_e_r_l_a_b)

블랙 컬러와 메탈 소재가 두드러지는 바 내부는 다소 생경한 형태입니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디귿(ㄷ)자 형태의 바입니다. 그리고 그 중앙에 바텐더가 음료를 메이킹하는 아일랜드 바가 마련돼 있어요. 바 좌석에 앉은 손님이 바텐더의 퍼포먼스를 바라볼 수 있는 구조인 셈이죠. 

 

‘지하 실험실’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언더랩에서는 실험 끝에 얻어진 섬세한 한 잔을 만나게 됩니다. 이 바의 지향을 드러내는 고정 메뉴들과 더욱 흥미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시즌 메뉴가 준비돼 있습니다. 당시 차(茶)를 활용한 메뉴 등 다양한 칵테일을 맛봤는데요, 그중에서도 개미가 들어간 젤리를 가니쉬로 사용한 ‘트로피컬 페니실린’을 처음 마주했을 때 충격이 생생하네요.

오른쪽 사진이 ‘트로피컬 페니실린’ ⓒ 헤이팝

바 내부의 조명 활용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무대 위의 배우에게 핀 조명을 비추듯, 바에 놓인 음료만을 비추는 조명이 좌석마다 설치돼 있거든요. 한 잔 한 잔이 작품 같은 칵테일임을 부각하는 프레젠테이션이라고 느꼈습니다.

 

인스타그램 @u_n_d_e_r_l_a_b

2. 랩

바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든, 이곳은 그 이미지를 배반할 거예요. 언더랩이 실험실을 주요 정체성으로 삼은 ‘바’라면, 랩(Lab)은 보다 더 ‘실험실’에 가깝습니다. 어느 박사의 연구실처럼 차가운 회색빛 외관을 보니 들어서기가 망설여지더군요. 용기 내 들어선 내부 공간에서도 일관된 분위기가 흐릅니다. 메탈 소재의 바, 회색빛 벽과 천장, 극도로 절제된 가구와 집기, 그리고 실험에 쓰이는 이름 모를 도구들까지 이곳이 바이자 실험실임을 실감케 하죠.

랩의 외관 ⓒ 헤이팝

이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주문은 어떻게 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어요. 실험용 흰 가운을 입은 바텐더들이 생소하고 신비로운 맛의 세계로 사람들을 이끌어 주거든요. 랩의 메뉴판에서는 모히토, 쿠바 리브레, 올드 패션드 등 익숙한 클래식 칵테일 이름도 찾을 수 있습니다만, 그 맛과 빛깔은 자못 색다릅니다. 여과와 재증류, 침출 등 다양한 실험 과정을 통해 리메이크한 버전이기 때문이죠.

마른오징어와 해초를 재료로 사용한 진토닉 ⓒ 헤이팝

클래식 칵테일이 그러할 정도인데, 다른 메뉴들은 얼마나 독창적일까요? 아로마테라피에서 영감을 얻은 칵테일부터 각양각색 향신료와 꽃, 콩과 해산물 등을 재료로 삼은 칵테일까지 개성 강한 메뉴들이 준비돼 있습니다. 당시 마른오징어와 해초가 들어간 진토닉을 마셨는데요. 기상천외하리라는 상상과는 달리 은근히 감도는 감칠맛에 한 잔을 금세 비웠습니다. 랩은 다채로운 맛을 탐구하기를 좋아하는 술의 긱들이 아끼는 바라고 해요. 모두에게 추천하기는 어려우나, 맛에, 특히 술맛을 탐구하는 일에 열정을 품은 분에게는 의미 있는 경험을 선사할 공간입니다.

 

인스타그램 @lab_tw

3. 크라우치 앤 하이드

크라우치 앤 하이드(Crouch & Hide)는 낯선 도시의 밤, 새롭고 향긋한 술을 따라 이곳저곳 거닐다 느지막이 들어선 바입니다. 취기에 많은 감각이 무디어져 있었지만, 이곳의 콘셉트와 인테리어, 메뉴판 디자인이 근사하다고는 선명히 느꼈습니다. 언더랩과 랩이 실험적이고 과감한 시도가 도드라지는 바라면, 크라우치 앤 하이드는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술과 요리를 편안히 즐기기 좋은 공간입니다.

크라우치 앤 하이드의 공간은 매우 넓은 편. 그중 창가쪽 공간 일부 ⓒ 헤이팝

붉은색을 포인트 컬러로 사용한 내부는 바 좌석과 테이블 좌석으로 나뉘어 있어요. 방문 목적이나 동행한 이들의 취향에 맞춰 알맞게 선택할 수 있죠. 

냇 킹 콜의 노래 ‘Autumn Leaves’에서 영감을 얻은 칵테일. 이미지 출처: 크라우치 앤 하이드 인스타그램(@bar_crouch.hide)

이 바는 오리지널 창작 칵테일과 클래식 칵테일은 물론 위스키와 와인, 푸짐한 음식까지 다채롭게 갖췄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 냇 킹 콜의 ‘Autumn Leaves’, 류이치 사카모토의 ‘A Flower Is Not A Flower’ 등 영화와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창작 칵테일들이 낭만적이에요. 서체와 이미지의 연출, 배치 등이 마치 푸드 잡지를 연상케 하는 메뉴판을 한 장씩 넘기면서 마음에 꼭 들어오는 한 잔을 골라 보세요.

 

인스타그램 @bar_crouch.hide

글·사진 김유영 기자

메인 이미지 출처 언더랩 인스타그램(@u_n_d_e_r_l_a_b)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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