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간, SNS를 후끈하게 달군 영상이 있다. 세상의 모든 화려한 쇼가 열린다는 라스베이거스에 갑자기 나타나 건물 외형이 자유자재로 바뀌는 돔 건축물을 찍은 영상들이다. 이어 노래에 맞춰 공간이 변신하며 좌중을 압도하는 U2의 콘서트 영상도 수많은 좋아요와 함께 인기를 얻었다. 합성이라고 의심을 살 법한 이 영상들은 현재 핫플로 꼽히는 ‘스피어(Sphere)’에서 벌어진 이벤트와 공연을 촬영한 것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파사드
스피어의 첫 등장은 올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라스베이거스 한복판에 세워진 거대한 돔 건축물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어두운 밤, 돔에 “Hello World”라는 글자와 함께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는 불꽃놀이 영상이 상영되면서 정체가 드러났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이 건물은 세계 최대 규모의 돔 건축물이자 엔터테인먼트 공간인 ‘스피어’였다.
스피어가 유명해진 이유는 시시각각, 자유자재로 변하는 파사드 덕분이다. 360도 스크린이 되는 스피어의 파사드(엑소스피어, Exosphere)는 독특한 구조를 활용한 영상들이 상영된다.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는 살아있는 이모지, 주변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눈, 세상에서 제일 큰 농구공, 지구에 불시착한 달, 으시으시한 표정의 핼러윈 호박 등. 상상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를 구현하는 엑소스피어를 보며 사람들은 감탄하고 이 순간을 남기기 위해 사진과 영상을 찍는다.
한편, 엑소스피어는 실험의 장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서 제일 큰 360도 스크린’이라는 점에서 아티스트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스피어의 공식 오픈일에는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의 작품이 엑소스피어를 채웠다. 이외에도 스피어 스튜디오팀이 각 이벤트에 맞춰 재밌고 신기한 미디어 아트를 제작하여 엑소스피어에 띄운다.
22세기 공연장
스피어가 더 큰 명성을 얻게 된 건 록밴드 U2의 콘서트가 열리면서부터다. 스피어는 콘서트와 영화가 상영되는 엔터테인먼트 전문 공연장으로, 대망의 첫 번째 공연은 U2의 콘서트로 낙점되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설명하자면, 9월에 시작한 U2의 콘서트는 미래의 공연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공연장은 외부와 똑같이 돔 형태로, 영상 스크린이 관객석을 180도로 둘러싼다. U2는 특별한 무대 장치 없이 미술감독 에즈 데블린(Es Devlin), 아티스트 존 제라드(John Gerrad), 영화감독 마르코 브람빌라(Marco Brambilla)와 협업하여 만든 영상을 180도 스크린에 상영한다. 그 덕분에 공연장은 노래에 따라 미국 네바다주의 사막이 되고, 숫자로 가득한 매트릭스 세계가 되며, 화려하고 거대한 벽화가 그려진 궁전이 되기도 한다.
이제 콘서트는 단순히 노래만 듣는 공연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제일 중요한 건 음향이다. ‘전문’ 콘서트장을 지향하는 스피어는 음향시설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공간 전체에 고음질의 오디오 장치를 설치하여 전 객석이 동일한 크기와 음질의 오디오를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어디에 앉아도 생생한 라이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속 세계로 빠지는 영화관
현재 스피어에서는 U2 콘서트뿐만 아니라, 영화 <블랙스완>과 <더 웨일> 등을 연출한 대런 아로노프스키(Darren Aronofsky) 감독의 신작 <지구에서 온 엽서>가 상영되고 있다. 이는 지구와 우주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SF 영화다. 지구 풍경과 생태계, 우주의 광활함을 담은 영상은 경이롭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영화가 객석을 상하좌우로 둘러싼 180도 스크린에 펼쳐지는 순간, 관객들은 이제까지 해본 적 없던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 속 세계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스피어의 좌석에는 오감을 자극하는 장치가 설치되었다. 그래서 영화 장면에 맞춰 좌석이 움직이거나 바람, 향, 온도가 조절된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지진이 나면 좌석이 흔들리고, 사막의 모래바람이 부는 장면이 나오면 좌석에서 바람이 나와 느낄 수 있으며, 깊은 바닷속 풍경이 나오면 좌석의 온도가 낮아져 물의 차가움을 경험할 수 있다. 이처럼 스피어는 영화의 경험을 2D를 넘어 3D, 4D까지 확장함으로써 이전과 완전히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모든 걸 가능케 하는 기술
앞에서 계속 강조했던 것처럼 스피어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돔 건축물이다. 그리고 동그란 외부 파사드에는 하키 퍽 크기의 LED가 120만 개 설치되어 그 어느 전광판(스크린)보다 더 정교하고 높은 화질로 영상을 제공할 수 있다. 이 어려운 구조가 가능하게 된 이유에는 최신 건축술은 물론, 인간이 수 십 세기에 걸쳐 쌓아온 수학 공식과 엔지니어링 기술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스피어의 홈페이지에서는 건물 설계에 어떤 수학 공식과 기술이 적용되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기술은 스피어를 지탱하는 한 축이다. 그래서 스피어에 들어서면 방문객은 최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중에서 제일 눈에 띄는 건 아트리움에 설치된 5대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우라(Aura)’와의 만남이다. 아우라는 로봇 역학과 인공지능 분야의 차세대 기술로 개발되어 표현력이 풍부하고 인간과 매우 유사한 외형을 지니고 있다. 5대의 아우라 로봇은 각각 연결, 창의성, 혁신, 수명, 생산성이라는 인간의 주요 능력에 초점을 맞춰 개발되었다고 한다.
새로운 랜드마크의 탄생
스피어의 기획과 운영을 담당하는 MSG Sphere는 스피어를 ‘살아있는 건축물’로 묘사한다. “스피어의 외부 파사드 – 엑소스피어(Exosphere) 덕분에 스피어는 살아있는 건축물이 되고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건축물이 되죠.”라는 MSG Sphere의 답변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MSG Sphere의 예상대로 스피어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과 방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오픈한 지 한 달이 훌쩍 지났음에도 엑소스피어는 물론, 스피어의 내부를 촬영한 영상이 SNS를 통해 계속 공유되고, 커뮤니티에는 방문 후기가 올라오고 있다. 비록 우리는 태평양을 가운데에 두었기에 지금 당장 라스베이거스로 달려갈 수 없지만, 나중에 라스베이거스에 가게 된다면 꼭 스피어에 가보도록 하자. 원래 이런 허무맹랑한 꿈 하나가 비행기 티켓을 끊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글 허영은 객원 필자
자료 제공 Sphere Entertainment, U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