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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8

콘셉트는 백의민족…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단복 디자인

무신사 스탠다드는 단복에 무엇을 담았나
지난 9월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선수단 결단식이 열렸다. 선수와 지도자를 포함해 천여 명이 참석한 결단식 현장은 마치 하얀색 물결이 일렁이는 듯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국가대표 단복 콘셉트가 ‘백의민족(白衣民族)’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미색 컬러뿐 아니라 단복의 형태도 눈에 띄었다. 데님 소재의 재킷과 바지로 구성했는데, 실루엣이 날렵하면서도 편안해 보였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국가대표 단복. 화보 속 인물은 태권도 국가대표 장준 선수다.

이번 단복의 디자인과 제작을 맡은 주체가 무신사 스탠다드(musinsa standard)다. 대한체육회는 단복을 통해 선수단의 생동감과 젊은 기세를 보여주길 바랐고, 1020 세대의 너른 사랑을 받는 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와 협업하게 된다. 현재의 단복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을까? 프로젝트를 담당한 무신사 스탠다드의 김지훈 맨즈디자인팀 디자이너, 이나래 마케팅팀장을 만났다. 이들에게 백의민족이라는 콘셉트를 떠올린 계기부터 곳곳에 반영한 디자인 디테일까지 두루 물었다.

무신사 스탠다드가 디자인한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단복 구성

Interview with 무신사 스탠다드

김지훈 디자이너 • 이나래 마케팅 팀장

곧 열리는 항저우아시안게임과 내년 파리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단의 개폐회식 단복을 제작한다. 이 프로젝트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이나래 올해 3월쯤 대한체육회의 제안을 받았다. 단복을 통해 젊고 활기찬 에너지를 불어넣고 싶다는 니즈가 있었다. 아시안게임이 9월에 열린다면 단복 제작은 그에 앞서 이뤄지기 때문에 타임라인이 꽤 타이트했다. 국가를 대표하는 옷을 만드는 일이었기에 신중하게 고민한 후, 참여를 결정했다.

 

‘단복 디자인’ 프로젝트라고 했을 때, 디자인해야 하는 요소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 디자인의 영역 범위가 궁금하다.

김지훈 제한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하나의 착장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우터와 이너, 팬츠는 필수라고 생각했다. 또 그 착장을 돋보이게 하려면 추가적인 아이템이 필요했기에 벨트와 슈즈, 가방과 양말, 키링을 준비했다. 착장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노력하는 한편, 젊은 감각을 더하려 했다. 요즘 패션 아이템으로 키링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키링을 제작했다.

이나래 디자인 팀에서 ‘선수들이 입장할 때 어떤 모습이라면 가장 좋을까?’를 굉장히 깊이 고민했다. 입장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구현했다. 벨트의 모양이나 키링 등은 그 상상의 결과다.

펜싱 국가대표 홍효진 선수가 단복을 착용한 모습

이번 프로젝트에서 꼭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면.

김지훈 대한체육회는 이번 단복을 통해 변화와 젊음 같은 키워드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 니즈를 충족하는 디자인과 더불어, 보다 익숙한 정장 형태의 단복도 준비했었다. 공익적이고 대외적인 프로젝트인 만큼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다행히 초기 프레젠테이션에서 현재 안에 대한 반응이 괜찮았다.

이나래 대회가 끝난 후에도 일상적으로 입을 수 있는 옷이면 더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디자인을 발전시키면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나.

김지훈 선수들이 주인공이라는 것. 개막식에는 여러 국가의 선수들이 등장하지 않나. 정장을 입은 선수단도 있고 전통 의상을 입은 선수단도 있다. 그 현장에서 우리 선수단이 더 돋보이고 멋있어 보이기를 바랐다.

근대5종 국가대표 전웅태 선수가 단복을 착용한 모습

그렇게 완성한 디자인의 콘셉트를 한 단어로 설명하면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고. 이 콘셉트를 떠올린 이유가 궁금하다.

김지훈 한국이라는 정체성에서 길어 올린 요소를 디자인에 반영하고 싶었다. 컬러라면 오방색이 될 수도 있고, 태극의 붉은색과 청색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오방색도 태극의 색도 고유한 상태 그대로일 때가 가장 아름답더라. 그래서 계속 자료를 찾다가 오래된 사진을 봤다. 미색의 옷을 입은 옛사람들이 찍힌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고 나니 모든 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완성된 컬러 조합을 설명해 달라.

김지훈 순수한 백색과는 또 다른 컬러다. 크림이나 아이보리에 가까운 색이다. 무신사 스탠다드의 기존 제품에도 비슷한 색상이 있지만 완전히 똑같은 색은 없다. 아예 흰색으로 제작할 경우, 입는 사람에게도 보는 사람에게도 좀 부담스러울 거라 생각했다. 상의 이너는 검정색으로 정해 균형을 맞췄다.

 

백의민족이라는 콘셉트뿐 아니라, 디자인 곳곳에 전통적인 디테일을 반영했다. 어떤 디테일들이 있나?

김지훈 데님 아우터에는 팔작지붕*을 연상시키는 절개 라인을 넣었다. 한옥에서 보이는 건축적 라인을 따서 절개선에 반영했다. 단추와 리벳에는 각각 전통 북 문양과 태극 문양을 넣었다.

* 지붕 위에 까치박공이 달린 삼각형의 벽이 있는 지붕.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팔작지붕에서 영감을 얻은 절개선. 한옥의 지붕을 연상케 한다.
전통 북 문양을 넣은 단추
주머니 끝에 달린 리벳에는 태극 문양을 넣었다.
클로즈업 사진으로 흰색과 아이보리색 사이의 컬러와 소재를 가늠할 수 있다.

수많은 자료와 레퍼런스를 보며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시간이 필요했겠다. 무수한 모티프 중에서도 현재 반영된 요소는 백색, 팔작지붕, 북, 태극 문양 등이다. 이 요소들이 선택된 이유는 무엇인가?

김지훈 디자인 개발 당시 수많은 자료를 모아서 보고 공부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다녀왔다. (웃음) 전통을 해석할 때는 사려 깊게 접근해야 한다. 이미 그 자체로 고유하고 아름다운 것을 어설프게 변형하고 싶지는 않았다. 현대적으로 풀어내더라도 이질적이거나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운 멋이 나는 요소들을 차용하려 했다. 팔작지붕의 선처럼 말이다. 또 키링은 노리개에서 착안했는데, ‘노리개’라는 개념은 그대로지만 끈이나 매듭법은 현대적으로 바꾼 것이다.

노리개에서 영감을 얻은 키링. 끈 사이에 끼운 고리는 백마노 원석으로 만든 것이다.
재킷 디테일

단복에는 데님과 시원한 기능성 원단을 사용했다. 소재 선택 시에는 무엇을 고려했나?

김지훈 국제대회에 출전한 각국 선수단의 단복을 많이 봤다. 데님을 입은 선수단도 있었는데, 그들의 기운이 좋아서 매우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항저우 9월 날씨는 습하고 더운 편이라 일반 데님은 적합하지 않을 듯했다. 기능성 원사 쿨맥스(COOLMAX®)를 혼용한 원단을 사용하는 한편 데님의 두께를 더 얇게 만들었다. 쿨맥스 혼용 원단은 땀을 빠르게 흡수하고 배출하며, 신축성도 좋기 때문에 선수들의 활동이 자유롭다. 원단 후보는 다양했지만 ‘쾌적함’과 ‘활동성’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명확했으므로 선택에 어려움은 없었다.

 

 

무신사 스탠다드 팀이 선수촌에 방문해 선수들 체형을 파악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김지훈 보통 선수단의 치수를 잴 때는, 한 사람 한 사람 정확하게 치수를 재서 그에 맞춘 옷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들었다. 우리는 선수들이 좀 더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방식을 선택했다. 단복 디자인은 같더라도 선호하는 핏에 따라 커스텀이 가능하게 했다. 평소 옷을 크게 입는 것을 좋아한다면 크게, 딱 맞는 옷을 좋아한다면 딱 맞게 입을 수 있다. 같은 단복이라도 실루엣은 다 다르게 나올 수 있는 거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국가대표 단복

한 사람 한 사람의 취향과 선호를 고려하려면, 치수를 재는 일과는 별도로 부가적인 과정이 필요했을 텐데.

김지훈 옷 샘플을 다양하게 만들어서 가져갔다. 보통 바지 사이즈는 26, 27, 28… 이런 식으로 정해져 있지 않나. 그 사이즈를 모두 준비하는 한편, 바지 길이를 각기 다르게 한 샘플들까지 준비했다. 예를 들어 27 사이즈의 바지를 입는다고 해도, 바지 길이는 보통 27 사이즈 바지의 길이보다 더 긴 것을 선호할 수도 있잖아. 특히 운동선수의 경우, 같은 사이즈를 입는 선수들이라 해도 종목에 따라 체형이 무척 다르기 때문에 더욱 다양하게 준비했다. 샘플만 80벌 이상 만들었다.

선수들이 샘플을 입고 나오면 치수를 재고, 선호하는 핏을 반영해 제작하는 방식이었구나. 그 모습을 그려보니 옷 가게의 피팅 룸이 떠오르기도 한다. (웃음)

김지훈 실제로 수많은 샘플을 가져갔기 때문에, 치수를 재는 공간을 매장처럼 만들어 두고 선수들이 삼십 분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방문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선수 한 명을 디자인 팀원 한 사람이 일대일 마킹하면서 응대했다. 코치단 중에서는 다소 쑥스러워하는 분도 계셨지만,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좋았다. 옷을 입어 보는 선수들의 표정이 즐거워 보였다.

이나래 보통 단복 치수를 잴 때 완성된 샘플을 입어 보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들었다. 직접 입어 보며 치수를 정했다는 점이 선수들에게 자그마한 재미 요소가 되어 주었을 수도 있을 듯하다.

김지훈 실제로 피팅 룸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사람은 다 다르니까 선수들이 옷을 선택하는 방식도 전부 다른 게 당연하다. 처음 입은 것을 바로 선택하는 선수도 있고, ‘긴 게 나아요? 짧은 게 나아요?’ 물어보며 곰곰이 고민하는 선수도 있었다. 친한 선수와 똑같은 걸로 달라는 선수도 있었고. (웃음) 유쾌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그 과정을 끝내는 데는 얼마나 걸렸나?

김지훈 프로젝트 자체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제안부터 단복 생산까지 4~5개월 안에 이뤄져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치수를 재는 과정 역시 1~2주 안에 끝내야만 했다. 당시 선수촌에 여덟 번 정도 방문했다. 선수들이 진천 선수촌에서만 훈련을 받는 것이 아니더라. 종목이나 훈련 내용에 따라 전국 각지, 해외에서 훈련받는 선수도 많다. 팀을 나누어 진천, 파주, 수원, 태릉 등 여러 지역을 방문해 치수를 쟀다. 부득이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지역에 있는 선수들과는 동영상 자료로 정보를 전달하고, 전화로 대화하며 사이즈를 맞춰 나갔다.

 

비교적 친숙한 정장 형태의 단복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의 단복이 탄생했다. 대한체육회 입장에서도 과감한 도전을 한 셈이다. 대한체육회의 반응은 어땠나.

이나래 초반에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과정에서 많은 논의를 거쳤다. 콘셉트를 잡는 일부터 디테일까지 세세하게 공유하고 회의를 했기 때문에, 방향을 확정한 후로는 지지해 주셨다.

브레이킹 국가대표 김헌우 선수

국가대표 5인이 등장하는 단복 화보를 공개했다. 화보를 기획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나래 단복이 아주 멋있게 완성된 만큼, 이 단복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방법을 고민했다. 시각적으로 강렬하면서도 디테일까지 잘 보여주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모델 화보를 진행하는 아이디어도 나왔었다. 그렇지만 ‘국가대표 단복’이라는 의미와 진정성은 선수들이 가장 잘 표현하리라고 판단했다. 선수를 직접 섭외하기로 하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선수 리스트를 확인하며 라인업을 구성했다.

태권도 국가대표 장준 선수(좌), 리듬체조 국가대표 김주원 선수(우)

그래, 안 되면 어쩔 수 없어. 근데 할 때까진 해 봐.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 같아요.

펜싱 홍효진 선수, 무신사 스탠다드와의 인터뷰 중에서

펜싱 국가대표 홍효진 선수(좌), 근대5종 국가대표 전웅태 선수(우)

리듬체조 김주원 선수, 브레이킹 김헌우 선수, 태권도 장준 선수, 근대5종 전웅태 선수, 펜싱 홍효진 선수 등 5인이 화보에 참여했다. 이 선수들과 어떤 비주얼을 만들고 싶었나.

이나래 각기 다른 종목의 특성을 확연히 보여주고 싶었다. 팀 코리아의 슬로건은 ‘비욘드 유어셀프(Beyond Yourself)’다. 다른 선수가 아닌 스스로를 이긴다는 것,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뜻이다. 한계를 넘어서는 모습과 도전 정신을 화보와 인터뷰에 담아내려고 했다.

▲ 항저우 아시안게임 팀 코리아 단복 캠페인 영상

내가 이뤄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지금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각하고, 정말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훈련하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 근대5종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근대5종 전웅태 선수, 무신사 스탠다드와의 인터뷰 중에서

참여한 선수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이나래 선수마다 달랐다. 화보 촬영 경험이 있는 선수들도 있고 이번이 처음인 선수들도 있었다. 촬영 경험이 별로 없는 선수들은 초반에는 다소 부끄러워했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 본인 종목의 포즈를 취할 때는 눈빛이 달라졌다. 선수만이 낼 수 있는 아우라를 확실히 느꼈다. 장준 선수가 발차기를 할 때, 김헌우 선수가 브레이킹 동작을 취할 때 등 선수들이 동작을 선보일 때마다 촬영장에 감탄사가 이어졌다.

뜻깊은 작업에 참여한 소감은.

김지훈 결단식 날 선수단이 단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뭉클했다. 프로젝트 내내 ‘주인공은 국가대표다’라는 생각을 품고 작업했는데, 그 점이 느껴진다면 기쁘겠다.

이나래 새로운 단복이 아무쪼록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좋겠다. 프로젝트의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공들였다. 그 진심이 잘 전달되기를 바란다. 개막식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웃음)

 

대한체육회와는 이번 협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일들을 도모할 계획이라고. 어떤 일들을 예정 중인가?

이나래 우선은 이번 아시안게임을 잘 마무리하는 한편 내년 파리올림픽을 준비해야 한다. 파리올림픽 프로젝트 타임라인을 대한체육회와 함께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파리가 패션과 깊이 관련된 도시인만큼, 대한체육회는 한국의 패션이나 문화를 어떻게 알릴지도 고민하고 있다. 관련해 무신사 스탠다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 중이다. 물론 아직은 초기 단계다.

단복 재킷 안쪽

파리올림픽 단복에 대해 구상하고 있는 바가 있다면, 공개할 수 있는 선에서 귀띔해 달라.

김지훈 계속 고민하고 있다. 파리올림픽 참가국의 단복에 어떤 디자이너가 참여하는지에 관한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팬데믹은 패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 패션계에 등장하는 디자인들은 자연스럽고 편안하면서도 럭셔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트렌드의 변화가 어느 정도 반영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진행 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

총괄 이건오

상품 디자인 및 제작 김지훈, 박지은, 정진우, 유소연, 허경구, 민홍일, 조우현

콘텐츠 기획 이나래, 강혜민, 이소라, 류솔, 조하늘

사진 • 영상 이재혁, 김범수, 조성환, 홍지표

협력 대한체육회

김유영 기자

자료 제공 무신사 스탠다드

프로젝트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국가대표 단복 디자인>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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