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하이라인(The High Line)은 맨해튼의 서쪽 허드슨 강을 따라 놓여 있는 버려진 상업용 철도를 리모델링하여 만든 공원이다. 이 기찻길은 1930년 대부터 도시에 있는 공장과 창고에 물자를 운반했던 열차들이 사용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가 만들어지고, 대중교통이 발달하게 되자 기차보다는 화물트럭으로 물자를 운송하는 것이 선호되기 시작했다.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이 기찻길은 점차 제 쓸모를 잃어가게 된다. 결국 이 철도는 1980년에 폐쇄되고 말았다. 그렇게 수십년 간 폐허로 남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이 다시금 도심 속 자연과 휴식을 더하는 공간으로 탄생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게 되었다.
2003년부터 이곳에 대한 공원 조성 계획이 있었지만 그 당시 개발 비용으로 1억 5천만 달러가 들 것으로 예측되었다. 시 정부가 지불할 수 없을 정도의 금액이 추정되면서 공원 계획은 그저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그렇지만 도시를 살리기 위해 프렌즈 오브 하이라인(Friends of the High Line)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졌고, 이들은 공모전을 통해 공원 디자인을 선정했다.
2009년 공원이 첫 선을 보이게 되면서부터 주변에 있는 부동산 개발이 활발해졌고, 현재는 고급 아파트 및 갤러리 등이 생겨나며 거리의 모습이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2019년 마지막 섹션이 공개되면서 하이라인은 더 이상 기찻길이 아닌, 명실상부한 도심 공원이 되었다.
처음부터 철도가 빌딩 숲 사이에 만들어졌기에, 하이라인은 시민들에게 접근성만큼은 최고인 곳이었다. 이런 장점을 살리기 위해 기존의 철도 골격을 유지하면서 주변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재생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그 덕분에 공원은 자연스럽게 도시에서 중요한 휴식의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게 된다. 이제는 뉴욕 시민과 더불어 뉴욕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다양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명소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런 역사를 지닌 곳인 만큼, 이곳을 즐기는 방법은 꽤나 다양하다.
여기서는 그저 쉬면서 여유를 즐기는 것도 좋고, 도시를 따라 쭉 이어진 길을 따라 걷는 것도 좋다. 북적이는 맨해튼 거리에서 벗어나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허드슨 강과 도시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된다. 철마다 이곳을 아름답게 만드는 자연의 모습을 눈과 사진으로 담는 것도 이곳을 만끽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특히 봄과 여름에 다양한 꽃과 식물들이 길을 싱그럽고 화사하게 만들어주는 모습은 그저 장관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곳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은 바로 해가 질 때라고 한다. 도시의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하기 좋은 장소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강에 녹아 드는 해의 모습과 더불어 노을 빛으로 물들어가는 도시의 모습은 낭만에 젖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작품들과 더불어 수시로 진행되는 공연 덕분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도시답게 하이라인은 매년 30개 이상의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쇼, 조각, 벽화 등 일부 작품들은 그대로 공원에 전시된다. 길 전체가 야외 갤러리, 콘서트 홀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이곳에서는 예술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길을 거닐며 감각적인 크리에이터들의 끼와 창의성을 자연스럽게 즐기는 것이야말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 예술 도시를 제대로 느끼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최근 하이라인에는 커다란 핑크빛 나무가 세워져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이라인의 최종 구간인 스퍼(Spur) 지역에 설치된 작품, ‘올드 트리(Old Tree)‘는 바로 파멜라 로젠크란츠(Pamela Rosenkranz)의 작품이다. 마치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듯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 이 작품은 섬세한 가지와 뿌리를 가지고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인간의 장기 및 혈관을 떠올리게 한다. 뿌리와 같은 요소들이 주춧돌에서 기어 나오는 것 자체가 아름다우면서도 묘하게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점이 흥미롭다.
강렬한 색과 형태, 규모 덕분에 쉽게 눈길을 돌릴 수 없게 만드는 이 작품은 보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인간의 진화 과정을 생각할 수도 있으며 고대의 지혜와 자연을 연상시킬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작품을 관람하는 모든 이들은 사람과 생명, 그리고 도시의 불가분의 연결을 고려하게 된다.
“
이 색은 꽤 매력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저는 깨어 있거나 거부하는, 부조화적인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파멜라 로젠크란츠
”
작가는 수많은 종교, 신화, 민담에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광범위한 역사적 원형을 참조하여 작품을 만들어냈다. 여기서 원형인 ‘생명의 나무’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생명 그 자체의 근원 또는 삶과 죽음의 순환을 나타낸다. 이를 통해 고대 지식과 인간, 그리고 생명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은유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합성물이 자연과 혼합된 미래를 가리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 독특한 나무를 선보인 파멜라 로젠크란츠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멀티미디어 작가다. 1979년 스위스 중부에 있는 우리(Uri) 주에서 태어났으며, 베른과 취리히에서 각각 예술과 문학을 배웠다. 암스테르담에서 독립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하며 작품 활동을 펼치기도 했지만 현재는 취리히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작품은 작품을 이해하는 주관적인 요소에 의문을 제기하고, 보는 사람의 초점을 인간 행동의 물질적, 생화학적, 신경학적 결정 요인으로 이동시키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또한 작가는 인간을 자연과 물질 우주의 중심에 두는 세계관에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며, 사변적 실재론으로 알려진 철학 운동의 사상가들과 협업을 진행하며 다양한 개념 미술을 표현하고 있다. 주로 빛과 액체를 활용하여 퍼포먼스, 조각, 회화 및 설치 예술을 아우르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지만, 그녀에게 소재와 영감의 한계는 없어 보인다.
주변 환경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욕구를 반영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한 그녀의 작품 중 그녀를 대표하는 것은 점성 유체로 채워진 수영장(Skin Pool), 실리콘으로 채워진 생수병 모음(Pour Yourself), 하늘색 합성 염료로 물든 물이 흐르는 주방 수도꼭지(Blue Runs) 등이 있다. 흠집 없고 이상적인 자연을 반영하기 위해, 그녀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색’이라고 한다. 작가의 필터로 독특하게 변신한 주변 환경들은 관람자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을 이끌며,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의문을 남긴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실험적인 도전을 즐겨 하는 작가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폰다치오네 프라다, 스위스 바젤의 쿤스트할레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진행했으며,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스위스 관에서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러시아 모스크바 현대미술관, 프랑스 파리 조르주 퐁피두 센터, 일본 오카야마 아트 서밋과 프랑스 리옹 비엔날레를 포함한 주요 국제 그룹 전시회에 참가했다. 이런 활발한 활동을 펼친 그녀의 작품은 홍콩의 K11 아트 재단, 스위스 취리히의 쿤스트하우스 취리히, 미국 일리노이의 시카고 현대 미술관, 뉴욕의 MoMA,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현대 미술관을 포함한 전 세계 주요 기관의 컬렉션에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