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올림픽대로 한복판에 미술작품이 걸렸다. 7월부터 여의도~노량진 구간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 6기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송출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출퇴근길 도로에서 예술 작품을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국립현대미술관(MMCA)의 2025 ‘지금 여기, 국립현대미술관’ 캠페인의 일환으로, 미술관을 전시장 밖으로 확장한 ‘도로 위 미술관’ 실험이다.
“예술은 지금 여기, 우리 삶의 한가운데에 있다”라는 이번 캠페인의 메시지는, 미술이 전시장 안을 넘어 거리와 일상 속에서 시민과 만나는 방식으로 구현됐다. 지난 5월부터 서울 시내 곳곳의 버스정류장·지하철 기둥·가로등 등 다양한 옥외 공간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을 활용한 이미지가 펼쳐졌고, SNS 참여 이벤트 등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며 캠페인이 이어졌다. 이 캠페인은 7월 ‘도로 위 미술관’으로 영역을 넓히며 예술의 접근성을 확장했다.
전광판 콘텐츠는 대국민 온라인 투표를 통해 국민이 직접 선정한 미술관 소장품 10점으로 구성했다. ‘자유’, ‘휴식’, ‘일상’, ‘희망’, ‘평화’ 등 10개의 키워드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장욱진, 이중섭, 박수근, 황규백, 주경, 이제창 등의 작품이 선정됐으며, “지금 여기 자유”, “지금 여기 희망”처럼 키워드에 맞는 메시지로 시각적 인상을 강화했다. 이번 캠페인은 단순한 전시 홍보를 넘어, 미술이 어떻게 공공 영역에서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에 스며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입체적인 시도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6년부터 매년 공공 캠페인을 통해 시대적 메시지를 담아 왔다. ‘예술이 당신의 삶을 변화시킵니다’(2016-2017), ‘이것이 예술이다’(2018), ‘다시 미술관으로’(2021-2022) 등 미술관이 일상 속 예술 플랫폼이자 공공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비전을 꾸준히 보여준 것이다. 2025년 캠페인은 예술의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정서적 거리까지 줄이고자 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시민들이 길을 걷거나 차를 타고 지나가거나, 혹은 극장에서 영화를 기다리며 예술을 마주하는 순간들이 늘어나는 것. 그것이 바로 이번 캠페인의 목표다.
Interview | 국립현대미술관 홍보관 윤승연
— 국립현대미술관 캠페인은 2016년부터 이어왔다고요.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처음 시작은 ‘예술은 어렵고 멀다’라는 인식을 바꾸고 싶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어요. 2016년 당시 대국민 조사를 해보니, 미술관에 대한 신뢰는 높았지만 다소 거리감이 있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그래서 예술을 ‘우리 삶 속의 친구’처럼 느끼게 하자는 취지로 ‘예술이 당신의 삶을 변화시킵니다’라는 캠페인을 2016년에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도 매해 시대 흐름을 반영한 주제를 고민하며, 예술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죠.
— 올해는 어떤 고민이 담겼나요?
캠페인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지금 이 사회에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코로나19 당시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역사상 처음으로 휴관했고, 관람 자체가 불가능한 시기였죠. 그때는 ’다시 미술관으로 Reconnect’ (2021-2022)캠페인을 통해, 미술이 일상 회복의 계기가 될 수 있길 바랐어요.

올해도 마찬가지였어요. 지난겨울, 예상하지 못했던 큰 혼란과 불안을 겪으면서 사회 전반이 많이 위축됐죠. 미술관 방문객도 70%나 감소했고요. 그런 시기에 ‘과연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점점 일상이 회복되는 걸 보면서, 이번에는 예술이 그 변화의 곁에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지금 여기,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이름의 캠페인이 만들어졌고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예술이 잃어버린 평온과 위로를 조용히 건네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 특히 이번에는 시민들이 직접 작품을 고르고, 거리 곳곳에서 캠페인을 펼쳤죠.
‘국민이 직접 선택한 작품으로 이야기를 해보자’라는 생각이 출발점이었어요. 국립현대미술관의 1만 1,800여 점 소장품은 결국 국민의 자산이니까요. 내부 TF를 꾸려 키워드별 후보작을 정리했고, 온라인 투표를 통해 10점을 최종 선정했어요. 약 5천 명이 참여했고, 그런 과정을 거친 만큼 시민들의 감정적 공감도 더 클 거라 기대했죠.
선정된 작품은 전시장이 아닌,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지나치는 공간에 배치했어요. 버스정류장·지하철 기둥·가로등 배너는 물론, 전국 CGV 영화관과 서울 올림픽대로 전광판에서도 작품을 소개했어요. 목표는 하나였죠. 예술이 전시장을 벗어나,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존재가 되길 바랐어요. 그렇게 미술관의 문턱을 조금 더 낮추고 싶었어요.

—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었나요?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번에 전하고자 한 메시지도 궁금합니다.
캠페인을 시작하고 일주일 만에 150건이 넘는 온라인 반응이 올라왔어요. 그중에 미술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평이 기억에 남아요. “현실의 고통, 마음속 미움, 자신을 향한 질타가 아름다움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라는 말이 인상적이더라고요. 그만큼 예술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사실 이번 캠페인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도 그 지점과 닿아 있어요. 예술이 거창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무언가가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 곁에 함께 숨 쉬는 존재라는 것. 꼭 전시장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길을 걷다 우연히 작품을 마주치는 순간에도 예술은 우리 삶에 충분히 닿을 수 있어요. 그런 짧은 감정의 파동이 ‘나도 미술관 한 번 가볼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글 김지오 기자
취재협조 및 자료제공 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