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가구 컬렉션은 그녀의 오랜 파트너이자 예술적 협력자인 패트릭 로빈(Patrick Robyn)과 함께했다. 그 시작은 벨기에가 코로나로 봉쇄령에 들어갔을 때였는데, 집에 갇힌 두 사람은 주변 환경을 더 예민하게 인식하게 되었다고. 최종 결과물은 두 사람이 수십 년간 만들어온 독특한 세계관의 확장으로 볼 수 있다. 그녀가 중성적인 실루엣으로 성 개념을 초월한 앤드로지너스룩의 정수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가구 컬렉션 역시 그녀의 시그니처라고 볼 수 있는 블랙 앤 화이트 무채색을 주로 사용하며 건축적인 동시에 패셔너블하게 완성했다.
본질적으로 그녀의 창작은 대조적인 관계를 탐구하고 이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강인함과 연약함, 서정성과 기능성, 구조적이고 비체계적인, 급진적이고 점진적인 것들 사이에서 상호 작용을 발견해 독특한 형태로 구현하는 식이다. 가구 컬렉션에서 원형, 사각형, 삼각형, 십자형 등 기하학적인 형태가 쌓이고 엇갈리며 새로운 형태를 추구하는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단순하면서도 강인한 분위기를 갖는 ‘타카(Taka)’ 벤치는 백합 나무를 활용해 견고하면서도 부드럽게 조각된 곡선형 프레임을 완성했으며 높이 34cm의 낮은 다리는 안정감을 준다. ‘쿠베 1(Kubé 1)’은 사각 테이블을 지탱하는 4개의 평면이 중앙에서 만나는 독특한 구조에 화이트와 블랙의 컬러 대비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냈다. 테이블 다리에 드리워진 그림자마저 극적인 무드를 더한다. 윤곽선을 부각시킨 ‘쿠베 3(Kubé 3)’은 크림에 오렌지 조합이 따뜻하면서도 대담하다.
앞서 ‘타카’의 십자형 베이스가 원형 상판을 만나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시시(Cici)’ 원형 테이블은 상판의 오크와 캔버스의 조합으로 컬러 대비뿐만 아니라 재료의 질감 차이를 의도했다. 가구에 적용된 화가용 캔버스는 그녀가 30년째 애용하는 소재로, 그녀의 시그니처이자 DNA의 일부로 여겨진다. 앤트워프에 위치한 앤 드뮐미스터 플래그십 스토어의 모든 벽면은 이 캔버스로 덮여 있을 정도로 그녀는 캔버스 소재를 사랑한다. 테이블과 마찬가지로 ‘타부(Tabu)’ 스툴은 견고한 십자형 베이스에 원형 시트로 구조의 단순함을 기념한다. 특히 베이스의 테두리를 강조하는 신선한 컬러 매치에 다양한 업홀스터리 옵션을 제공한다. 그녀에 따르면 촉감은 가구를 매력적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십자형 다리 구조를 줄곧 사용한 이유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마치 형제, 자매처럼 나의 다양한 컬렉션은 동일한 부모 아래에 자연스러운 진화로 탄생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십자형 구조는 늘 심미적이며 실용적인 요구를 충족시킵니다.”라고 대답한다. 기하학적 형태의 시각적 효과, 구조적 안정성과 자연스러운 좌석 분할까지 가능한 구조라 자주 사용한다고.
이어, ‘오노(Ono)’ 컬렉션은 소위 액티브한 가구다. 예상치 못한 등받이의 기울기와 넓은 시트는 다양한 방식으로 의자에 앉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부드러운 벨벳과 만난 강렬한 탠저린 컬러를 비롯해 로즈, 카키 톤의 펀(Fern), 밝은 회색빛의 포그(Fog) 등 예상치 못한 컬러 연출로 의외성을 갖고, 가구의 면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했다. ‘프린(Frin)’ 오토만은 패션을 입었다. 의자이지만 테이블로도 활용 가능하며, 긴 블랙 프린지가 매력 포인트다.
앞서 소개한 매스감 있는 가구와는 또 다른 실루엣의 ‘엘레(Élé)’ 의자는 바닥면에 가볍게 닿는 구조로, 패트릭 로빈의 정교한 설계가 돋보인다. 직선과 곡선의 미묘한 전환이 특징으로,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D자형의 시트와 가느다란 선의 만남은 세련되고 우아하다. ‘아우라(Aura)’ 사이드 테이블은 하이(72cm) 그리고 로우(62cm) 두 가지 높이로 제작했는데, 상하부 두 개의 원을 가느다란 기둥으로 잇는 구조다. 여기에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LED 조명을 삽입할 수 있다. 조명과 함께 테이블의 질감은 더욱 깊고 풍부해지는데, 이것이 바로 감각을 위한 가구의 모습이다.
앤 드뮐미스터와의 일문일답
ㅡ 집에서 본인이 만든 가구를 사용하고 있나요? 특별히 애착이 가는 제품이 있다면요?
소파, 테이블, 콘솔 등 가구는 친밀한 디자인 영역으로 우리 일상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요. 공간에서 나아가 내가 누구인지 표현하는 근본적인 방식이 되죠. 내가 디자인하고 만드는 많은 것들은 개인적인 니즈에 의해 비롯됩니다. 내가 패션을 시작한 것도 나에게 필요한 옷을 직접 만들고 싶어서였죠. 마찬가지로 나만의 도자기, 접시, 가구를 원했어요. 모두 다 내 자식 같아서 특별히 어떤 제품이 가장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 일상생활에서 거의 모든 것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ㅡ 패션에서 선보였던 중성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스타일을 가구에 어떻게 담아내고자 했나요? 분야에 따른 작업의 차이점은요?
나는 항상 나만의 비전과 스타일을 개발하는데 집중합니다. 패션과 가구에 내가 담은 디자인 언어는 동일하지만 그 형태가 다릅니다. 가구는 내가 선택한 또 다른 표현을 위한 형태이며, 이는 내게 흥미로운 진화였어요. 내가 늘 관심 있는 건 3차원의 형태를 만드는 것입니다. 패션과 가구 디자인의 주 소재는 다르지만 머릿속에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구체화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동일한 프로세스라고 봅니다.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진진해요. 늘 곁에 두고 싶고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가구의 기능성, 심미성, 그리고 나의 시적인 감성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도전은 세락스와 함께여서 해낼 수 있었습니다.
ㅡ 주로 무채색이지만, 비비드한 컬러도 볼 수 있네요.
대조적인 관계를 좋아하는 만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컬러 대비는 흑백이에요. 마치 흑백사진처럼 이야기의 본질을 잘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다른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거나 가구가 다양한 환경에서 어울리기를 원하죠. 여러 환경에 맞게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히려 했어요.
ㅡ 패션, 식기, 조명, 가구에 이어 다음 도전 분야가 궁금하군요. 이 무한한 창조적 에너지의 원천은요?
나는 항상 내 길을 계속 갈 거예요. 나는 미래가 정해지지 않고 열려있는 그 상태가 좋아요. 창작은 내 인생에서 끝없는 탐구와 진화입니다. ‘러브 앤 뷰티’는 나에게 가장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