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샤를 드골 공항 터미널 2G의 탑승 라운지가 확 달라진 분위기로 승객을 맞이한다. 터미널 2G는 샤를 드골 공항의 개장 이후 국제선 승객 3분의 2를 맞이하고 가장 많은 환승객이 이용하는 곳이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두세 시간가량 대기하게 되는데, 공항 측은 이들에게 충분한 휴식과 환대를 제공하고자 했다. 샤를 드골 공항과 오를리 공항 등 프랑스의 주요 국제공항을 소유 및 관리하는 파리공항공단(Groupe ADP)은 새로운 호스피탈리티 브랜드 ‘엑스타임(Extime)’을 선보이며, 프랑스 디자이너 도로테 메일리슈종(Dorothée Meilichzon)이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았다. 도로테는 “이번 프로젝트는 1,300㎡ 규모의 공간을 심플하면서도 유쾌하고, 친밀하며, 타 공항과는 차별화될 수 있도록 의도했습니다.”라고 취지를 전했다.
이 새로운 공간은 프랑스 가구와 장식 예술, 장인 정신의 순수한 전통은 이어가되, 여행객들에게 다채로운 풍경을 제공하고 무엇보다 파리와의 명확한 연결 고리를 지닐 수 있도록 했다. 라운지는 휴식, 위생, 간단한 보드게임을 위한 공간 등 여러 영역으로 구분된다. 이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장난스럽지만 독창적이며 완전히 색다른 가구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라운지 벤치에 전체적으로 적용된 도톰한 자카드 원단 업홀스터리는 ‘메종 테베논(Maison Thévenon)’에 주문 제작한 것으로, 하운즈투스 체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행기 패턴을 반영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패브릭은 얼룩 방지 및 항균성이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항에서 더욱 효율적이다. 이뿐만 아니라 1920년대를 연상시키는 버섯 모양의 알루미늄 소재 조명을 곳곳에 배치하고, 쓰레기통은 실제 승무원들이 기내에서 쓰던 트롤리를 재사용했다.
사랑, 예술, 미식의 도시 등 여러 수식어가 따라붙는 파리를 연상시키기 위한 디자인 장치들도 흥미롭다. 파리의 명소인 뤽상부르 공원에서 옮겨온 듯, 홀 중앙에는 작은 원형 분수를 설치하고 그 주위로 그린 톤의 철제 의자를 놓아두었다. 실제 공원 의자처럼 기대어 앉을 수 있는 암체어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의자를 구비했다. 원형 분수를 설치한 이유도 재미있다. 지난 1635년 르 노트르(Le Nôtre)에 의해 현재의 팔각형으로 바뀌기 전 최초의 분수 형태가 원형이었기 때문이라고. 이 외에도 도시의 상징적인 건축물인 그랑팔레, 오페라 가르니에를 떠올리게 하는 장식물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또한 구불구불한 나뭇가지를 닮은 유광의 하얀색 조립형 가구이자 대형 오브제는 프랑스 예술가 장 마리(Jean-Marie)와 마르테 시모네(Marthe Simonnet)의 작품인 ‘나무그늘에서(A l’ombre des arbres)’로, 동서남북 자유롭게 원하는 방향으로 앉을 수 있어 편리하다.
(왼쪽) 차분한 블루 톤에 테라초를 활용해 경쾌한 분위기로 연출한 공용 화장실 ©Karel Balas
(오른쪽 버섯 형태의 알루미늄 조명과 비비드한 컬러로 레트로한 무드를 완성했다. ©Karel Balas
샤를 드골의 터미널 2E 홀 L에는 커다란 고양이 ‘이네스(Inès)’가 창밖의 활주로를 뒤로하고 곤히 낮잠을 자고 있는데, 이는 말레르브 파리(Malherbe Paris)가 디자인했다. 보안 게이트를 통과한 승객들에게 고양이처럼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라는 유쾌한 의도를 담고 있다. 시선을 돌려 위를 올려 보면, 예술가 샤를 페티용(Charles Pétillons)의 조명 설치물 ‘르 파르(Le Phare)’를 감상할 수 있다. 우리말로 등대를 뜻하는 작품은 흰색 풍선 혹은 구름을 닮아 친근한 모습이다. 야간에 조명이 켜지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며 공간을 풍성하게 장식한다.
이어, 조금 걷다 보면 푸스볼을 즐기거나 벤치에 앉아 쉴 수 있는 나무 그늘이 마련되어 있다. 푸른 잎 사이를 눈여겨보면 릴라 포핀스(Lila Poppins)의 ‘극락조’가 모습을 드러낸다. 약 20~50cm 크기의 이국적인 새 20여 마리는 놀랍게도 종이로만 만들었다고.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알록달록한 새의 모습이 찰나의 순간이지만 즐거움을 더한다.
샤를 드골 제1터미널은 작년, 약 2년 만에 재개장하며 사진 전시 <파리의 발라드(La Ballade de Paris)>가 진행 중이다. 터미널 진입 통로에 나열된 사진 작품은 프랑스의 사진작가이자 예술가인 장 프랑수아 라우지에(Jean-François Rauzier)가 촬영한 사진에 여러 이미지를 병치하고 복제하는 방식으로 완성한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사진의 콜라주를 ‘하이퍼-포토그라피’라고 칭하는데, 그만의 상상력과 초현실적인 감각을 토대로 에펠탑과 같은 파리의 랜드마크와 건축적 요소들을 연속적으로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
(왼쪽) 사진작가 Jean-François Rauzier의 <La Ballade de Paris> 전시
(오른쪽) 공항 출국장의 사진 전시 <Archisable>
오를리 공항 제3터미널에는 높이 9m에 무게 5톤가량의 대형 작품이 영구 설치됐다. 디자이너 아르노 라피에르(Arnaud Lapierre)의 ‘Vertigo’로, 현기증 또는 어지러움을 의미한다. 작품명은 비행기 이륙 초기에 탑승객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미리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한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알루미늄 구조에 150개의 서로 다른 크기의 유광 스테인리스 스틸 큐브로 구성된 설치물 내부로 들어가 하늘을 올려다보면 마치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처럼 일종의 현기증을 경험하게 된다고. 관제탑, 터빈 혹은 수수께끼 같은 토템을 연상시키는 오브제는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저마다의 목적지로 향하는 이들에게 독특한 방식으로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끈다.
글 유승주 객원 필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파리공항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