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7

<컷!> 두 작가가 담아낸 영화적 시선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9번째 타이틀 매치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연례 전시인 ‘타이틀 매치 2022’가 지난 11월 17일에 시작됐다. 올해로 9회차를 맞이한 타이틀 매치의 두 주인공은 영상설치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오메르 파스트와 임흥순이다.
오메르 파스트, , 2016, 스테레오스코픽 3D 필름, 컬러, 사운드, 15분 30초. Photo by Stefan Ciupek ⓒ오메르 파스트

이번 타이틀 매치의 제목인 ‘컷(Cut)’은 무언가를 잘라내는 행위이며, 영화감독의 ‘오케이 사인’을 상징하는 외침이기도 하다. 이는 영상의 세계에서 고유한 특질에 해당하는 형식적인 문법 원리이자 편집 기술을 은유하는 단어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함의한다. 수많은 컷들이 서로를 이어가며 영상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작품의 재료이자 시점, 관점이 되기도 한다.

링 위에 오른 타이틀 매치의 두 주인공

사진 출처: James Cohan

오메르 파스트(b.1972)는 예루살렘 출생으로 이스라엘과 미국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현재 독일에서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해 나가고 있다. 상이한 역사와 문화를 경험해온 그는 개인과 집단 기억 사이에 관심이 많다. 특히 개인의 기억과 집단 기억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연구하며 다큐멘터리와 극,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제작한다. 2000년대 초에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마틴 그로피우스(독일, 베를린)와 시대미술관(중국, 광저우), 피나코텍 데어 모데르네(독일, 뮌헨) 등의 기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베니스 비엔날레와 도쿠멘타, 베를린 국제영화제 등 다수의 국제 미술행사와 영화제에 초대됐다.

사진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임흥순(b.1969)은 서울 출생으로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와 공공미술 등 영화와 미술 장르를 해체하는 것과 동시에 확장하는 작업을 해왔으며,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역사적 공백을 메워가는 것에 관심이 있다. 1998년부터 작가로 활동을 시작해 뉴욕현대미술관 MoMA PS1, 광주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샤르자 비엔날레 등 다수의 국제 미술행사와 영화제에 초청됐다.

이들의 신작이 승부수가 될 수 있을까?

오메르 파스트의 <차고세일>, 임흥순의 <파도>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오메르 파스트의 ⓒheyPOP

오메르 파스트 <차고세일> 

‘찰칵!’ ‘찰칵!’ ‘찰칵!’ 1층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소리는 오메르 파스트의 <차고세일>에서 나오는 소리다. 작품에서 나오는 셔터 누르는 소리는 꼭 총알을 발사하기 위해 장전하는 과정처럼 날카롭고 강렬하다. 영상은 총 세 개의 화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화면에서 재생되고 있는 이야기는 단일하지만, 세 개의 영상은 이야기의 상이한 장면들을 비추고 있다는 것이다.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따라 세 개의 장면은 ‘줌 인’과 ‘줌 아웃’을 거듭한다. 이외에도 전시장에는 다양한 오브제들이 영상과 함께 어우러져 설치돼 있다.

오메르 파스트, , 2022, 3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29분 30초. Photo by Lukas Strebel ⓒ오메르 파스트

미국 뉴저지의 어느 가정집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잔디 정원용 장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담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주된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들이 섞이면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경계는 점차 희미해진다. 화자는 이미지를 뒤적이고, 시공간을 오가며 자신의 이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나게 된 사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로젝트는 20세기까지 미국 가정집에서 많이 가지고 있었던 정원용 장식 그리고 장식에 내재돼 있는 인종차별의 역사,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어떤 결과나 명분도 얻지 못한다.

오메르 파스트, , 2022, 3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29분 30초. Photo by Lukas Strebel ⓒ오메르 파스트

<차고세일>은 관람자로 하여금 한 화면에서 다른 화면으로 시선을 지속적으로 움직이게 하며 집중하게 한다. 영상은 최종적으로 정원용 장식이라는 하나의 조각이 소유되고 전해지며 발생하는 다층적인 의미를 모두 헤아리기 어렵다는 점을 방증한다. 단일한 이미지에 정치, 사회, 역사가 얽히며 전승되고, 가로지르는 폭력의 입체적인 면을 우리는 단번에, 온전히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지와 영상이라는 매체가 만들어내는 폭력과 윤리까지도 꼬집는다.

전시장 2층에 들어서면 임흥순 작가의 작품들이 배치돼 있다. ⓒheyPOP

임흥순 <파도>

전시장 2층에 들어서면, 넓게 트인 전시 공간을 만나게 된다. 임흥순의 작품들이 곳곳에 배치돼 상영되고 있는 모습이다. 전시장 출구 쪽에 다다르면 파란 구획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임흥순의 신작 <파도>가 송출되고 있다. 해변에 앉아 넘실거리는 파도를 감상하듯 관람자들은 비치된 의자에 앉아 흘러가는 영상들을 관람한다.

임흥순, '파도', 2022, 3채널 FHD 비디오, 컬러, 5.1채널 사운드, 48분 40초 ⓒ임흥순

일상에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사건과 그로 인한 슬픔을 파도로 은유한 작가는 세 개의 사건을 한 작품으로 엮었다. 한국에서 베트남 전쟁이라고 일컫는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1955~1975)’과 우리나라의 ‘여순 항쟁(1948)’ 그리고 ‘세월호 참사(2014)’다. 작가는 세 사건에서 국가 폭력과 바다라는 공통점을 찾아냈고, 사건의 중심에 선 매개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각각의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은 크게 세 명이다. 먼저, 베트남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1968년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 생존자인 응우옌 티 탄의 이야기를 한국으로 전달해 온 통역사 시내(응우옌 응옥 뚜옌)의 인터뷰가 영상을 통해 흘러나온다. 다른 화면에서는 왜곡된 여순 항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 온 역사학자 주철희의 인터뷰 영상이 송출된다. 마지막으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해 천도제를 지낸 미술 교사 출신의 영매 김정희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 명의 작가로서 사건들의 매개자를 자처하는 임흥순. 그는 다른 사건들이지만 반복되는 공동의 역사를 상기하고 구멍 난 것, 흩어진 것들을 찾아 덧대고 메우고자 한다.

과연, 두 사람의 타이틀 매치는 대결인가?

전시는 오메르 파스트의 6개 작품과 임흥순의 7개 작품, 총 13개로 구성돼 있다. 두 작가는 영상설치 및 영화감독으로 활동했다는 공통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으나, 표현 도구로서 영상을 해석하고 다루는 방식이 다르다. 전시장이라는 공간에서 영상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제 각각이다. 

 

오메르 파스트가 단일한 것의 입체적인 면을 최대한 확장된 형태로 보여주고자 했다면, 임흥순은 단일한 것 내부에 있는 구멍을 찾고 그것을 덧대고 메우고자 시도했다. 이들의 신작과 더불어 함께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을 봤을 때 차이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오메르 파스트, , 2007, 4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14분 10초. Photo by Lisa Wiegand and Nick Trikonis ⓒ오메르 파스트
오메르 파스트, , 2020, 홀로그래픽 프로젝션과, HD 비디오, 컬러, 사운드, 34분 45초. Photo by Laura Leglise; The Gate, Pierdrei Hotel, Hamburg ⓒ오메르 파스트

오메르 파스트는 자신의 작품 <캐스팅>에서 두 개의 스크린 앞, 뒷면들을 모두 활용해 총 네 개의 채널을 제시했다. 그는 스크린의 앞 화면에서 혼란스럽게 전개된 이야기의 내막을 뒤 화면을 활용해 드러내 보였다. 또한, 영화의 움직임을 정지시키고, 일방향적인 영화의 연속적인 시간성을 단절시키는 방식을 제시했다. <카를라>에서는 영상보다도 주변에 설치된 수많은 사물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도록 했다. 어질러진 사물들은 전시장 한편에서 작은 형태로 송출되고 있는 영상과는 대비를 이루고 있다.

작품의 앞과 뒤면 ⓒheyPOP
오메르 파스트, , 2016, 스테레오스코픽 3D 필름, 컬러, 사운드, 15분 30초. Photo by Stefan Ciupek ⓒ오메르 파스트

파스트의 확장된 실천은 <아우구스트>에서도 드러난다. 3D로 촬영된 이 단편영화는 저명한 독일의 사진작가인 아우구스트 잔더의 번뇌와 혼돈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관람자는 3D 안경을 착용해야 한다. 영화, 영상이라는 하나의 세계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하기 위해 그는 장치들을 동원하고 영역을 확장해낸다.

임흥순, , 2000, 단채널 6mm 비디오, 컬러, 사운드, 20분 9초. ⓒ임흥순

반면, 임흥순은 관람자로 하여금 영상에 몰입하게 하기 위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작가의 목소리 역시 영상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그가 전시장 공간을 활용한 <내 사랑 지하>에서도 이는 두드러진다. 작가는 반지하 공간을 연출해 중앙부에 영상 패널을 설치했다. 이는 영상을 보는 관람자의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것이 아닌, 모으기 위한 것이다.

오메르 파스트가 행했던 영상 매체를 극복하고자 한 노력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임흥순의 작업은 관람자가 영상들에 푹 빠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크게 다가온다. 정치, 사회, 역사가 개인에게 미친 영향과 상흔, 트라우마, 슬픔 등이 서서히 밀려들어 오는 것이다.

오메르 파스트, , 2012,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40분. Photo by Bernhard Keller ⓒ오메르 파스트

이들이 영상을 통해 그려낸 세계의 이미지는 어떤가? 두 작가는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 이면에 감춰진 것들에 공통적으로 주목한다. 이들의 타이틀 매치는 ‘컷!’ 사인을 외치는 감독의 행위와 목소리 소리처럼 쏟아지는 이미지, 영상의 시대에 잠시 멈춰 검토할 것을 암시한다.

임흥순, , 2018, 2채널 FHD 비디오, 컬러, 4채널 사운드, 42분. ⓒ임흥순

전시가 임흥순과 오메르 파스트의 만남에서 주목하는 것은 이들의 작품이 그려내는 모습이다. 기억, 과거, 역사가 시간 속에 지속되며 복잡 다난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삶의 단면들을 스크린 위로 펼쳐 놓을 때, 이들이 천착하는 것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그 안에 살아가는 존재의 여정을 살피는 것이다.

송가현 학예연구사의 ‘기획의 말’ 中

 

 

두 작가의 작업은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궤를 함께 한다. 영상을 활용하는 저마다의 실천은 서로 공명하며 시선과 관점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 있다. 이 타이틀 매치에 승자는 존재하는가? 각자의 실천을 비교했을 때 세계를 이루는 다양한 차원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전시는 내년 4월 2일까지.

하도경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프로젝트
<컷!>
장소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주소
서울 노원구 동일로 1238
일자
2022.11.17 - 2023.04.02
하도경
수집가이자 산책자. “감각만이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라는 페소아의 문장을 좋아하며, 눈에 들어온 빛나는 것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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