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좋은 트렌드 소식을 엄선하여 받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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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iestt
BY 하도경
2022-12-23

같은 온도 품은 두 디자이너가 만든 가방, 세이모 온도

하나의 마음, 다양한 시각

©designpress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서울을 벗어나 자유로를 달리다 보면 시선을 잡아끄는 검은색 건물이 있다. 디자이너 가방 브랜드 ‘세이모 온도’가 탄생하는 ‘블랙 뮤지엄’이다. 1층은 물류 창고, 2층은 사무실, 3층은 집으로 이뤄진 곳. 세이모 온도는 강수연, 사현진 대표가 공통적으로 좋아한 작가인 장 미셸 바스키아의 예명 ‘세이모(samo)’와 ‘같은(same) 온도(ondoh)’를 지녔다는 의미를 더해 만들어졌다. “브랜딩을 처음부터 계획했다기보다는 무언가를 같이한다는 점이 더 중요했어요. 사물을 대하는 온도가 비슷하다는 점이 저희의 유일한 교집합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좌) 강수연 대표 하이엔드 패션을 선망했다. 한때 해외로 유학을 떠나 패션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것을 꿈꿨다. 그때 마침 수강한 패턴 명장 수업에서 사현진 대표를 만났다. 디자인은 배우는 게 아니라는 사현진 대표의 말에 세이모 온도 론칭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무채색 옷밖에 없었던 강수연 대표의 옷장은 세이모 온도의 변화 과정에 걸맞게 색색깔 꽃밭으로 물들고 있다.
(우) 사현진 대표 스트리트 패션을 추구하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패션을 전공하지는 않았으나 스트리트 브랜드 론칭을 향한 목표는 뚜렷했다. 의류 도매업부터 시작해 공장 시스템과 원단 시장을 익혔고 강수연 대표를 만나 함께 세이모 온도를 구상했다. 가구 컬렉팅이 취미인 그가 디자인 영감을 받는 분야는 인테리어. 요즘에는 세이모 온도만의 공간을 구상하는 데 여념이 없다. ©designpress

세이모 온도의 아이덴티티는 저희의 선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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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출시를 계획하고 있었던 사현진 대표는 패션을 전공하지는 않았으나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그는 일단 의류 도매업에 뛰어들어 원단 시장과 공장 시스템을 익히고 배웠다. ‘패턴을 알아야 옷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패턴 명장 수업을 들었다. 그곳에는 패션 유학을 준비하던 디자이너, 강수연 대표가 있었다. 강수연 대표는 소위 패션 디자이너 정규 코스를 밟을 심산으로 유학길에 오를 참이었다. 그때 마침 수강했던 수업에서 둘은 만나게 됐다. 당시의 만남을 회고하던 강수연 대표는 사현진 대표의 말이 유독 뇌리에 박혔다고 했다. “디자인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야.” 강수연 대표는 이 말이 브랜드 론칭을 결심하게 된 촉매제가 됐다고 했다. 한 명이면 어려웠을 일을 둘이 구상하니 ‘일단 해보자’라는 심지에 금방 불이 붙었다. ‘하나의 마음,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자’는 의미에서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 모티브를 가져와 로고도 직접 디자인했다. 사현진 대표가 도매 분야에서 일하며 체득한 생산, 공장 관리 등의 실무 지식은 브랜드를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됐고, 강수연 대표는 사현진 대표에게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는 시각과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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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에 세이모 온도는 해외 시장에서 먼저 반응이 있었는데, 특히 중국 시장에서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위기는 찾아오는 법. 중국 시장에 첫발을 내딛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전개해 큰 인기를 모은 세이모 온도는 2014년, 사드 갈등에 직면하며 수출에 난항을 겪었다.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돌파구는 국내 시장이었다. 국내는 트렌드 전환이 빠르고 특정 디자인에 쏠리는 현상이 강해 더욱 날을 세워야 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국내 시장에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세이모 온도 가방은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바꿨다. 장미, 입술, 달 등을 가방 중앙부에 배치해 모티브를 강조한 디자인에서 주름과 형태를 살린 심플한 디자인으로 변화했다. 이전에는 블랙 컬러를 주로 출시했다면, 점점 색도 다양화해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저희는 브랜드의 시그니처 디자인을 한정 지으려고 하지 않아요. 오히려 트렌드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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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교집합으로 응집된 공간을 만드는 것은 부부의 오랜 꿈이었다. 브랜드가 자리 잡아가면서 두 사람은 꿈을 현실화하는 데 돌입한다. 이들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매출이 상승하던 시점에 소위 ‘탈’서울을 계획했다. 그렇게 강남에 있던 사무실을 파주로 옮길 계획을 세웠다. 파주는 사현진 대표가 나고 자란 고향이다. 서울의 중심부를 벗어나서도 이들은 큰 불편함을 겪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평소에 대면 소통 방식보다 온라인 비대면 소통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에이라운드건축사사무소의 박창현 소장에게 집과 사무실, 물류 창고를 갖춘 공간을 의뢰했고 ‘블랙 뮤지엄’이 완성됐다. 어디서든 업무가 가능하되, 일과 삶을 분리할 수 있도록 집과 사무실 계단을 따로 뒀다. 반려견 ‘호’와 ‘랑’이 뛰어놀 수 있는 너른 마당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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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스민 단순함이 영감의 원천

지금의 세이모 온도가 되기까지 큰 몫을 담당한 제품은 ‘번백(Bun bag)’이다. ”물티슈를 많이 쓰다 보니까 물티슈의 직사각 형태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복잡한 디자인은 선호하지 않아요. 디자인할 때 우선 기하학적 도형에서 출발하는 편입니다.” 세이모 온도 제품의 디자인과 형태는 일상에 스민 단순함에서 출발한다. 특히 음식을 통해 영감을 많이 받는다. “마시멜로백, 애플백, 에그백, 뇨끼백 등의 가방은 모두 음식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제품이에요. 뇨끼백의 경우, 어느 날 뇨끼를 먹고 있는데 동그란 모양에 주름진 형태가 너무 흥미롭게 보이더라고요. 한때는 파스타에 꽂혀서 디자인 시안을 많이 만들었어요. 그런데 형태적으로 구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디자인이더라고요. 요즘에는 빵 형태에서 영감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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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실제로 구현하며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단연 품질이다. 이들은 여러 원단에 스크래치를 내고 찢어보는 등 최선의 재료를 선택하기 위해 수없이 테스트한다. 약 10년 동안 브랜드를 운영해오다 보니 단골 거래처들과의 유대와 신뢰도 생겼다. 거래처들은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재료를 적극적으로 두 대표에게 소개한다. 세이모 온도는 이를 활용해 훌륭한 품질과 더불어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특수 원단이나 부자재를 사용해 차별화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가방 입구를 일자 프레임 장식으로 처리한 방식은 세이모 온도 가방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다. 이는 사용자의 불필요한 동작을 줄이기 때문에 가방 입구를 지퍼로 마감한 것보다 실용적이며, 프레임 장식을 둘러싼 주변 가죽에 자연스러운 주름을 만들어 전체적인 형태에 개성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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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힘을 빼도 괜찮아

세이모 온도가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물었다. 이들은 해야 할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부터 잘된 게 아니기 때문에 과감한 투자는 하지 않았어요. 번 만큼 신중하게 투자해 브랜드를 운영해왔습니다. 또한 저희는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아요.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예요.” 장기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는 말. 언뜻 들으면 뚜렷한 브랜드 정체성이 없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강수연 대표는 장기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 오히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하기 위한 길이라고 피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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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모 온도의 아이덴티티는 저희의 선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어요. 취향이 서로 다르고 또 확고해요. 그만큼 선택에 교집합이나 접점이 많지는 않죠. 하지만 저희 둘의 취향이 겹치면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것이 장점이에요. 그래서 서로의 직관적인 선택을 믿어요. 힘을 조금 빼고 풀어져 있을 때 떠오르는 본능적인 선택이요.” 아이디어를 얻는 좋은 방법은 우선 필터 없이 많이 보는 것. “요즘 인기 있는 인플루언서나 셀러브리티, 아이돌을 열심히 공부해요. 무엇이든 빨리 캐치하기 위해 가리지 않고 보는 편입니다. 세이모 온도를 운영하면서 아카이빙해온 이미지와 데이터를 신뢰하고 그 모든 것이 쌓여서 저희 선택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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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온·오프라인 사이에서 균형 맞추는 서퍼

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다는 세이모 온도. 그렇지만 미래에 꼭 이루고 싶은 바람이 있다. 바로, 다양한 국가에 세이모 온도의 공간을 여는 것. “올해 6월, 성수동에 플래그십스토어를 열었어요. 소비자들이 왜 이렇게 오래 참았냐고 하더라고요.(웃음) 변화에 유연한 브랜드답게 플래그십스토어 공간 역시 변화를 염두에 두고 설계했습니다. 컬러나 오브제로 포인트를 줄 수 있는 공간으로 콘셉트를 잡았어요.” 이들은 여전히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도 관심이 많다. “요즘 세이모 온도는 동남아시아 그리고 대만에서 인기가 많습니다. 성수동에 플래그십스토어를 오픈한 시기에 대만 로드숍도 함께 오픈했거든요. 처음에는 대만에서 세이모 온도 가방이 너무 비싸다는 평가가 많았어요. 그런데 대만 경제 상황과 소비자 인식이 달라지면서 판매가 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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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한가운데에서는 온라인에 수요가 집중됐지만 최근 들어 오프라인 매장에 활력이 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세이모 온도 제품을 경험한 소비자들이 공식 홈페이지로 유입되어 점차 반응이 커지고 있다. 세이모 온도는 공식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온라인 패션 플랫폼에도 입점해 온라인 수요에 확실히 대응한다. 또한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들은 브랜드를 론칭할 당시 예산이 충분치 않아 공식 홈페이지보다 스마트스토어를 먼저 론칭했다. 스마트스토어는 공식 홈페이지보다 관리가 쉽고, 네이버 디자이너 카테고리와 연동이 잘된다는 장점이 있어서 시너지가 나고 있다고. 변화하는 환경을 영민하게 관찰하고, 유통망을 분산해서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 세이모 온도의 방향성이다. “변화의 가운데에서 균형을 잘 맞춰야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둘이 계속 같은 온도로 브랜드를 운영하는 것을 꿈꿔요.”

취재 협조 세이모 온도

에디터
CURATED BY 하도경
수집가이자 산책자. “감각만이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라는 페소아의 문장을 좋아하며, 눈에 들어온 빛나는 것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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