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요즘처럼 작품 구매 열기가 뜨거울 때는 컬렉터 우위가 아닌, 작가 우위 시장이 형성된다. 롯데갤러리 측에 따르면 알피 케인은 22년 말에 온라인 미술 사이트 아트시(ARTSY)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컬렉터들이 가장 기대하는 작가 1위’에 뽑히기도 했고, 실제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작품이 옥션에서 3배 가격에 팔리기도 하는 인기 작가이자 라이징 스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롯데백화점 아트콘텐츠실 김영애 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아직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작가이지만 알피 케인의 전시를 준비하는 짧은 일 년이라는 기간 동안에도, 예술가로서의 위상과 지위는 하루가 다르게 계속 달라지고 있었다. 롯데갤러리 개인전은 아트시 발표 이후 첫 전시이기 때문에 세계 예술계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알피 케인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학부 시절 건축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그림을 그렸다.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건 4,5년에 불과하고 단체전이나 아트페어에 참가한 것을 제외하면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개인전을 치른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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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지원했을 때 나는 그림과 예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느꼈지만 예술가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다. 건축을 공부하는 동안 기술적인 드로잉을 많이 연습했고 그리는 과정 자체에 강한 충동을 느꼈다. 2018년 졸업 후 나는 다시 그림을 그렸고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구매 문의가 오기 시작했다. 그림이 나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고, 이제는 다른 일을 하는 나 자신을 상상할 수 없다.
물론 그림을 그린 경력이 짧다고 작품성이 뛰어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작품 가격은 작품성이 뛰어나다, 뛰어나지 않다는 것보다 앞으로 작품값이 오를 것인지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작품성과 스타성, 미래 가능성을 두루 고려한 가격이라는 것이다. 컬렉터들은 왜 지금, 알피 케인의 작품에 열광하는 것인가? 그의 인터뷰를 토대로 몇 가지 추론을 해보았다.
1. 떠오르는 브리티시 회화의 흐름을 타고
독일 통일 이후 세계 미술계에서 독자적 화풍으로 부상한 ‘신 라이프치히 화파’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독일 라이프치히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통일 이후에도 회화의 순수성을 추구해온 작가 군으로, 현재 갤러리 바톤에서 전시 중인 ‘로사 로이’가 대표적이다. 신 라이프치히 화파 이후, 미술계는 차츰 영국 회화 작가를 주시하는 느낌이다.
지난 9월, 서울에서 열린 프리즈 아트페어에서 필립스 옥션은 더 아티스트 룸과 공동 기획한 전시 <뉴 로맨틱스(New Romantics)>에서 아니아 홉슨(Ania Hobson), 프란체스카 몰 렛(Francesca Mollett) 등 차세대 영국 작가를 소개했다. 회화의 본질에 탐닉하는 독일 작가에 비해 덜 심각하면서 적당한 서정성을 겸비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 이유로 꼽는다. 현재 알피 케인에 대한 시장 반응 또한 떠오르는 브리티시 회화에 대한 관심이 묻어 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2. ‘제 2의 데이비드 호크니’가 나타났다!
제 2의 앤디 워홀이니, 제 2의 피카소니 하면서 미술계는 항상 화젯거리를 만들어낸다. 알피 케인은 ‘제 2의 데이비드 호크니’라는 수식어를 많이 들어 귀가 간지러울 것이다. “데이비드 호크니를 연상시키는 풍부한 색감과 흥미로운 원근감이 엿보인다”라는 평이 많다. 1996년생 MZ 세대라 그런지, 그는 쿨하게 인정한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매우 존경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이고 실제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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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은 내 인생의 여러 지점에서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특히 2017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그의 회고전을 봤을 때, 나는 공중으로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색채의 생동감은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작품은 강력한 전파처럼 믿을 수 없는 몰입과 평안함을 주었고, 나 역시 이런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이번 전시 작품에서도 그린(모든 작품에 그린 컬러가 들어간다.)과 오렌지, 핑크, 아쿠아마린까지 화려하면서 몽환적인 색채의 향연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은 물론이고, 빛에 따라 하나의 그림 안에서도 색이 놀랍게 변주를 거듭한다. 색과 공간에 대한 탐색이라는 점에서는 확실히 영국 선배 작가인 데이비드 호크니와 견줄 만 하다.
3. 케임브리지 건축학과 출신 화가가 캔버스에 짓는 집
전시 <고요의 순간>에 등장한 작품을 보면, 건축물의 안과 밖이 동시에 존재한다. 밖을 장식하는 풍경은 그가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지역, 라이(Rye)다. 라이는 영국 남부 브라이튼과 멀지 않은 해안 마을로, 위치를 굳이 한국과 비교하자면 포항 정도라 말할 수 있다.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는 지역으로 기능했고 14세기부터 항구가 발달해 영국에 가면 꼭 가볼 만한 중세 도시로 소개되고 있다. 한때는 양털과 가죽, 금과 같은 상품을 불법으로 거래하는 밀수 산업이 발달했다고 하는데, 인터넷에서 사진을 검색해 보면 중세 시대를 연상시키는 자갈이 깔린 거리와 좁은 골목길이 아직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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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 마을 자체가 매력으로 가득 차 있어 가끔 영화 세트장에 사는 것 같다. 자갈이 깔린 거리와 숨겨진 골목길을 돌아다닐 때 그런 느낌을 받는다. 마을 자체는 습지로 둘러싸인 작은 언덕 위에 있어 한쪽은 바다, 한쪽은 언덕을 바라본다. 이것은 내가 그리는 몽환적 풍경에 확실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작가는 평화로운 라이 지방의 풍경을 배경에 두고 그만의 집을 짓기 시작한다. 캔버스 위에서는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내 맘대로’ 지을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한다는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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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 위에서 공간을 디자인하는 행위 자체가 내게 큰 자유와 자신감을 준다. 건축적 드로잉처럼 구조적인 안정성을 고려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라는 사실 덕분에 갖게 된 캔버스 위의 무한한 가능성은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거의 실재하는 것처럼 믿기고 만질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공간을 그리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작가가 건축가 대신 화가를 택한 이유가 위의 대답에서 묻어난다고 생각한다. 건축가는 ‘법규’라는 장벽과 평생을 싸우는 사람이다. 그리고 최고 건축가가 되지 않는 인상 한 채의 건축물을 A부터 Z까지 온전히 설계할 일이 드물다. 반면, 그는 그림 속에서 온전히 자유롭게 집을 설계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가구와 오브제를 착착 배치한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를 만큼 이상적인 풍경이지만, 집 내부를 보면 살짝 기이한 느낌도 든다. 누군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도 없거나, 아무도 없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림자가 존재한다는 것과 같은. 영화 속 소품들이 주제를 전달하는 메타포로 작용하는 것처럼 그가 키우는 강아지 ‘로코’, 비스듬한 의자와 기타, 물 잔이 놓인 욕실과 초록 시트가 덮인 침대 등은 호기심과 함께 질문을 던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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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릴 때 독특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가진 장소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내 삶에서 이런 순간들을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 바쁘게 생활하는 우리에게 이런 순간이 자주 찾아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 그림에 이처럼 평온한 순간을 새겨 놓고 지속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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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할 때 17세기 네덜란드 그림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논문을 쓰는 동안 암스테르담과 델프트를 방문했고,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피터르 더 호흐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을 보았다. 이 예술가들은 흠잡을 데 없는 집안의 건축적 풍경을 묘사하고 일상생활에 새로운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했다. 이들은 주변의 운하를 따라 늘어선 공간에 나타나는 미묘한 빛의 변화와 실내의 인간 활동에 집중했다. 서로 다른 시각 예술 형태가 확장된 영역으로 나가는 것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4. 1996년생, 그는 어리다!
이제 개인전을 두 번 했을 뿐이고, 그림 그리는 것 외에 다른 삶은 상상할 수 없다고 했고, 17세기 르네상스 그림과 현재의 공통 분모를 더 발전시켜 나간다는 명분 또한 나무랄 데 없으니 컬렉터가 좋아할 수밖에 없다.
글 김만나 편집장
인터뷰 및 번역 롯데갤러리 양민정 책임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롯데갤러리 잠실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