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3

마곡으로 간 LG아트센터 서울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여기밖에 없는 공연장’
10월 13일, ‘LG아트센터 서울’이 정식 개관했다. 역삼동에 있던 LG아트센터는 ‘초대권 없는 공연장’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만큼 콘텐츠에 자신 있다는 방증일 터. 전설적인 안무가 피나 바우쉬(Pina Bausch)가 생전에 다섯 번이나 등장한 한국 무대가 LG아트센터였을 정도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공연이 펼쳐지곤 했다. 아쉽게 문을 닫은 LG아트센터가 새로운 무대로 삼은 장소는 마곡 신도시 모처.
LG아트센터 서울 | 사진 제공: LG아트센터 서울, photo by 배지훈

LG아트센터가 마곡으로 간 이유는 수년 전, LG그룹과 서울시가 맺은 협약 때문이다. 마곡 신도시에 LG R&D 센터와 사이언스 파크를 세우는 대신 “사회 공공기여 차원에서 최고 수준의 다목적 공연장”을 함께 지으라는 것이 요구 사항이었다. 이전 LG아트센터를 대신하면서도 기존에 존재하는 다목적 공연장의 평판을 넘어서는 최고 수준의 공연장 건립이 결정되었다. 방식은 국내외 건축가를 지명 초청한 국제지명 설계공모. 프랑크 게리, 리처드 마이어 등 내로라하는 세계 건축 거장이 참여한 가운데 당선작은 안도 다다오의 계획안. 설계·감리 총괄을 맡을 국내 파트너로는 안도 다다오와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춘 ‘간삼건축’이 낙점되었다.

LG아트센터 서울 | 사진 제공: LG아트센터 서울, photo by 배지훈

로비와 아트리움, 통로 등이 각각 눈에 띄는 특징을 갖게 하여 ‘여기밖에 없는 공연장’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각각의 공간이 개성을 가지고 상호 교차하면 여러 요소들이 충돌하며 신선한 자극을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발걸음을 하는 관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공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안도 다다오

 

안도 다다오는 노출콘크리트 건축의 대가다. 프로 복서에서 벗어나 건축가의 삶을 시작한 초창기부터 노출콘크리트 시공을 택했다. 이유에 대해 여러 추측이 있는데, 정작 그가 밝힌 이유는 심플하다. “돈이 없어서 사용했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건축물은 콘크리트 골조가 존재하고 그 위에 스티로폼 단열을 하고, 벽돌이나 석재를 붙인다. 안도 다다오는 돈이 없으니 마감재를 사용하지 않고, 골조 상태로 내버려 둔 것이다. 이럴 때 건축물은 시크하고 날것의 느낌이 나고 다 좋은데 문제는 단열이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안도 다다오가 초창기에 활동했던 주 무대는 오사카. 위도가 높은 북부 홋카이도였다면, 그렇게 자유롭게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LG아트센터 서울 | 사진 제공: LG아트센터 서울, photo by 배지훈

처음에는 돈이 없어 사용했지만 점차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빛의 미학’을 실험하기 가장 좋은 소재임을 깨닫는다. 차갑고 단조로운 노출콘크리트는 온전히 빛을 받아들인다. 또 콘크리트를 타설해 거푸집 작업으로 완성되는 노출콘크리트는 벽돌을 쌓아 올리는 조적조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길고 큰 창을 낼 수 있고, 형태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LG아트센터 서울의 입면 역시 커다란 창이 길게 이어져 안팎의 경계를 지우고, 타원형 단면의 큐브는 경쾌한 리듬감을 준다.

LG아트센터 서울 | 사진 제공: LG아트센터 서울, photo by 배지훈

예술과 과학, 자연이 한데 모이는 노출콘크리트 공연장

‘LG아트센터 서울’은 튜브(Tube), 스텝 아트리움(Step Atrium), 게이트 아크(Gate Arc)라는 세 가지 콘셉트를 적용했다. 먼저 튜브. 정면에서 바라보아도 타원형의 튜브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건축물이 지상층을 대각선으로 관통하는 원형 통로로, 높이 10M에 달하는 튜브를 사이에 두고 동편에는 공연장, 리허설룸, 교육 시설이, 서편에는 ‘LG디스커버리랩’이 위치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간대에 따라 빛과 공기, 바람이 내부로 스며드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데, 공원과 광장으로 연결되는 튜브 양쪽이 뻥 뚫려 있기 때문이다. 

안도 다다오는 자연과 사람을 어떻게든 섞으려는 건축가다. 그가 처음에 지은 주택은 화장실을 가기 위해 매번 외기가 흐르는 중정을 지나쳐야 하는 구조였을 정도였다! 이 곳에서는 튜브가 그 역할을 한다. 튜브는 외부 관객을 건물 내부로 끌어들이는 통로이자 LG아트센터 서울이 예술과 과학, 자연과의 융합 공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LG아트센터 서울 | 사진 제공: LG아트센터 서울, photo by 배지훈

스텝 아트리움은 지하철 마곡나루역에서부터 LG아트센터 서울 지상 3층까지 연결하는 계단을 칭한다. 이를 통해 방문객은 메인 로비와 객석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튜브’가 지상 공간을 횡으로 연결한다면 ‘스텝 아트리움’은 지하부터 지상까지 종으로 연결하는 셈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건 정말 놀라운 동선이다. 공연을 보러 간다고 나서지만 지하철역에서 내려 객석에 앉기까지 얼마나 많이, 무수한 길을 헤매게 되는가. 이곳은 다르다. 지하철역에 내리자마자 잘 계획된 동선을 따라 이동하면 어느새 객석에 다다른다는 것이다. 게이트 아크는 관객이 로비에서 마주하게 되는 곡선 형태로 이루어진 벽면이다. 각 공연장에 관객을 초대하는 상징적인 문 역할을 하며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노출콘크리트 건축물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에 대해 건축가 유현준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파르테논 신전이나 피라미드를 보았을 때 받는 감동과 같다. 건축은 중력과의 싸움이다. 중력을 거스르는 인간의 노력을 기술화하여 건축물로 만든 것인데, 그 골조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 노출콘크리트다.” 중력을 거스르는 힘을 보여주는 골조, 그 날것의 형태를 그대로 보여주니 본능적으로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LG아트센터 서울 | 사진 제공: LG아트센터 서울, photo by 배지훈

실컷 근육(골조)을 만들어 놓고 옷(마감재)으로 꽁꽁 근육을 감싸는 요즘 건축물과 달리 훌렁 벗고는 근육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인데, 이럴 때 주의할 점이 있다. 거대한 골조에서 오는 감동을 유지하려면, 디테일에서 오는 감동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LG아트센터 서울은 내벽과 바닥을 유심히 보면,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설계 과정에서 얼마나 꼼꼼하게 신경 썼는지 느낄 수 있다. 하나의 모듈 크기가 가로 900mm, 세로 1800mm인데 이 직사각형에 들어간 6개의 콘 위치가 비뚤어지지 않게 시공하고, 벽에 들어가는 스위치나 소화전 위치까지 모듈을 기준으로 중심에 들어가거나 대칭되게끔 배치했다. 

 

방음과 음향이 중요한 공연장 설계 시 고려해야 할 점 

공연장 설계는 방음은 물론 음향 전달, 공연자 동선 등 고려할 것이 많다. 대부분 음향 시설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해외 사무소를 찾지만, 국내에서 간삼건축을 비롯해 몇몇 건축사사무소가 이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간삼건축은 공연장 설계 경험이 풍부한 편이다. LG아트센터 설계 총괄을 맡은 홍석기 간삼건축 전무는 2011년 통영 국제음악당, 2008년 부평아트센터 등 다수의 문화시설을 설계했다. 

LG아트센터 서울 | 사진 제공: LG아트센터 서울, photo by 배지훈
LG아트센터 서울 | 사진 제공: LG아트센터 서울, photo by 배지훈

LG Signature 홀: 오케스트라부터 오페라, 뮤지컬, 연극, 발레, 콘서트까지 공연할 수 있는 1,335 석 규모의 다목적 공연장. 직사각형 프로시니엄 형태로 가로 12M에서 20M까지, 높이는 8M에서 12M까지 변화가 가능하다. 소리가 반사되는 잔향 시간을 1.2초에서 1.85초까지 조정하여 장르에 따라 적합한 음향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발코니 좌석은 무대를 감싸듯 곡선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역삼동 LG아트센터에 국내 최초로 도입됐던 건축구조분리 공법(Box in Box)을 홀 전체에 반영해 지하철 뿐 아니라 헬리콥터 및 항공기 소음까지 완벽히 차단시켰다.

 

가변형 극장, U+스테이지: 2개 층 365석 규모의 유플러스 스테이지는 공연 성격에 따라 좌석 배치를 자유 자재로 변경할 수 있는 가변형 극장이다. 객석이 무대 정면을 바라보는 프로시니엄 구조는 물론, 무대를 중앙에 두고 양쪽 객석을 마주 보는 구조, 객석이 무대를 둥글게 감싸는 아레나 구조 등 아티스트 의도에 따라 유연하게 무대와 객석을 조합할 수 있다. 객석은 다양한 형태로 조합이 가능하도록 모듈화 했고, 필요에 따라 이동-설치-제거할 수 있도록 하부에는 수납공간을 두었다. 조명 및 무대장치의 가변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Tension Wire Grid’를 설치했다.

간삼건축 홍석기 전무 | 사진 제공: 간삼건축
간삼건축 양대홍 수석 | 사진 제공: 간삼건축

Mini Interview with 홍석기 간삼건축 전무

— 메인 공연장 ‘LG 시그니처 홀’의 특징을 한 가지만 꼽는다면? 

우리는 객석을 하나의 악기로 보았다. 내장 전면을 목조 마무리로 덮어 객석 전체가 마치 하나의 악기와 같은 형상으로 보이는 것을 의도했다. 내부에 설치되는 조명장비 등의 주변에는 음향 투과형 재료를 활용하고, 무대 위의 배우와 관객석에 있는 관객의 거리를 가능한 가깝게 해 공연의 몰입도를 최상으로 끌어올렸다. 

 

이 곳의 음향이 현재 국내 최고라 말할 수 있는가?

다목적 공연장이기 때문에 어쿠스틱 공연을 하는 콘서트홀과 비교하기는 힘들다. 국내에서 최고 콘서트홀 음향을 갖춘 곳으로 통영 국제음악당을 꼽는 이들이 많다. 그래도 이곳이 다목적 공연장 중에서는 현재 존재하는 높은 수준의 음향 기술을 갖추고 있다. 건축 음향의 경우 음향의 확산, 흡음, 반사 등의 기술적 요구를 충족하는 형태와 재료가 요구된다. 기술력과 경험을 제대로 갖춘 팀을 알고, 같이 일할 수 있는 것 역시 공연장을 설계하는 건축가의 능력이라 볼 수 있는데, 이번에 건축주와 협의해 세계적인 컨설턴트 팀과의 협업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개막 오픈 공연 ‘사이먼 래틀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piano 조성진)’ 티켓이 40초 만에 마감되었다. 최근 한국 클래식 팬이 늘어난 분위기를 실감했을 것 같다. 

맞다. 클래식 팬이 늘었고, 또 젊어지고 있다. 런던 심포니나 빈 필이 한국을 오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있다. 클래식 덕후가 많고, 또 팬층이 젊다는 점이 그렇다. 이곳 마곡에서 펼쳐질 LG 아트센터의 2라운드에 대해 기대감과 비전이 높다. 공연을 보지 않는 낮 시간에도 이 곳을 찾을 수 있게끔 건축물 내 F&B 영역도 보강한다고 들었고, 위치 자체가 공원 속에 있기 때문에 가족과 연인들이 많이 찾는 장소가 될 거라 생각한다. 

김만나 편집장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LG아트센터 서울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주소
서울 강서구 마곡중앙로 136
김만나
15년간 피처 기자로 일했고, 현재는 네이버 디자인판 편집장으로 온라인 미디어를 경험하고 있다. 유머 감각 있고 일하는 80세 할머니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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