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에서 언제나 놀라운 디자인을 보여준 그이지만, 처음부터 그가 패션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소년 시절 댄스에 심취해있었던 그는 장래희망으로 댄서가 되길 꿈꾼 적도 있었다. 그런 그가 패션에 관심을 둔 것은 그의 여동생 덕분이다. 여동생이 보던 패션 잡지를 보며 패션에 대한 흥미를 키워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도쿄 다마미술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배웠던 그는 1964년 졸업과 함께 그의 흥미를 살려 도쿄의 일본 문화복장학원(Bunka Fashion College)에서 진행하는 패션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그러나 패턴 제작 및 재봉 기술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졌기에, 대회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 패션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생긴 그는 파리로 떠났고, 파리의상조합학교(Chambre syndicale de la couture parisienne)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는 동시에 지방시(Hubert de Givenchy), 기라로쉬(Guy Laroche) 등 유명 디자이너 밑에서 보조 디자이너로 일하며 패션에 대한 전문성을 키워나갔다. 1969년에는 뉴욕으로 이사해 전설적인 디자이너 제프리 빈(Geoffrey Beene) 밑에서 일하는 동시에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등과 같은 예술가를 만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70년에 도쿄에 돌아와 디자인 사무소를 세우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컬렉션을 선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경험에 기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를 대표하는 디자인은 여럿 있지만, ‘이세이 미야케’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디자인은 바로 ‘플리츠(Pleats)’가 아닐까 싶다. 디자이너는 일본 전통 종이 공예 기술에 관심을 두었고, 직물에 열을 가해 주름을 만들어 직물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줄어들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를 위해 디자이너는 댄서들에게 자신이 만든 직물로 옷을 입혀가며 옷의 편리함을 연구했고, 이를 통해 체형에 상관없이 누구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이 만들어졌다. 이후 1993년 브랜드의 서브 라인인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가 만들어지며 전 세계 사람들의 찬사를 받게 되었다. 현재에도 이 브랜드는 이세이 미야케를 대표하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선사하고 있는 중이다.
플리츠 디자인을 극대화한 디자인은 1994년에 선보인 ‘비행 접시 드레스(Flying Saucer Dress)’ 아닐까 싶다. 디자이너가 특허를 획득한 플리츠 폴리에스터 구조 기술을 유감없이 활용한 드레스로 신축성 있는 옷감과 옷의 형태를 잡아주는 원형 테두리가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디자인이다. 마치 종이갓을 연상케하는 이 드레스는 201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기술이 패션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전시에도 선보이며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세이 미야케 그룹은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혁신적인 기술을 추가한 서브 라인 ‘에이폭 에이블 A-POC(A Piece of Clothing)’을 론칭하며 새로운 디자인을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플리츠 디자인에 이어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한 디자인은 또 있다. 바로 ‘바오바오(Baobao)‘ 디자인이다. 앞면과 뒷면에 삼각형 모양의 폴리염화비닐 섬유(poly vinyl)를 겹친 메시 패브릭으로 제작된 가방 디자인은 이세이 미야케를 대표하는 종이접기 스타일을 극대화하는 것과 더불어 스페인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디자인되었다. 가방의 독특한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가방 안에 어떤 물건이 들어있느냐에 따라서 모양이 변형될 수 있는 디자인은 사람들에게 유쾌함을 선사하기 충분했다. 의류 디자인만큼이나 가방 디자인에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그의 감각에 전 세계 사람들은 여전히 열광 중이다.
또한 이세이 미야케는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에게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검은색 터틀넥을 수백 장 만들어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디자이너가 소니 공장 직원들을 위한 유니폼을 만들어준 것을 보고 이에 매료된 잡스는 디자이너에게 애플의 직원들을 위한 유니폼을 디자인해 주기를 요청했다. 결과적으로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아 애플 직원의 유니폼은 세상에 선보이지 않았지만, 스티브 잡스를 위한 터틀넥은 남았다. 디자이너는 스티브 잡스가 언제나 그가 좋아하는 터틀넥을 입을 수 있도록 수백 장의 옷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잡스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디자이너를 대표하는 플리츠나 바오바오 디자인과는 거리가 있지만, 한 사람의 스타일을 만들어주었다는 점은 놀랍기만 하다.
그 밖에도 이세이 미야케는 향수 라인을 론칭하기도 했으며,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끊임없이 디자인과 예술 사이를 넘나들었다. 특히 예술가와의 협업에서는 패션을 현실과 동떨어진 예술로 만든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그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작품을 직접 몸에 착용함으로써 예술과 상호작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스스로 예술을 사랑하며, 예술가와 함께 소통을 즐겨 했던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컬렉션이 아닌가 싶다. 이런 그의 철학은 1992년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디자인은 철학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을 위한 것이다.”라고 밝히며 예술과 디자인, 그리고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드러냈다.
언제나 패션계에서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던 디자이너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일본에서는 문화훈장을, 2016년 프랑스에선 레지옹 도뇌르 3등 훈장을 받으며 명성을 더했다. 그가 패션계에 이룬 업적을 보며, 그를 가르쳤던 제프리 빈 또한 그의 기술을 존경한다는 인터뷰를 남기며 그를 인정하기도 했다. 그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의 기술과 감각뿐만 아니라 전통과 현재, 현재와 예술을 함께 아우르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현재 이세이 미야케 그룹에는 플리츠 플리즈, 바오바오 외에 옴므 플리세, 이세이 미야케, 이세이 미야케 맨 등 다양한 브랜드가 운영 중에 있다.
글 박민정 객원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