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21

녹아내린 눈사람이 작품이라고?

필립 파레노의 국내 첫 개인전 〈Mineral Mutations〉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글래드스톤 갤러리가 지난 6일 문을 열었다. 글래드스톤 갤러리는 ‘아무에게나 팔지 않는 곳’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확고한 철학과 이념을 가지고 운영하는 갤러리 중 하나다.

 

“똑-! 똑-! 똑-!” 글래드스톤 갤러리의 심상치 않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들려오는 소리다. 소리의 출처는 눈사람, 눈사람이 녹고 있었던 것.

 

전시 전경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글래드스톤 갤러리가 지난 6일 문을 열었다. 글래드스톤 갤러리는 ‘아무에게나 팔지 않는 곳’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확고한 철학과 이념을 가지고 운영하는 갤러리 중 하나다. 아시아 첫 지점으로 한국을 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개관전은 세계적인 프랑스 설치 작가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의 〈광물적 변이 (Mineral Mutations)〉다.

 

Philippe Parreno, Door handles, 2022 ©Gladstone Gallery

 

건물의 전체적인 형태는 밀도가 높은 검은색 돌덩이를 연상시킨다. 갤러리 입구에서부터 마주했던 심상치 않은 문, 그것은 용암이 급속하게 식으면서 만들어진 화산암과 천연 유리인 흑요석을 소재로 제작된 작품이다. 글래드스톤의 건물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공간과 작품의 경계를 허무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광물적 변이라는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 필립 파레노는 광물을 재해석했다. 또한, 작품의 대다수는 이번 전시만을 위해 제작된 것이기에 전시가 끝난 이후에는 그곳에 없다.

 

전시 전경 ©Gladstone Gallery

 

나지막히 울리는 물 떨어지는 소리의 주인공, 눈사람 작업,〈Iceman in Reality Park〉역시 이번 전시만을 위해 제작된 것이다. 눈사람이 다 녹아내리면 최후에는 얼음 안에 박혀 있던 화강암과 나뭇가지만이 남게 된다. 그럼에도 눈사람의 흔적을 추정할 수는 있다. 후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지오스민이라는 분자의 향이 조향돼 분사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까이 다가가보면 우디하면서도 시원한 민트향이 은은하게 풍겨져 나온다.

 

Philippe Parreno, Iceman in Reality Park, 1995-2019

 

눈사람을 받치고 있는 곳에 ‘서울시’의 맨홀 뚜껑이 있고, 흩어진 돌맹이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맥반석’이다. 따뜻해진 날씨 때문에 급격히 녹아내리고 있는 눈사람은 추후 새것으로 다시 교체될 예정이라고 한다. 갤러리를 방문한 관람자들은 눈사람의 다양한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어떤 이는 뚜렷한 곡선의 형체가 있는 눈사람을 기억하게 될 것이며, 또 어떤 이는 거의 녹아내려 직선에 가까운 눈사람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전시 전경

 

입구에서부터 눈사람 작업이 설치된 장소로 이동하기까지, 화이트 큐브 길목에는 형광색의〈AC/DC Snakes〉작업이 펼쳐져 있다. 형광 빛을 내는 이 작업은 우라늄 글라스로 만들어졌다. 우라늄 글라스는 금속 이온의 농도나 산화물의 상태, 첨가물 등에 따라 색감이 달라지며, 천연에 존재하는 방사성 원소 중 하나이다. 그러한 점에서 전시 제목을 가장 잘 시각화하고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Philippe Parreno, Mount Analogue, 2022

 

눈사람이 설치된 곳의 바로 우측에는〈Mount Analogue〉작업이 있다. 2001년 구 작품의 변형이다. 흥미롭게도 이 램프 작업은 프랑스의 작가 르네 도말(René Daumal)의 미완성 소설인 『마운트 아날로그』를 모티프로 제작됐다고 한다. 소설은 신성한 산을 찾아 오르는 모험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이는 도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성과 연결된다. 그들이 욕망하는 산은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미지의 존재이다. 책 속 모험가들의 핵심적인 규칙, 그것은 “보기 위해서는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각의 빛깔이 깜박이며 화이트 큐브 공간을 물들인다. 다채로운 색 중 우리는 어떤 색을 믿을 것인가?

 

Philippe Parreno, Marquee, 2022 ©Gladstone Gallery

 

갤러리의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필립 파레노의 대표적인 작품인 〈Marquee〉가 있다. 마끼(Marquee)는 극장의 입구 쪽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설치해 놓은 조명이 달린 차양을 뜻한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지하 공간에서 빛나는 마끼는 우리가 또 다른 장소에 도달했음을 예고하는 듯하다.

사실, 현재 전시하고 있는 마끼 작품은 작가의 기존 작업과는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 본래 아크릴 글라스를 활용하여 연작 시리즈를 제작해왔던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합성 고분자 대신 모래와 석회석, 탄산 나트륨이 결합된 유리로 제작했다.

사실, 현재 전시하고 있는 마끼 작품은 작가의 기존 작업과는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 본래 아크릴 글라스를 활용하여 연작 시리즈를 제작해왔던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합성 고분자 대신 모래와 석회석, 탄산 나트륨이 결합된 유리로 제작했다.

 

전시 전경 ©Gladstone Gallery
Philippe Parreno, Chambre miroir, 2021

 

작가의 모든 작품들은 광물적 변이라는 하나의 과정을 공유한다. 새로운 공간의 탄생을 맞이하듯, 필립 파레노는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다시금 새롭게 해석될 공간에 대해 암시한다. 실제로 작가의 세계관을 이루는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시간성’이다. 광물이 변이하는 과정, 전시가 이뤄지는 과정, 각각의 시간 속에서 다양한 요소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따라서 관람객은 이 전시에서 어떠한 정답이나 해답을 찾지 않아도 된다. 전시에는 완결된 결과들이 아닌, 각각의 과정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관람객은 전시를 관람하고, 각 과정에 참여하는 존재들이다.

‘변이’라는 단어는 어떠한 현상, 즉 과정과 늘 연결돼 있다. 이는 앞으로 한국이라는 국가에서 변화하게 될 글래드스톤의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한국에서 재탄생하게 될 글래드스톤의 귀추가 주목된다. 전시는 다음 달 21일까지다.

하도경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글래드스톤 갤러리

프로젝트
〈Mineral Mutations〉
장소
글래드스톤 서울
주소
서울 강남구 삼성로 760
일자
2022.04.06 - 2022.05.21
참여작가
필립 파레노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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