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설치 미술가 최정화의 거대한 밭 채소 모양 풍선이다.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눈을 즐겁게 하는 그의 풍선이 왜 왜 전시 입구에 자리잡고 있을까? 프랑스의 정원가 질 클레망이 남긴 말이 힌트다. 질 클레망은 최초의 정원은 채소밭이었고, 미래의 정원은 바다에 있으며, 지구 전체는 하나로 연결된 ‘커다란 정원’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한 조각의 땅을 돌보는 일은 이 커다란 지구 정원이 연결성을 회복하는, 작지만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그는 말한다. 최정화 작가의 작품은 이번 전시가 채소밭에서 시작돼 정원으로, 나아가 현대인의 플랜테리어로 변주되는 과정을 따라가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진정한 정원사는 ‘꽃을 가꾸는 사람’이 아니라 ‘흙을 가꾸는 사람’이다. 정원의 방문자는 꽃과 열매를 보지만, 정원사는 그 결과물을 얻기 위해 자신의 발 아래, 예민하고 까다롭고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땅’과 끊임없이 씨름해야 한다.



전시장 뒤쪽에는 최근 자연주의 정원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제주 출신 정원가 김봉찬이 이끄는 조경 스튜디오 더가든이 마련한 작은 정원이 펼쳐진다.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느끼게 만드는, 진짜 식물을 느끼고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어서 비주얼 아티스트 구기정, 회화 작가 박미나, 그래픽 디자이너 박연주, 영화감독 정재은 등이 각자의 설치 작품을 통해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원의 의미와 가치를 전달한다.
국내 예술가들의 작품 뒤에 준비된 것은 정원을 예찬한 국내외 8명의 창작자다. 소설가 박완서, 헤르만 헤세, 카렐 차페크부터 한국 조경의 선구자인 정영선, 영화 감독 데릭 저먼까지 정원을 열정적으로 가꾸고, 그 노동으로부터 얻은 사색과 영감이 어떻게 창작의 원천이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텃밭과 정원을 가꾸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는 위대한 예술로 승화되고 때로는 마을 풍경을 바꾸며, 때로는 삶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정원 디자이너로 꼽히는 영국 출신 거트루드 지킬을 소개하는 부분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살펴볼 만하다. 교목이나 관목을 활용해 패턴을 만드는 정도였던 종래의 정원 디자인 방식에서 벗어나 식물 자체의 습성과 색채를 바탕으로 한 정원 구성으로 유명세를 떨치며 유럽과 미국에 400여개의 정원을 설계했다. 그녀의 연구는 오늘날 정원 디자인 이론의 초석이 됐다.


옥상에는 한국 조경의 선구자인 조경설계 서안 대표 정영선이 기획한 정원이 준비되어 있다. 4월 말부터 늦은 가을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 기간 동안 다양한 식물들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느리게 성장하고 성숙하며 관람객들에 각기 다른 사색과 휴식의 순간을 제공한다.
별관에 마련된 영화관에서는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정원가 피트 아우돌프Piet Oudolf에 관한 다큐 영화 <다섯 번의 계절: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이 독점 상영된다. 버려진 철로를 아름다운 도심 산책로로 변신시킨 뉴욕 ‘하이라인 공원’ 조경 설계로 슈퍼스타 반열에 오른 피트 아우돌프는 ‘더치 웨이브Dutch Wave’라고도 불리는 초화 식재 기법의 열풍을 불러온 인물로서, 그의 식재 기법만을 연구하는 모임이 있을 정도로 국내에도 적잖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다섯 계절을 관통하며 아우돌프의 주요 정원들을 여행하는 영화 <다섯 번의 계절: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은 하루 3차례만 상영하며, 관람하기 위해서는 별도 예매가 필요하다. 전시 티켓 소지자는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잠시나마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전시 <정원 만들기>는 10월 24일까지 계속된다. 전시 티켓 1만 8천원. 영화 티켓 7천원.
글 유제이
자료 협조 피크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