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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0

테크웨어로 다시 태어난 폐에어백

SFDF 연속 수상에 빛나는 디자이너 듀오 '강혁'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신진 패션 디자이너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의 2022년 수상자가 공개됐다. 올해의 주인공은 강혁. 지난 해에 이어 2년 연속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강혁의 존재감은 어느 때보다 강렬하다.
제17회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 수상자로 선정된 '강혁'의 손상락(왼쪽), 최강혁 디자이너. 창의성에 기반해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해나가는 측면에서 높은 능성을 인정 받았다.

 

얼핏 한 사람의 이름처럼 들리는 강혁(Kanghyuk)은 최강혁, 손상락으로 이뤄진 듀오 디자이너이자 동명의 패션 브랜드다. 영국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Royal College of Art, RCA) 남성복 석사 과정을 공부하며 만난 둘은 2017년 최강혁이 버려진 자동차 에어백으로 만든 옷으로 졸업 작품을 선보이고 이에 가능성을 발견한 손상락이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브랜드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설립 2년차인 2019년, 세계 최대 패션 그룹 LVMH가 주최하는 패션 공모전’LVMH 프라이즈’의 세미 파이널리스트에 진출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에어백에서 출발한 ‘인공 소재’는 강혁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현 시대를 상징하는 인공적인 소재에서 조형적인 미학을 찾아내 이를 해체하고 이어 붙이며 옷으로 만드는데, 그 아이디어와 커팅이 꽤 야무지다. 무엇보다 변화하지 않는 옷은 지루한 법. 초기 작업이 스포티하고 해체주의적인 면모를 보였다면 최근 작업은 보다 웨어러블하고 깔끔하게 변화했다. 강혁은 인공 소재라는 큰 흐름 안에서 재료적, 형태적 실험을 거듭하며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강혁의 2022년 봄여름 시즌 컬렉션. 에어백 아이템을 다채로운 컬러로 표현했고, 자동차 내부에 있는 방음재를 모티브로 한 비건 가죽, 비건 스웨이드, 재활용 저지 소재 등을 사용한 점퍼, 후드 집업, 반팔 셔츠, 팬츠 등을 내놨다.

 

Interview with 강혁

 

2021년에 이어 2022년 SFDF 수상자로 연속 선정됐다. 정욱준, 표지영, 최유돈… 두 차례 이상 수상한 역대 디자이너들은 특히 해외에서 활약하며 주목받고 있다. 올해 수상자로 뽑힌 기분은 어떤가? 2년 연속 선정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2년 연속으로 받을 줄은 몰랐다. 두 차례 이상 수상한 역대 디자이너들은 대단한 분이 많아서 더욱 영광이다. 아무래도 지속가능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지속가능성은 우리가 브랜드를 시작했을 때부터 가지고 온 키워드인데, 시대가 맞아 떨어져서 운 좋게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상은 우리 디자인 감각이 아직까진 괜찮게 가고 있다는 이정표 같은 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년 전 SFDF를 처음 수상했을 당시와 비교하면 현재의 강혁은 어떻게 달라졌나?

우리 제품을 판매하는 스토어는 작년과 비슷한 20여곳이지만, 스토어 한 곳에서 주문하는 양이 늘었다. 협업도 리복과 유일하게 했었는데, 올해 효성 그룹과 새롭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 효성에서 제공하는 폐에어백으로 만든 캡슐 컬렉션을 론칭했다. 효성티앤씨가 타이어 소재라든가 카본 소재 등 첨단 소재를 제공해주면 우리가 의류로 만드는 작업이다. 브랜드 대 원단 회사의 만남이라 점점 더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올 것 같다.

 

지난 8월 리복과 협업해 만든 운동화 '핸드메이드 클래식 나일론'. 영국 도버스트릿마켓런던을 통해 판매했다.
효성의 에어백 원단을 적용한 강혁 컬렉션

 

내년에 판매될 2022 S/S 컬렉션을 미리 살펴봤다. 이번 옷들은 이전 작업에 비해 조금 더 가볍고 일상적인 느낌이다.

맞다. 지난 번 묵직한 아우터 위주로 만들었는데, 올해는 티셔츠라든가 테일러링을 강조한 코트 등 이지웨어를 염두에 뒀다. 오랫동안 자동차 에어백 소재로 작업을 했는데 그것 말고도 다양한 걸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오목볼록한 엠보싱이 들어간 소재도 이번 컬렉션의 특징이다.

산업적인 소재를 꾸준히 연구하면서 그럼 산업적인 무늬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루이비통을 대표하는 패턴이 모노그램인 것처럼, 강혁을 대표하는 패턴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찾은 게 요철 무늬다. 자동차 내부를 살펴보면 차가 주행할 때 공기의 저항으로 발생하는 풍절음이나 노면과 접촉하면서 발생하는 노면소음, 진동 등을 줄이기 위해 흡음재를 사용하는데, 이 흡음재에 요철 무늬가 있다. 요철 무늬가 두드러지게 보이는 폴리에스테르를 원단으로 선택해 디자인을 전개했다.

 

비이커에 전시된 강혁 2022 S/S 컬렉션. 양각 음각 효과를 적용시킨 재활용 소재를 안정된 커팅과 웨어러블한 아이템으로 승화시켰다.
ⓒdesignpress

 

자동차 흡음재 무늬라니 재미있다. 멀리서 봐도 요철이 두드러질 만큼 엠보싱이 크고 진하다.

요철의 깊이가 2cm에 달할 만큼 엠보싱을 강하게 부각시켰다. 이러한 가공법으로 옷을 만들면 자칫 부하게 보일 수 있어서, 실루엣을 정리하는 데 애를 썼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단해 보이지만 실제로 입으면 보드랍다. 입는 분들이 두께의 대비, 착용감의 대비를 재미있게 생각하더라.

 

2022 S/S 컬렉션
ⓒkanghyuk

 

강혁은 지속가능성을 탐구하는 브랜드로 소개되곤 한다. 하지만 영국에서 버려진 에어백으로 작업했던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새 에어백 원단으로 옷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는 “에어백 원단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예쁘기 때문”이라고 했더라. 만약 미학적인 관점에서 에어백 소재를 택했다면 지속가능이라는 프레임에 얽매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강혁의 입장은 어떤가?

한국에서 더 이상 폐에어백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폐에어백으로 만들 수 있는 분량 이상의 주문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현재 효성을 통해 새 에어백 원단을 공급받고 있는데, 이 원단은 현장에서 여러 이유로 작업에 쓸 수 없어서 우리에게 들어온 것이다. 새 거지만 현장에서 쓰지 못하는 원단이다. 따라서 리사이클, 업사이클링과 여전히 연관되어 있다. “예쁘기 때문에 에어백 원단을 선택했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환경’은 앞으로도 지키고 싶은 키워드다. 하지만 무엇보다 결과물이 아름다워야 한다. 영국에서 졸업작품으로 폐 에어백으로 옷을 만들 때 미적인 부분에서 먼저 접근한 건 사실이지만 지속가능성 역시 우리의 관심사였다. 모든 작업은 우리의 관심사에서 자연스럽게 출발한다.

 

지속가능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지만 관심사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옷에 녹아 들었다는 말인데, 지금 강혁이 추구하는 콘셉트는 정확히 무엇인가?

인공, 소재, 균형이다. 우리는 인공적인 소재를 활용하는 디자이너이다. 어느 날 악어 가죽이 필요하다면 진짜 악어 가죽을 쓰는 대신 비건 가죽에 질감과 주름을 성형해서 우리만의 인공 악어 가죽을 만들 것이다. 그게 우리 콘셉트니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콘셉트에 지속성이 있는지 많이 고민한다. 그래서 뚱딴지처럼 보이는 작업들이 거의 없다. 또한 특이한 소재를 쓰다 보면 실제로 입었을 때 불편하거나 입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 항상 균형을 생각한다. 소재가 과하거나 인위적이면 실루엣을 간결하게 정리하든지 심플한 소재면 강한 질감이나 요철을 넣는 등 디테일을 부풀려서 접점을 찾는 거다.

 

ⓒkanghyuk

 

지난 7월 갤러리 바이파운드리에서 강혁의 첫 개인전 <리핏>을 열었다. 공업용 경첩, 볼트, 너트, 스프링 등으로 야생 동물을 만들고, 자동차 에어백와 나일론 실로 회화 같은 액자 작품을 선보였다. 차가운 인공 소재로 생기 넘치는 형상을 빚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강혁의 패션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하는 한편 순수 예술을 하는 데도 진지한 그룹이라는 생각을 했다. 강혁에게 순수 예술 작품을 만드는 건 어떤 의미가 있나?

우리가 패션을 하면서 연관된 소재와 부속품을 가져와 작품으로 만들었다. 옷이라는 건 입는 사람을 고려해야 하는 상품이지만, 이 경우에는 정말 자유롭게 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했다. 회사를 운영하고 디자인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결론적으로 작품이 다 팔렸지만, 팔리지 않았다고 해도 만족했을 것이다. 온전히 내게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너무 좋아서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작품 작업에 매달렸다.

 

지난 7월 서울 한남동 파운드리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 . 최강혁의 평면 작품 6점과 손상락의 입체 작품 4점으로 구성된다. 자동차 에어백, 공업용 겅첩 등 산업 재료를 해체, 관찰, 수정해 사로운 사물을 만들었다.
ⓒkanghyuk

 

강혁을 기반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지금 좋은 기회들이 생기고 있다. 5~10년이 지나서 ‘내가 그 때 대충하지 않았구나’ 생각할 수 있도록 열심히 작업하려 한다. 패션의 형태, 방식 등을 깊게 파고 드는 한편 패션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분야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해보고 싶다.

 

'강혁'은 영국 런던 RCA에서 만난 손상락(왼쪽), 최강혁 디자이너가 졸업 컬렉션에서 시작한 패션 브랜드다. 현재 여성복, 액세서리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고 독특한 소재를 활용해 아뜰리에(스튜디오에서 직접 작업)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삼성물산

 

 

유제이

자료 협조 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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