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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1

영화 <캐롤>에 영감을 준 사진은?

뉴욕 이스트빌리지를 누빈 사울 레이터
피크닉(piknic)에서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사진전을 개최한다. 국내에서 최초로 소개되는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Saul Leiter)’의 회고전으로, 사진뿐만 아니라 아직 발굴 중인 미공개 슬라이드 필름과 50~70년대 패션 화보, 그림 등 다양한 범주에 걸친 그의 예술적 시도를 만난다.
영화 의 한 장면.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테레즈가 딸에게 줄 선물을 사러 온 연상의 여성 캐롤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감독 토드 헤이즈는 이 작품을 시각적인 연출을 준비하며 미국 사진가 사울 레이터의 작품을 탐구했다고 말했다.

영화 <캐롤Carol>(2015)은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영화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뉴욕의 한 백화점, 사진가를 꿈꾸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테레즈가 딸에게 줄 선물을 사러 온 연상의 여성 캐롤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영화는 대사가 많지 않다. 그 대신 두 배우의 미묘한 눈빛, 표정 연기, 그리고 1950년대 뉴욕 풍경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캐롤>을 연출한 토드 헤이즈 감독은 이 영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진가 사울 레이터Saul Leiter를 꼽았다. 동성애를 정신 질환으로 분류하는 1950년대 사회에서 두 주인공들이 느꼈을 불안과 우울, 그럼에도 거부할 수 없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감독은 레이터의 사진에서 레퍼런스를 찾았다. 흐릿한 화면과 부드러운 색조, 무언가 너머에 멈춘 시선 등 레이터가 렌즈를 통해 바라본 뉴욕에는 특유의 고요와 서정이 깃들어 있다. 이러한 레이터의 향취는 영화 전반에서 발견된다. 필터를 끼운 것처럼 뿌옇고 몽환적인 분위기, 피사체를 감추는 유리와 차창의 반복적인 등장, 빨강·초록 등 어두운 배경에 포인트가 되는 원색··· <캐롤>은 제88회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조연상 등과 더불어 의상상, 촬영상에 노미네이트 되며 탁월한 시각적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Red Umbrella, c.1955 ©Saul Leiter Foundation

 

사울 레이터(1923-2013)는 ‘컬러 사진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미국 피츠버그에서 태어나 20대에 뉴욕에 정착한 이후 평생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윌리엄 이글스턴, 스테판 쇼어 등 컬러 사진의 시대를 연 1970년대 작가들보다 훨씬 앞선 1940년대부터 컬러필름을 사용했다. 컬러 사진은 진실을 왜곡한다며 동시대에 평론가들이 비판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레이터는 이에 동조하지 않고 계속해서 컬러 사진을 찍었다. 그의 60년 사진 경력 대부분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1980년대엔 거의 잊혀 졌다. 자기를 알리고 홍보하는 데 지독한 혐오를 갖고 있던 레이터는 스스로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 말하며 “세상에서 잊혀지기”를 바랐다.

 

 

영영 잊힐 뻔한 그를 주목한 건 2005년 예술서적 출판사 슈타이들의 대표 게르하르트 슈타이들이었다. 업무 차 들린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 그의 사진을 발견하면서 슈타이들은 2006년 레이터의 컬러 사진을 정리, 복원한 사진집 <얼리 컬러(Early Color)>을 출판했다. 레이터는 이를 계기로 일약 살아있는 전설, 컬러 사진의 선구자로 재평가 받게 된다. 레이터의 나이 83세 때의 일이다.

식탁에서 컵으로 얼굴을 가린 여동생, 유리창 뒤에 무심히 서 있는 여인, 중절모를 쓴 남성, 비 오는 도로 위 택시, 성에 낀 상점의 창문… 세월이 흐른 뒤 공개된 레이터의 사진에는 20세기 중반, 문화의 황금기를 지나는 뉴욕이 담겨 있다. 바쁜 도시의 일상은 레이터 특유의 모호하고 즉흥적인 구도와 회화적인 색감이 더해져 사색적인 분위기로 기록된다.

 

지금 서울 회현동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에서는 사울 레이터의 사진 작품을 한 자리에 모은 국내 첫 회고전 <사울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가 열리고 있다. 사진 뿐 아니라 아직 발굴 중인 미공개 슬라이드 필름과 1950~60년대 패션 화보, 가까운 사람들의 초상, 사진과 회화를 결합한 ‘페인티드 누드’까지 다양한 범주에 걸친 그의 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오랜 세월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머무르며 찍은 사울 레이터의 사진은 가까운 곳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찾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특별하고, 일상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을 통해 그가 가진 삶에 대한 태도를 느낄 수 있다. 전시장 곳곳에 재생되는 잔잔한 음악은 작품 감상의 흥취를 돋운다.

나아가 피크닉은 사울 레이터의 대화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In No Great Hurry: 13 Lessons in Life with Saul Leiter)>를 함께 수입, 배급한다. 여느 때처럼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거나, 추억으로 가득한 아파트를 정리하며 회상하는 그의 일상을 친밀하게 따라가며 보여준다. 이 영화는 피크닉 시네마를 포함해 전국 극장에서 12월 개봉한다.

서울 회현동 피크닉에서는 사울레이터의 회고전 를 2021년 12월 18일부터 2022년 3월 27일까지 진행한다. 사진은 전시 모습.
ⓒdesignpress

 

오랜 세월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머무르며 찍은 사울 레이터의 사진은 가까운 곳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찾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특별하고, 일상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을 통해 그가 가진 삶에 대한 태도를 느낄 수 있다. 어느 계절보다 겨울에 추천하는 전시,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 줄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는 2021년 12월 18일부터 2022년 3월 27일까지 계속 된다. 성인 기준 1만 5천원, 영화 티켓 별도.

 

 

 

유제이

자료 협조 피크닉

장소
피크닉 (서울시 중구 퇴계로6가길 30)
일자
2021.12.18 - 2022.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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