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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5

8인의 작가의 팔팔한 도시 여행

뉴욕, 파리부터 방콕과 발리까지.
경기 고양시에서 2004년 출범한 고양문화재단이 자체 운영해온 고양시립 아람미술관에서 전시 <팔팔한 도시여행>이 열려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경일메이커스, 김덕기, 이규태, 박준, 이미주, 이승연, 최보희, 한석경이 작가로 참여해 ‘여행’을 주제로 한 각자의 시각예술 작업을 보여준다.
고양시립 아람미술관 외부 전경, 사진 오정은

 

전시는 여덟 명의 참여 작가별 독립적으로 구획된 공간에서 각기 다른 여행 콘셉트와 매체의 작업을 담고 있다. 관람객은 우리 집, 발리, 뉴욕, 바르셀로나, 파리, 방콕, 런던, 마라케시(모로코)로 설정된 여행지와 장소의 인상 또는 기억을 연상시키는 작가별 작품을 감상하며 여덟 개의 방을 잇는 관람 동선을 따라 이동한다.

 

김덕기, 여행 Trip, 2021, Acrylic on canvas, 53X72.7cm

 

동양화를 전공한 김덕기는 여행의 설렘을 보여주는 따뜻한 느낌의 회화로 전시의 문을 연다. 목가적이고 이상적인 휴양지 풍경, 화목하게 웃고 있는 가족단위 여행객이 어린아이의 자유로운 그림처럼 묘사돼 있다. 다음 관람 동선으로 이어지는 한석경은 깎은 나뭇조각과 바다 영상으로 도시 ‘발리’를 연상한 공간을 표현했다. 수차례 출처를 이동해온 자연물과 작가의 수집적·조각적 행위가 지역의 신화적 심상을 표상했다.

 

이규태, 뉴욕, 종이에 색연필, 잉크펜, 9 x 12.5cm, 2021

 

일러스트레이터 이규태는 뉴욕 여행의 순간을 그린 색연필 드로잉으로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손바닥만 한 작은 크기 작업이라 넓은 전시장을 규모보다는 빈 여백으로 채우고 있지만, 그의 드로잉은 도서나 앨범 표지로 이미 많은 대중을 만나왔으며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현재 15만 명을 넘을 정도로 온라인에서 매우 알려져 있다.

 

이미주, mallorca, acrylic on canvas, 130x160cm, 2021

 

이미주는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운 일러스트 벽화로 일러스트 및 산업디자인, 창작 커뮤니케이션 전공자 다운 면모를 보였다. 지중해의 경쾌한 일상 에너지와 말풍선을 사용해 더해진 위트가 한편의 그림책처럼 공간 안에 펼쳐져 있다. 작가는 최근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렸던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의 입구 전시에서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일러스트 설치작업 <여래신장>을 선보이기도 했다.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디자인과 순수미술 간의 경계의 벽이 낮아진 최근 미술의 경향을 이들 전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경일메이커스, Je suis Paris, 목재에 도색, 모터, 가변크기, 2021
박준, Traveller Desk, mixed media, 테이블 위 가별 설치, 2021

 

경일메이커스는 에펠탑을 재해석한 설치 구조물을 통해 조형적, 건축적으로 여행지를 소개했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시각예술 작가뿐 아니라 국내 1세대 여행가·여행책 작가로 언급되는 박준도 참여했다. 지난 6월, 미술관으로부터 전시를 제안받았다고 한 그는 수십 년 간 여러 차례 여행을 통해 모은 카메라, 동전, 물병, 시계, 악기, 약통 등 갖가지 사물을 좌대 위에 정리·나열해 보여주고, 그들 사물 중 일부를 모아 ‘트래블 바니타스(Travel as Vanitas)라 이름 붙인 정물 사진 연작도 제작해 액자로 걸었다.

 

이들 연작 아래 캡션으로 붙은 ‘운명’, ‘상처’, ‘방랑자’, ‘순정의 여행자’ 등의 소제목, 그리고 여행 에세이 특유의 사색적이며 감상적인 문장으로 쓰인 글귀가 사진에 대응해 결합하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 낡고 바랜 비행기 티켓, 지도, 엽서, 사진, 캐리어 가방, 그리고 용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이국적 소품이 모인 공간에서 관람객은 여행과 여행자의 이미지를 나름의 자기 경험에 더해 새롭게 떠올릴 것이다. 자칫 낭만적으로만 보일 수 있는 여행을 경계하듯, 작가는 여행의 이면을 상기시키는 물건도 아카이브에 함께 넣었다. 

 

“‘트래블 바니타스’는 ‘헛되고 헛된’ 세상이나 죽음을 환기시키는 게 아니라 나를 살리는 여행을 환기시킨다. “당신은 죽는다(You must die)”가 아니라 “당신은 여행해야 한다(You must travel)”고 말한다. 팬데믹 시대에 나는 여전히 다음 여행을 꿈꾼다.” – 박준

 

최보희, Piccadilly Circus, mixed media, 140 x 500x 265cm, 2021

 

최보희는 런던의 상징인 빨간 2층 버스를 대형 에어벌룬으로 보여주고, 몇 개의 여행 가방을 세운 뒤 각국의 언어가 소음처럼 들리도록 장치했다. 움직이는 항공기나 차량의 창밖으로 보는 이국의 풍경같이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자기 위치와 불안한 시선을 액자 안에 영상 모니터를 삽입한 작업으로 먹먹하게 처리했다.

이승연, 사하라 여행자 1, 판화에 피그먼트 잉크, 24x32cm, 2021

 

본 전시의 마지막 코너인 이승연의 공간에서는 작가가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과 포르투갈의 해변, 루마니아 카를파티아 산을 걸으며 떠올렸다고 하는 이야기가 핸드 터프팅 카펫(손으로 실을 심어가며 완성하는 방법), 드로잉, 영상, 설치 등 다매체 작업으로 전시되고 있다. 작가가 직접 쓴 노트와 미술관의 보도자료에 쓰인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작가는 ‘고대라는 재료를 갖고 미래를 얘기’하고, ‘세계 이곳저곳을 누비며 종종 탐정인 양 낯선 세상과 생경한 이들을 정탐한다’.

 

한석경, 전시 전경, 사진 오정은

 

‘여행’을 전면의 주제로 다룬 전시나 작업의 주된 프로젝트 매체로 활용하는 작가들의 작업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다. 여행은 고립된 일상을 피해 휴양과 낭만을 찾아 떠나는 피서객의 이미지로, 또는 타지 생활의 고난과 편견에 견디며 도전하거나 고발하는 이방인의 수행으로, 혹은 설렘과 기대에 더해 환상적이고 주술적인 바람의 실현을 모색하는 여행객의 의지로 나타나고는 했다.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이후, 여행은 과거로부터 새로 환기되고 재정의되고 있다.

 

고양문화재단이 주최한 ‘한국 현대미술의 최전선’ <팔팔한 도시여행>이 지역 내 문화예술 수요와 대중의 기호에 적절히 반응하면서도, 여행을 새롭게 환기해 그 의미를 말하고 ‘현대미술의 최전선’이라 말 붙인 전시 부제에 걸맞은 역할을 점차 해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 특정 도시에 집중되어 온 미술의 여행에 비해 여타의 지역은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 방랑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정은

자료 협조 고양시립 아람미술관

장소
고양시립 아람미술관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중앙로 1286)
일자
2021.10.14 - 202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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