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마음에도 따뜻하고 뭉클한 감정이 불어온다. 괜히 ‘가을 타나 봐’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듯, 가을이 깊어지기 시작하면 오랜 기억을 헤집는 감정들이 낙엽처럼 차곡차곡 쌓인다. 그런 가을의 한복판, 10월을 맞이해 찾아온 일러스트레이터 슬로우어스는 바로 그러한 우리들의 안온한 일상과 잔잔히 흐르는 감정을 그려낸다. 두고 온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곁에 있는 것으로부터 느끼는 편안함, 두 가지 감정을 솎아내며 기록하는 오늘은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가 된다. 조금은 천천히 가자는 그와 함께 무르익는 가을을 향해, 아름다운 정경과 사물을 감상하러 가 보자.
Interview 슬로우어스
‘Slowus’를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일상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사람, 슬로우어스입니다. ‘slowus’는 slow와 us의 합성어예요. 전 평소에 조금씩 느린 편이지만 대신 정확하게 해요. 뭐든 급하게 하면 실수가 많아져서 일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요. 천천히 미리미리 하는 게 제 삶의 방식에 더 맞았고, “우리 같이 천천히 합시다”라는 작은 바람을 담아서 ‘슬로우어스’라는 활동명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해질녘 바다를 유유히 항해하는 쏠트-호를 그려주셨어요.
이번 그림의 콘셉트는 ‘잠시 쉼’이에요. 하루를 부지런히 달린 후 속도를 줄이고 잠시 쉬며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할까요? 평소 편안하고 서정적인 그림을 많이 그리는데 그런 무드를 유지하면서 쏠트-호의 밝고 희망적인 느낌이 어울리도록 균형을 맞추는 일이 이번 작업의 포인트였던 것 같습니다.
주로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고 있어요. 슬로우어스가 포착하는 풍경은 어떤 장면들인가요?
제가 담아내는 풍경들은 일상의 모습을 저만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과정이에요. 평소 길을 걸으면서 사진을 많이 찍는데요. 그림으로 작업하면 좋을 것 같은 풍경을 찍기도 하지만, 때로는 진정으로 가슴을 잔잔하게 울리는 장면들을 사진에 담기도 합니다. 계속 넘어지면서도 한발한발 걸음마하는 아이를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엄마의 모습이나 곧 떠나야하는 정든 곳의 풍경을 그림으로 기억하는 거죠.
정물화도 자주 그려요. 풍경화와 다른 정물화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제가 그리는 풍경화의 주된 감성이 ‘그리움’이라면 정물화는 ‘편안함’인 것 같아요. 풍경화는 이미 지나온 곳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작업을 하기에 다시 가고 싶다는 그리움이 많이 묻어나요. 반면 풍경화는 집 안의 모습이나 늘 옆에 있는 소품들을 그려서 편안함이 많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를 위한 나만의 루틴이 있다면?
매일 아침 일어나면 멍한 상태에서 좋아하는 무드의 노래를 틀어놓고 따뜻한 커피를 마셔요. 향이 좋다는 커피를 주문해 매일 마시다 보니, 이제는 제법 커피 취향도 생겼죠. 지난 번 주문한 커피보다 이번에 주문한 커피의 향이 더 좋으면 그걸로 지금의 나는 어제보다 더 행복하구나 싶어요. 삶의 기준을 너무 높이 두지 않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작은 행복부터 즐기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사진 출처 : 슬로우어스 인스타그램
다수의 책 작업을 하셨어요. 이중 가장 인상에 남는 작업은 무엇이었나요?
최근에 작업한 한기호 소장님의 <니 편이 되어줄께> 표지 삽화 작업이 기억에 남아요. 할아버지가 태어난 손주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편지 형식으로 적은 에세이인데요. 손주를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에요. 또 좋은 편집자님을 만나 재미있게 작업도 하고 좋은 결과물도 나와서 뿌듯했던 작업이었어요.
취향의 브랜드나 아티스트가 궁금해요. 슬로우어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취향이 다양해서 특별히 고집하는 브랜드나 아티스트가 따로 있지는 않아요. 어떤 브랜드는 이건 좋은데 저건 별로이기도 하고, 어떤 아티스트는 이런 방면으론 표현력이 좋은데 저런 방면으로 매력이 덜 보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예전엔 취향을 물어보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말하기 조금 창피했는데 지금은 뚜렷하게 고집하는 취향이 없는 것도 제 취향이지 싶어요. 어떤 분야든 그 분야 top은 취향 여부 관계 없이 좋거든요!
어떤 분들께 쏠트-호를 추천하나요?
쏠트-호에는 사회의 전반적인 이슈나 트렌드들이 다뤄지는 것 같아요. 저처럼 아싸를 지향하지만 그래도 유행은 따라가고 싶은 분들께 추천드려요. 쏠트-호와 함께라면 트렌드에 뒤쳐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