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광장시장에서 열린 ‘김밥 팝업’을 기억한다. 제주 은갈치 김밥, 속초 명란 김밥 등 각 지역의 이색 김밥을 한데 모은 팝업은 오픈 8분 만에 대기가 마감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 줄의 끝에는 전국의 김밥집을 찾아다닌 한 사람의 집요한 기록이 있었다. ‘김밥대장’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정다현은 퇴사 후 4년 동안 전국 750곳이 넘는 김밥집을 다닌 김밥 마니아다.
김밥 하나에 인생을 걸었다는 그는 그동안 쌓인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 할 김밥 맛집을 엮은 안내서 『전국김밥일주』를 출간하고, 김밥 순례를 돕는 NFC 키링 등 굿즈로 세계관을 확장해 왔다. 언젠가 자신만의 김밥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그가 이번엔 ‘제철 맞은 김밥’을 콘셉트로 두 번째 팝업을 열었다. 지난 번, 광장시장 팝업 웨이팅에 실패했던 에디터가 개점 첫날 다시 현장을 찾았다. 내돈내산, 가감 없는 오픈런 후기를 전한다.
09:58 팝업 도착
‘제철 맞은 김밥’ 팝업 오픈 시각은 오전 열 시.
개점 첫 날, 매체 관계자 포함 열다섯 명 남짓이 이미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팝업은 포장마차 형태로 운영됐고, 김밥은 건물 안에서 그때그때 만들어 전달했다. 사람들 틈에 섞여 엉거주춤, 차례를 기다렸다.
10:06 김밥 주문
이상하다 싶어 옆 사람에게 묻자, 주문을 먼저 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팝업은 주문 후에 내 순서가 되면 카카오톡으로 알림이 오는 방식이다. 추운 겨울날 대기 줄이 길어질 것을 고려한 운영 방식이라고.
이번 팝업에서는 김밥과 함께 어묵도 판매한다. 밀가루 대신 쌀로 반죽한 ‘오마뎅’의 어묵이다. 겉보기엔 다소 퍼진 듯했지만, 식감이 꽤 쫀득하다. 김밥과 곁들이려고 하나, 기다리며 먹을 용으로 하나. 두 개는 기본이다. 김밥 한 줄은 6,000원, 어묵 한 꼬치는 1,500원. 서울 내 40줄 이상 주문 시 배달도 가능하다니 참고.
10:31 김밥 수령
드디어 내 차례.
은박지에 싸인 김밥을 받아 드는 순간, 군침이 돈다. 메뉴는 단일. 겨울 해풍을 맞아 단맛이 오른 남해 섬초 시금치 김밥이다. 김밥대장이 남해에서 직접 캔 시금치로 만들었다고. 이번 팝업에서는 화려한 토핑보다 김밥의 ‘기본’에 집중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담백한 맛이라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릴 듯하다. 김밥 페어링을 주제로 한 챌린지도 기획 중이라고 하니, 이어질 소식 역시 기대해 볼만하다.
QR 코드를 찍으면 ‘시금치 김밥 콜키지 매장’ 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추운 계절을 고려한 작은 배려다. 음료와 함께 먹어도 좋지만, 따끈한 국수를 곁들이면 아주 만족스러운 한끼가 되지 않을까.
10:36 공원 도착
날씨가 따뜻해 5분 거리의 열린송현녹지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벤치에 앉아 김밥을 꺼내니 왠지 소풍 같다. 은박지를 걷어내니 순간 고소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뿌린 건지, 쏟은 건지 헷갈릴 만큼 수북하게 쌓인 참깨 덕분이다.
기본 김밥일수록 재료 하나하나에 더 민감해진다. 완도 소안도의 ‘청애진심’ 김, 쌀 소믈리에가 추천한 김밥에 잘 어울리는 ‘새청무쌀’, 햇당근과 햇우엉, 햇무로 만든 단무지, 무항생제 달걀로 부친 지단, 국산 참깨로 짜낸 ‘방유당’ 참기름, 여기에 남해 섬초 시금치가 밥만큼이나 도톰하게 들어 있다.
10:48 식사 끝
오랜만에 만난 ‘잘 만든’ 기본 김밥이다.
개인적으로 참깨와 들깨의 존재감이 컸다. 고소함을 끌어 올리고, 식감의 리듬을 만든다. 좋은 재료의 힘을 아는 이라면 추천, 독특한 김밥을 찾는다면 권하지 않겠다.
튀지 않는 맛이라 다른 음식과의 합도 기대된다. 김밥대장이 제안한 페어링은 회와 떡볶이. 내가 떠올린 조합은 매콤한 굴 무침이다. 혹시 이미 시도해 본 사람이라면, 후기를 전해주길.
글·사진 김기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