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현대 서울에서 ‘작은 도서전’을 열었다. 5층 에픽서울에 ‘리딩 파티(Reading Party)’ 팝업스토어를 마련해, 위즈덤하우스·안전가옥·다산북스 등 두터운 팬층을 지닌 출판사의 도서 400여 종을 전시·판매한다. 책과 함께 머무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오감의 경험으로 연결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프래그런스 브랜드 셀바티코와 출판사 녹색광선이 함께 선보인 책·향수 페어링과 아이웨어 브랜드 윤서울과 민음사과 협업한 ‘리더스 안경’ 굿즈도 같은 자리에서 체험할 수 있다. 6층 이탈리(EATALY)에서는 구매한 도서를 읽는 ‘미드나잇 북카페’를 운영해 늦은 시간까지 독서의 시간에 잠길 수 있다.
이번 팝업이 입소문을 탄 건 두 출판사의 존재감 덕이 크다. 안전가옥과 위즈덤하우스는 각각의 색을 담은 공간 연출과 독자를 향한 애정 어린 이벤트를 준비해 관심을 모았다.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꾸준히 드나들던 리딩 파티 현장을 직접 다녀왔다.
안전가옥
책을 사면 종소리를 울리는 곳이 있다?
입장하자마자 가장 먼저 시선이 닿는 곳은 안전가옥이다. ‘이상한 이야기들의 궁정 연회’라는 콘셉트로 공간을 꾸몄다. 짙은 보라색 천을 덮은 긴 테이블 위로 붉은 꽃과 뱀 오브제가 놓여 있다. 잔혹동화 속 한 장면을 연출한 듯 오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건 안전가옥이 장르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이기 때문. 흥미로운 서사와 장르적인 쾌감을 추구하는 안전가옥은 종이책에 그치지 않고, 드라마·영화·웹툰 등 다양한 매체로 세계관을 확장하는 방식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테이블 위로 음식 대신 대표 단편 시리즈 ‘쇼-트’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책을 한 장씩 넘기던 중, 갑자기 종소리가 울린다. “여러분, 고객님께서 도서 열 권 구매하셨습니다!” 직원들은 박수로 환대하고, 손님은 겸연쩍은 듯 고개를 살짝 튼다. 지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출판사계의 러쉬’라는 별칭을 얻은 만큼, 안전가옥 부스에서는 남다른 에너지가 느껴졌다. 덕분에 나 역시 어렵지 않게 추천을 부탁할 수 있었다. 장르문학은 아직 낯설고, 사랑 이야기가 끌린다는 말에 권혁일 작가의 『첫사랑의 침공』을 건네받았다. 나처럼 독서 경험치가 낮은 이라면, 베테랑 직원분들의 도움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독자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안전가옥은 이번 팝업을 통해 쇼트 시리즈의 새로운 커버를 공개했다. 속표지를 북 커버로 활용할 수 있는 리버시블 커버로, 각 작품의 정서를 이미지로 구현해 소장 가치를 높였다. 특히 기존 고객 역시 수량 제한 없이 새로운 커버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기존 팬들의 발길을 끌었다. 덕분에 출판사와 독자 사이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생성됐고, 이는 화기애애한 현장 분위기로 이어졌다. 부스 한편에서는 ‘몰래 온 손님’으로 『성은이 냥극하옵니다』의 백승화 작가가 조용히 사인을 나누고 있었다. 7일과 9일에는 각각 조예은, 천선란 작가의 사인회도 예정되어 있으니, 관심 있다면 안전가옥 인스타그램을 참고하자.
위즈덤하우스
나만의 한 권을 찾을 수 있는 위픽 팔레트
서재를 정리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작가나 장르로 분류하거나 다짜고짜 색상에 따라 정렬하거나. 미관적 통일감만을 중시하는 나는 전적으로 후자다. 멀리서부터 위즈덤하우스 부스에 마음이 동한 이유다. 하얀 책장에 꽂힌 위즈덤하우스 단편 시리즈 ‘위픽’이 표지 색에 따라 부드럽게 그라데이션을 이루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프리즘에 반사된 빛처럼 은은하게 번지는 색감이 아름답다. 심지어 하나의 시리즈로 완성된다니, 탐날 수밖에.
안전가옥 부스가 활기로 독자를 맞았다면, 위즈덤하우스는 조용히 머물며 나만의 작품을 탐색하기 좋다. 특별히 추천을 부탁하지 않아도 취향에 맞는 책을 찾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전편 줄거리가 간략하게 정리된 리플렛부터 키워드별로 100권을 큐레이션한 QR코드 안내까지, 시리즈를 처음 접한 사람도 어렵지 않게 한 권을 고를 수 있다. 한편에서는 책 속 문장을 발췌한 책갈피도 마련되어 있는데, 마음이 끌리는 문장을 따라 책을 집어 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특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끈 건 이번 팝업을 통해 공개한 『파쇄』 리커버 버전이었다. 파쇄는 올해 영화로도 개봉한 구병모 작가의 베스트셀러 『파과』의 외전이자, 위픽 시리즈의 첫 번째 도서이기도 하다. 이번 리커버 버전은 추후 서점 판매 여부가 미정이라고 하니, 팬이라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는 편이 좋겠다.
부스 한쪽에서는 ‘책꾸’ 체험 존도 있다. 100종의 위픽 표지 아이콘 스티커와 마스킹테이프 등으로 책 표지를 자유롭게 꾸밀 수 있다. 완성한 책 사진을 SNS에 업로드하면 경품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글·사진 김기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