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청계천. 이곳으로 물이 흐르고, 백로며, 버들치며 살아있는 것들이 모인다. 만일 청계천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도시의 계절을 어디서 느낄 수 있었을까. 늘 지금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청계천은 때로 홍수가 잦은 골칫거리였고, 위태로운 삶의 터전이었으며, 온갖 잡화가 쌓인 상가이기도 했다. 잔잔한 유속 너머로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서울의 근현대 기억이 출렁인다. 청계천을 따라 걷는 건 단순한 이동이 아닌 시간을 탐색하는 일에 가깝다. 파노라마처럼 세월을 간직한 박물관, 벼룩시장의 낡은 물건들과 다방에 베인 커피 향. 하루쯤은 청계천에서 시간을 거슬러 걸어보는 건 어떨까?

청계천박물관

역사를 인식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결까지 감각하게 되는 일이다. 청계천 산책의 출발점으로는 서울 성동구에 있는 청계천박물관을 추천한다. 복원 사업과 함께 설립된 청계천박물관은 한양으로 수도를 천도한 조선시대부터 시민의 삶에 녹아든 현대까지 청계천의 시대별 변화를 짚어낸다. 청계천의 변화는 세 개의 굵직한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자연 하천으로 천변에 판자촌이 형성됐던 시기, 복개 이후 고가 도로를 따라 상권이 형성된 시기, 그리고 시민 공원으로 자리 잡은 현재까지. 개발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의 형태뿐 아니라 도시 구조까지 함께 달라졌음을 체감하게 된다.

상설 전시 외에도 개관 20주년을 기념한 기획 전시가 준비되어 있다.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으로 널리 알려진 김성환 화백의 특별전 〈청계천의 낮과 밤〉이다. 만화 연재를 마친 뒤 김성환 화백은 서민의 생활을 담은 풍속화 작업으로 활동을 이어 나갔다. 청계천 판자촌을 그린 연작도 그중 하나다. “달밤이면 남루한 판잣집에도 낭만이 서려있다”라고 말한 그의 따뜻한 시선을 따라 청계천이 품은 낮과 밤의 기억을 만나보자.

주소: 서울 성동구 청계천로 530
동묘 벼룩시장

사람이 모이는 곳엔 반드시 장이 들어선다. 청계천이 그렇다. 청계천 박물관을 나서 상류로 걸으면 역사를 품은 시장을 차례로 마주한다. 황학동 벼룩시장, 서울풍물시장, 동묘 벼룩시장, 방산시장, 중부시장, 광장시장···. 그중에서도 피난민들이 청계천변에 노점을 펼치며 형성된 동묘 벼룩시장은 지금도 활발히 운영되는 장소 중 하나다. 영도교부터 동묘앞역 3번 출구까지 이어지는 이곳은 2003년 복원 공사로 터를 잃은 황학동 상인들이 몰리면서 더욱 활기를 띠었다. 빈티지 의류 쇼핑 장소로 입소문을 타면서 젊은 세대의 발걸음까지 이어지고 있다.

청계천 산책의 묘미는 멈추지 않는 데에 있다. 헌책방 거리, 수족관 거리, 완구 거리 등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전혀 다른 성격의 시장들이 경계 없이 펼쳐진다. 청계천 산책은 버스보다는 천천히 걷는 것을 추천한다.
주소: 서울 종로구 숭인동 102-8
강산옥

1950년대에 문을 열어 3대째 이어온 노포다. 청계천에 판자촌이 형성되던 시절부터 주변 상인들의 단골집 역할을 해왔다. 여름 세 달간은 콩국수를, 그 외 계절에는 콩비지를 단일 메뉴로 운영한다. ‘서울 3대 콩국수’로 꼽히며 여름철에 특히 손님으로 붐비지만, 이곳의 콩비지를 최고로 치는 이도 적지 않다. 상은 단출하다. 덜 익은 배추김치, 오이 고명을 덮은 콩국수 한 그릇. 배추며 콩 같은 재료는 늘 좋은 것으로 준비한다. 간소한 구성에서 묵직한 자신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수저를 타고 천천히 흐르는 국물부터 맛보면 부드러운 식감이 목을 타고 지나간다. 테이블에 놓인 소금을 살짝 더하면 감칠맛이 살아나고, 원형 그대로도 충분히 깊은 맛이 난다. 국물은 리필도 된다지만, 이미 넉넉한 양이다. 나가는 손님에게 사장님은 늘 묻는다. “국물은 다 드셨어요?” 면은 남겨도 국물은 꼭 마시고 가라는 그 한마디에서 음식을 향한 마음이 전해진다.
주소: 서울 청계천로 196-1
솔다방

청계천을 따라 걷다 보면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건축물, 세운상가와 마주하게 된다. 그 3층 한켠에는 1989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터줏대감, 솔다방이 있다. 한때는 배달원만 여섯 명, 수금 사원까지 따로 둘 정도로 붐볐던 곳이다. 노란 조명 아래 놓인 낡은 소파, 손님들이 손 글씨로 남긴 방명록까지. 내부는 당시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장노년층에게는 향수를, 청년들에게는 낯선 시대를 탐험하는 듯한 신선함을 전한다.

커피도 좋지만, 대추와 견과류를 듬뿍 넣고 노른자를 띄운 쌍화차나 시럽을 아낌없이 넣은 팥빙수 한 그릇을 권한다. 메뉴판에는 없지만 오전에는 라면도 판매하니 허기질 즈음 뜨끈한 국물로 속을 데우는 것도 좋겠다.
주소: 서울 중구 청계천로 160 세운청계상가 3층
웜비어위캔드

청계천 산책의 마무리로 위스키 한 잔 어떨까. 배오개다리 옆에 있는 펍, 웜비어위캔드가 제격이다. 이곳은 자유와 문화가 들끓던 1960년대 미국 바의 정서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공간이다. 체크무늬 바닥, 목재 테이블, 잔이 부딪치는 소리와 로큰롤이 뒤섞인 실내. 먼 이국이 간직한 한 시대의 기운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곳의 시그니처는 보일러메이커다. 맥주에 위스키 샷을 곁들이는 방식으로, 미국식 폭탄주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위스키의 알싸함과 맥주의 청량함이 맞물리는 순간, 얼큰한 취기가 스며든다. 창 너머로 청계천의 밤을 바라보며 버팔로 윙 한입 베어물면, 무거웠던 하루도 가볍게 풀리는 기분이다.
주소: 서울 중구 청계천로 184 2층
▼ 헤이팝 추천 스폿을 지도로 확인하고 싶다면
글·사진 김기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