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있지만 몰랐던 트렌드, 읽고 나면 다르게 보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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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4

홍길동부터 둘리까지, 캐릭터로 읽는 한국 애니메이션 30년사

12만 장의 손그림으로 완성된 한국 최초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
〈셀 위를 달려라, 길동!〉전시 포스터.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1,400만 달러. 한국 제작사가 만든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The King of Kings〉가 북미에서 거둔 성과다. 유명한 IP 없이, 예수의 생애를 그린 이 작품은 개봉 3주 만에 ‘기생충’의 북미 누적 매출을 넘어섰다. 그렇다면 이 모든 흐름의 시작은 어디일까. 한국 애니메이션의 뿌리가 궁금해진다.

〈셀 위를 달려라, 길동!〉은 한국영상자료원이 기획한 전시로, 1967년 개봉한 한국 최초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부터 1996년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까지 지난 30년간 한국 애니메이션의 궤적을 되짚는다. 주제곡만 들어도 떠오르는 둘리와 태권V부터 한 시대를 장식한 원더공주와 차돌바위까지. 많은 사랑을 받은 10개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전시를 기획했다.

 

'셀 애니메이션' 기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렌티큘러를 설치했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125,300장의 그림. 1967년 한국 최초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제작에 사용된 셀의 수다. 배경과 인물을 각각 투명한 셀에 나눠 그린 뒤 겹쳐 촬영하는 이 방식은, 프레임 하나하나를 손으로 그려야 하는 작업이었다. 자동 보간 기술이 적용되는 디지털 방식과 달리, 셀 애니메이션은 모든 움직임을 사람이 직접 완성해야 한다. 

느리고 번거롭지만, 사람의 리듬과 감정을 담을 수 있는 기법으로 꼽힌다. 지금도 스튜디오 지브리리가 손 그림을 고수하는 이유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그런 아날로그 감각을 관객이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도전! 나도 애니메이터’, ‘캐릭터 열전’ 같은 체험 섹션에서 관람객은 셀을 겹쳐보거나 스탬프를 찍으며 애니메이션 제작의 원리를 직접 이해할 수 있다. 

Interview | 정민화 큐레이터

 ‘셀 기법’이 낯선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중요한 콘셉트로 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많은 애니메이터가 ‘셀 기법’을 중요하게 꼽아요. 지금은 대부분 애니메이션을 디지털로 제작하지만, 프레임마다 직접 그렸던 셀 기법이야말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시초죠. 그에 대한 존중을 담아 보여주고 싶었어요. 느리고 손이 많이 가지만, 셀 기법만의 미학과 매력도 있고요. 스튜디오 ‘지브리’도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지만, 여전히 많은 분이 좋아하잖아요. 

실은 이번 전시 준비 과정도 수작업의 연속이었어요(웃음).

 

어떤 점에서요?

오래된 작품이다보니 영상 파일 외에 남아있는 자료가 많지 않았거든요. 전시에 적합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부터 고민이었죠. 그래서 영화 장면을 재가공해 디자이너가 직접 수작업으로 제작했어요. 단순히 포토샵으로 누끼를 따는 작업과는 달라요. 스탬프로 찍었을 때 선명하게 나올 수 있도록 캐릭터와 배경을 직접 그렸거든요. 분리된 배경 셀과 인물 셀을 겹쳐보며 셀 애니메이션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체험 공간을 만들었죠.

 

캐릭터의 변천사가 담겨있는 72장의 카드.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캐릭터 카드도 마찬가지예요. 시대별로 캐릭터의 변화를 보여주는 작업인데, 로보트 태권V만 해도 10가지 넘는 버전이 있어서 전부 다시 그려야 했어요. 그만큼 손이 많이 갔는데, 많은 분이 못 보고 지나쳐 아쉽더라고요.

 

전시를 기획하며 중요하게 생각한 관객 경험은 무엇인가요?

작품을 모르는 분들도 재밌게 보고 갈 수 있는 요소를 고민했어요. 예전 콘텐츠를 그대로 보여주는 전시는 그 시대에 대한 기억이 없으면 즐기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시각적으로 눈길을 끄는 장치나,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형 콘텐츠를 만드는 데 신경을 썼어요. ‘도전! 나도 애니메이터’ 코너에서는 배경 셀과 인물 셀을 겹쳐보며 셀 애니메이션의 원리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죠.

 

또 애니메이션은 주제곡이 인상 깊잖아요. 처음에는 함께 주제곡을 부를 수 있는 공간을 떠올렸는데, 회의하다 보니 집에서 작품을 보던 경험을 옮겨오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소파와 탁자를 두고 거실처럼 꾸몄죠. 둘리나 태권V 등 전시하는 작품을 TV로 봤던 추억이 있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트렌드의 변화를 체감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최근 관객층이 어려졌다는 걸 느껴요. 작년에 영화와 관련된 책을 소개하는 ‘영화문고’라는 전시를 기획했는데요. 텍스트힙이라는 트렌드를 반영해 기획한 전시거든요(웃음). 그랬더니 기존에 전시를 보러오던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 말고 책에 관심 있는 분들도 많이 찾아주셨어요. 관람층의 폭이 넓어졌죠. 전시를 기획할 때 이런 흐름을 많이 고려해요. 다음 전시는 영화 음악을 소재로 준비하고 있는데요. 이것 역시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수집된 LP를 듣고 체험할 수 있는 요소를 넣는 등 적극적인 관람 경험을 많이 만들려고 하죠. 

김지오 기자

자료 제공 및 취재협조 한국영상자료원

프로젝트
〈셀 위를 달려라, 길동!〉
장소
한국영화박물관
주소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400 한국영상자료원 1층
일자
2025.05.02 - 2025.08.30
시간
화~토 10:30 - 19:00
월, 일 정기 휴무
주최
한국영상자료원
주관
한국영상자료원
김지오
자기만의 길을 걷는 브랜드와 사람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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