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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31

한국 조각의 거장을 추모하며

서울시립미술관에 안착된 그의 '자식들'.
“오빠는 살아생전 자신의 작품을 내 자식들이라고 불렀다. 오빠가 떠난 지 올해로 48년이 된다.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오빠의 자식들이 있을 거처가 마련되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고 도움을 주셨다. 앞으로는 서울시와 서울시립미술관이 조각가 권진규와 함께한다. 비로소 인생 숙제를 마친 셈이다.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을까. 머리 숙여 두루 깊이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권진규, 자소상과 함께
권진규, 자소상, 1968, 테라코타, 20×14×19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권진규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이자 권진규 작가의 누이동생 권경숙(94세) 유족 대표가 작품을 기증하며 밝힌 말이다. 한국 조각의 거장, 

권진규(1922~1973) 작가의 작품이 드디어 시민 품에 안착했다. 권경숙 여사는 그가 세상을 떠난 1973년부터 미술관 설립을 모색해왔지만 쉽지 않았다. 수년 전만 해도 작품 대부분은 대부 업체 창고에 보관되어 있기도 했다. 2015년 춘천에 권진규 미술관을 짓는 조건으로 유족이 작품을 일괄 양도했지만 미술관 건립이 미뤄지며 법적 다툼이 벌어진 탓이다.  

법적 소송 끝에 다행히 승소하고 미술품을 돌려받았고, 유족은 서울시립미술관에 전 작품을 기증했다. 기증품은 ‘도모'(1951년), ‘기사’

(1953년) 등 조각 96점, 회화 10점, 드로잉 29점 등 총 141점에 달한다.   

 

권진규, 입산, 1964, 종이에 연필, 19.8×27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권진규, 서 있는 여인, 1968, 테라코타, 40×27×19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권진규, 입산, 1964-65, 목조, 109×93×23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권진규 작가는 생애 대부분을 어둠 속에서 지냈다. 일본에서 유학한 그는 스승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시미즈 다카시에게 정통 근대 조각을 

배우고 스승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가 드물었다. 당시에는 현대추상조각이 대세였다. 

반면, 권진규 작가는 한국적 미감의 원형을 찾아 불상의 조형미를 탐구하고 인물이나 동물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1973년 

5월 4일. 작가는 동선동 자택에서 “인생은 공空, 파멸”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서울시립미술관은 기증의 뜻을 기리고 작품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2022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권진규 작가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2023년에는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 상설전시 공간을 마련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권진규 컬렉션의 상설전시 

공간 마련은 천경자 컬렉션, 가나아트 컬렉션 이후 20년 만의 일이다. 

 

권진규, 구부리고 선 여인, 1972년경, 테라코타, 26×23×11.5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권진규, 기사, 1953, 석조(안산암), 65×64×31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권진규, 도모, 1951, 석고, 25×17×23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권진규, 자소상, 연도 미상, 석고, 31×16×20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서울시립미술관은 대량 기증 컬렉션으로 1998년 천경자 컬렉션(98점), 2001년 가나아트 컬렉션(200점), 2019년 최민 컬렉션(161점), 

2020년 김인순 컬렉션(106점)을 유치한 바 있다. 이 중 천경자 컬렉션과 가나아트 컬렉션은 기증 협약에 따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상설전시실을 운영 중이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권진규 컬렉션 수증은 권진규 작가가 한국 근현대미술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의미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작가의 작품이 흩어지지 않고 공공기관에 소장되어 시민이 언제나 향유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연구, 

관리할 수 있는 출발점을 마련한 것에 큰 의의가 있다.”

 

 

 

자료 협조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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