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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있는 박물관·미술관의 수는 2023년 기준 1,199개(문화체육관광부 2023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 데이터 기준). 10년 전에 비하면 300개에 가까운 박물관·미술관이 새로 개관했다. 단순히 기관 수만 늘어난 건 아니다. 올해 상반기에만 국립중앙박물관 외국인 관람객 수가 9만 명을 넘기며 최고 기록을 세우는 등 국외에서 보내는 관심 역시 높아지고 있다. 박물관이 가진 사회적 역할과 문화 시설에 대한 수요를 고려하면 앞으로도 기관 수와 관람객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최초로 열린 박물관·미술관 박람회
박물관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 맞춰 전국에 있는 박물관·미술관을 한데로 모아 다양한 전시를 개관하고, 업계의 동향까지 파악할 수 있던 행사가 열렸다. 국내 최초 ‘박물관·미술관 박람회’다. 지난 10월 24일부터 27일까지 부산 벡스코 제1 전시장에서 열린 박람회 현장에 다녀왔다.
이번 박람회는 국립·공립·사립·대학 박물관·미술관뿐 아니라 전시 유관 산업체도 참여해 총 100여 개의 기관이 371개 부스를 조성했다. 주최·주관 측은 다양한 기획전과 강연, 교육·체험 프로그램 등을 준비해 관람객의 만족도를 높였다. 특히 기획전이 인상적이다. 박물관 발전에 헌신한 수집가들의 안목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기획한 〈컬렉터의 방〉 전시는 김환기, 이병철, 전형필 등 여섯 명의 수집가를 우리 문화의 ‘수호자’로 칭하며 그들의 공간을 오마주했다. 고전 유물을 현대 작가 11인이 재해석한 〈고전:영감의 보고〉 전시도 과거의 유산을 보존하는 박물관·미술관의 가치와 역할을 제대로 드러낸 유의미한 결과물이었다. 외에도 부채, 소반, 촛대 등 실용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유물을 조명한 ‘쓰이고 남아 있는 유물의 흔적’도 한국의 유물이 가진 생활 미감에 한결 다가갈 수 있는 장이었다.
저장해두면 좋은 이색 박물관 5
박람회 공간을 가득 채운 주인공은 100여 개의 기관이 준비한 371개의 부스다. 나라를 대표하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부터 각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기관들도 자리했다. 무엇보다도 평소에 접하기 힘들었던 이색적인 박물관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얻었다. 독특한 콘셉트와 프로그램 구성으로 눈길을 끌었던 다섯 개의 박물관을 소개한다.
한국대중음악박물관
보아, 조용필 앨범과 커다란 스피커, 한국 대중음악 최초의 기록 연표로 공간을 채운 곳은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이다.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은 경주 보문단지 내에 있는 대한민국 최초의 대중음악 전문 박물관으로 K-POP 100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유충희 관장이 30년 가까이 수집한 7만여 점의 소장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대중음악의 태동기인 대한제국 시대의 음반을 시작으로 아이유, 이효리, 뉴이스트, 세븐틴의 싸인 의상도 있다. 몇 해 전, 방탄소년단의 멤버 RM이 다녀간 후 아미(ARMY)의 BTS 앨범과 굿즈 기증이 늘어나 따로 마련한 ‘방탄소년단 팬클럽 기증관’도 인기다. 신청곡을 세계적인 희귀 스피커로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도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을 애써 찾아야 할 이유 중 하나다.
떡박물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시간 미식의 역할을 해온 음식이 있다면 떡이 아닐까. 떡을 먹기 시작한 역사는 밥보다 오래되었고, 쌀 한 톨이 귀하던 시절에도 끼니를 넘어 의례 음식과 미식의 역할을 겸했다. 박람회 한편에 고소한 떡 냄새가 퍼졌다. 떡에 관한 역사를 알리고 유물을 전시하는 떡 박물관이다. 참가자 신청을 받아 진행했던 떡 만들기 체험 덕에 떡 박물관 부스는 연일 사람으로 붐볐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떡 박물관은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소장인 윤숙자 요리 연구가가 그동안 모아온 소장품 3,000여 점을 전시한 공간이다. 떡 만드는 기구와 옛 상차림 등을 재현한 상설 전시와 여러 주제로 진행되는 특별 전시가 병행된다. 떡 박물관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다. 매달 20일 홈페이지를 통해 체험 예약을 받는다. 꽃산병, 바람떡, 매화떡 등을 만드는 개인 체험 학습은 특히 인기이니 날짜를 미리 저장해두는 것을 추천한다.
국립항공박물관
아이들의 눈이 유독 반짝이는 공간이 있었다. 국내 최초 항공 분야 국립박물관인 국립항공박물관 부스다. 커다란 비행기 모형이 눈에 띄었는데, 자동 이착륙과 고속 비행이 가능한 스마트 무인기 TR-60이었다.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된 스마트 무인기다. 장애인 맞춤형 교구재와 항공기에서 사용하는 청각 장애인용 의사소통카드는 직원의 친절한 안내로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국립항공박물관은 김포공항 지척에 있다. 대한민국과 세계의 항공 역사에서 항공 기술 발전에 따른 생활의 변화와 미래 사회의 모습까지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체험 프로그램도 다채롭다. 보잉 747 여객기 조종석과 인천공항 관제탑을 시뮬레이터로 구성한 조종 관제 체험과 항공사 승무원의 역할을 이해하는 기내 훈련체험은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 VR로 대한민국 공군 특수비행팀의 블랙이글스 부조정석에 동승하는 체험도 반응이 좋다. 외에도 항공 탐구, 드론 등을 교육하는 프로그램도 있으니 관심 있는 이라면 공항 이용 전후로 방문해 봐도 좋겠다.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
포니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박람회 현장에서 반가운 맘을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포니는 1975년도에 현대자동차에서 생산을 시작한 차로,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 모델 자동차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1990년에 단종되었지만, 과거를 배경으로 한 작품 〈택시운전사〉, 〈극비수사〉 등에 등장하며 젊은 세대에게도 눈에 익은 차종이기도 하다.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은 곧 50주년을 맞이하는 ‘포니1’을 주제로 〈응답하라 포니! 1975〉 전시를 준비했다. 실제로 운행 중인 초록색 포니 자동차와 관련 설명서와 사진, 잡지 등을 함께 볼 수 있었다. 포니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과 반가움이 담긴 방명록도 뭉클함을 주는 포인트였다.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에는 포니 외에도 세계 3대 명차인 롤스로이스, 벤틀리, 마이바흐를 비롯해 제임스 딘, 마릴린 먼로 등 할리우드 스타가 사랑한 명차와 전직 대통령들의 의전 차량까지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귀한 차종들이 잔뜩 전시되어 있다. 20여 종의 레이싱 게임을 즐길 수 있는 ‘R 그래프트’도 있다.
국립극장 무대예술지원센터
드라마 〈정년이〉로 국극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요즘, 다양한 국극 포스터로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공간은 단연 인기였다. 국립극장 무대예술지원센터에서 조성한 부스는 다양한 요소로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었다. 국극 배우들이 직접 사용했던 화려한 무대 의상과 소품은 전시만이 아니라 실제로 착용하고 인증샷을 찍을 수 있도록 포토존으로 구성했다. 무대 뒤 분장실처럼 꾸며진 공간에서는 터치스크린을 통해 무대 분장과 무빙 포스터의 주인공이 되는 가상 체험도 해볼 수 있었다.
국립극장 무대예술지원센터는 지난 9월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개관했다. 공연에 사용되는 무대 장치와 의상, 소품 등을 저장하는 보관소이자 동서양 극장과 무대의 역사를 알아보고, 공연까지 관람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전산 시스템과 무인으로 운영하는 공연 물품 수장고는 국립극장·국립극단·국립발레단·국립오페라단 등 국공립예술단체의 공연 용품을 보관하는 공간이자 관람객들에게 개방하여 전시의 의미를 겸해 더욱 흥미롭다. 단, 실제로 활용하는 소품이니 눈으로만 감상해야 한다. 외에도 뮤지컬 〈정년이〉 세트장을 구현한 스튜디오, 공연 의상 및 소품 체험 공간, 다양한 공연을 고화질 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는 레퍼토리 영상관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