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디자인에 흥미를 느끼냐는 물음에 몇 가지 항목만 선택하면 그럴듯하게 ‘취향 분석’, ‘좋아할 만한 아이템’ 같은 답을 내놓는 시대. 혹 나도 모르는 내 취향이 뚝딱 완성돼있지는 않은가? 물론 이 엄청난 편의성에 감탄하며 “세상 좋아졌네” 말하기도 하지만, 정말 내 취향이 맞는지 한 번쯤은 확실히 짚고 싶은걸. 그래서 찾는다. 더 뾰족하고, 더 세심한 취향이 반영된 사물을. 그리고 발견했다. 취향을 탐구하고 싶은 당신에게 꼭 맞는 보물 같은 공간을!
유니크(Unique)라는 말은 독특하고 특별한 것에 짝꿍처럼 붙는다. ‘독특’과 ‘특별’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지 묻는다면, 이러쿵저러쿵 설명하기보단 이 한 마디면 충분하지 않을까. 알피(RP.)를 찾을 것! 얼핏 봐선 정체를 알 수 없는 울퉁불퉁한 모양새의 전구와 엄지손가락 두 개를 붙인 크기의 작은 가방, 부츠인 척하는 라이터 케이스… 어딘가 요상하지만 자꾸만 눈이 가고 손이 가는 사물들이 기다리는 바로 그곳 말이다.
Interview with 알피(RP.)
임수연 대표
필자는 인터뷰 이전, 알피를 처음 방문한 이후로 줄곧 이 공간을 꾸린 이에게 궁금증을 가졌다. 아직은 시린 바람이 불던 날, 알피에서의 인터뷰는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았어요”라는 임수연 대표의 말로 시작됐다. 실제로 공예 작업을 했었고, 네일 아트에도 관심이 있었다는 그는 본인만의 방식으로 풀고 싶은 분야가 꽤 많았다고.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도 손으로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빚어내는 수공예품에 매료돼 을지로 한 공유 작업실의 문을 두드렸다.
공유 작업실에서는 어떤 작업을 했나요?
모빌이 제 첫 작업물이었어요. 그때 만든 모빌이 예상치 못한 관심을 받으면서 판매를 시작하게 됐는데, 막상 혼자 제작부터 홍보, 판매까지 맡아 하려니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과 함께 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국내에서 소량으로 공예품을 생산하고 있는 작가들을 소개하는 일을 시작으로, 시간이 흘러 지금의 알피가 갖춰졌네요.
‘알피(RP.)’의 의미가 궁금했어요. 줄임말 같아서 여러 단어를 대입해보기도 했고요.
사실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에요. 이름에 의미 담는 걸 어려워해서요. ‘R’은 제 다른 이름 ‘라주(Razu)’에서 왔어요. ‘P’는 프로젝트(project)도, 프로덕트(product)도 될 수 있고요. 사실 알피의 공간 구성을 마치고도 한동안 숍 이름을 정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중요하게 생각한 포인트는 있었죠. 발음이 기억하기 쉬워야 하고, 부르기 편해야 한다는 것.
인스타그램 계정명은 ‘RP.zip’이죠. ‘.zip’은 확장자인가요?
맞아요. ‘RP.’로는 인스타그램 계정 생성이 안 되더라고요. 결국 인스타그램은 원하는 것을 공유하는 장이니, 알피만의 무언가를 차곡차곡 쌓아야겠다는 의미로 확장자를 더했죠. 그래서인지 대부분 숍 이름을 ‘RP.zip’으로 알고 계세요. ‘RP.zip’은 알피의 아카이브로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알피에서 소개하는 상품들에는 대표님의 취향이 반영된 걸까요?
제 취향이 많이 묻어나는 것 같아요. 주로 작가(브랜드)가 어떤 색을 가졌는지, 그 작가만 선보일 수 있는 상품인지를 중점적으로 봐요. 누군가 그 작가의 분위기를 흉내 낼 수 있으면 안 되니까요. 도자기를 만들다가 그림을 그리고 또 텍스타일 작업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영역을 오가는 분들이 많은데, 상품의 카테고리가 다르더라도 한 사람이 만들었다는 게 느껴지거든요. 특유의 느낌과 분위기가 있어야 해요. 그리고 얼마나 깡을 가졌는지도요. 만나 뵙고 이야기 나누다 보면 제가 다 벅차오를 만큼 의욕적인 분들이 있거든요.
개성 강한 상품들이 주를 이루다 보니 상업적인 면에서 고민이 많겠어요.
예술성과 상품성을 적절히 가져가려 하지만, 밸런스를 맞추기 어렵죠. 방문수에 비하면 판매수는 많지 않은 편이에요. 찾아주신 만큼 판매가 되었다면 저는 이미 2호점을 오픈했을 거예요. (웃음) 그래도 오셔서 흥미를 느끼고 한참 머무르실 때 힘이 나요. “이게 뭐야?”, “이건 누가 살까?” 같은 반응이 저에겐 꽤 원동력이 된다고 해야 할까요.
서촌에 자리한 점이 의외였어요.
머무는 동네의 분위기에 따라 사람의 에너지가 바뀌기도 하잖아요. 서촌은 확실히 궁이 주는 차분함이 있어서 늘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역과 거리가 있는 편이라 오는 과정에서 기운을 빼앗기니 절로 차분해지기도 하고요.
역사적이고 한적한 동네에서 독특한 사물을 소개하면 그 색다름이 배가될 것 같았죠. 다른 동네에 비해 조그마한 숍들이 많아 혼자서 충분히 운영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기도 했어요. 사실 저는 짬짬이 동네 산책도 하고, 테라스에서 커피도 마시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줄 알았는데, 최근 서촌이 활기를 띠면서 덩달아 분주해졌네요.
숍을 혼자 운영하면서 겪는 어려움도 분명 있겠죠.
저를 의심하는 것. 작은 변화라도 제가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니까요. 오늘 평소보다 방문하시는 분들이 적다면 그 이유를 끊임없이 고민해요. 제가 놓친 부분이나 실수가 있었는지 의심하는 빈도가 잦아져서 힘들었어요. 또, 숍 운영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 ‘소통’이잖아요. 제가 다가가는 일에 익숙지 않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어려움이 있어요.
임 대표는 알피를 준비하던 중 현재 알피가 위치한 자리를 추천 받았다. 공간이 먼저 생긴 셈이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급히 계약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임 대표의 고군분투기가 시작됐다.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목공소를 오가며 필요한 집기들을 제작했을 뿐 아니라 로고까지 직접 디자인했다. 작년 5월 알피를 오픈한 후에는 ‘나 자신 수고했다’ 싶었다고.
하지만 안도감은 오래 가지 않았다.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몰리자 임 대표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오픈만 바라보며 정신없이 혼자 달려온 길. 전문가의 손길이 닿으면 어떤 변화를 맞이할지 고개 드는 욕심에 내부 공사를 결심한 것이다. 공간을 더 넓게 활용하기 위해 오피스를 막고 있던 가벽을 뚫어 없앤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알피는 숍 내부의 거울 앞이 포토존으로도 유명한데요.
저 거울이 없었다면 지금의 알피가 없었을 지도요. 내부에 거울을 둬야 하는데 분위기에 맞는 거울이 없었어요. 어느 날, 편의점 방범거울을 천장이 아닌 벽에 달면 재미있을 것 같아 도전한 거죠. 생각보다 숍에 잘 어울려서 쭉 사용하는 중이에요. 내부 공사 전, 오피스가 벽으로 분리되어 있을 땐 CCTV가 없어서 거울이 진짜 방범 역할을 하기도 했고요.
상품과 함께 제공되는 패키지에 대한 반응도 뜨거워요.
판매하는 상품의 크기, 용도, 재질이 제각각인데 어떻게 패키징할 지가 가장 큰 숙제였어요. 초반에는 구매하시는 분 성함과 상품이 만들어진 날짜를 직접 써드렸는데, 상품 수가 늘어나니 다 기억하고 있기가 힘들더라고요.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골몰하다 자음과 모음을 전부 나열해본 거예요. 체크하는 동안 지루해하실까 봐 걱정이었는데 이젠 숙달돼서 1초 만에 체크할 수 있답니다. 초를 세진 마시고요. (웃음)
알피의 매력 포인트를 꼽는다면.
제 끊임없는 움직임의 결실이 아닐까요? 가만히 있질 못해서 꾸준히 일을 벌이거든요. 상품 촬영을 위해 여러 가지를 구상해요. 인스타그램 게시물도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으로 보일지 고민하고요. 유튜브 등 여러 채널에 알피를 방문하신 분들이 올려주신 영상과 사진을 통해 자연스레 홍보되기도 했죠.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도 기획해요. 밤볼레(Bambolê), 샬롬(SHALOM)은 제가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브랜드였는데 좋은 기회로 함께 작업을 하게 됐어요. 아마 알피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비슷한 철학을 가진 브랜드들이 만나 펼쳐가는 다채로움을 신선하게 봐주시는 것 아닐까 싶어요.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고요.
앞으로도 혼자 작업하며 어려움을 겪는 분들과 동반 성장하고 싶어요. 제 고향이 제주도인데, 올 연말쯤엔 제주도에 2호점을 내고 싶기도 하고요. 알피의 색도 더 단단하게 잡아갈 예정입니다.
알피에 오셔서 상품을 구매하시는 분들은 작가의 시간을 함께 구매하시는 것 아닐까요? 수공예품의 매력 포인트는 다양하지만, 만든 이의 시간과 추억을 담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을 눈여겨 봐주시고, 좋아해 주시기를 바라요.
알피의 POP한 추천 리스트 3
RECYCLE GRIPTOK
RAZU
입고와 동시에 품절되는 인기 상품. 버려지는 유리타일을 재활용한 그립톡으로, 그립톡 표면 위 실제 유리가 만들어내는 텍스쳐가 돋보인다. 모든 유리 조각들은 총 3번의 코팅을 거치고 있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NEW BUBBLE RING
CORAL.ETC
몽글몽글한 버블 형태이지만 튼튼한 내구성을 갖춘 비즈 반지. 기존 상품에서 발견되던 벗겨짐 현상을 보완해 오래도록 착용할 수 있다. 한결 산뜻해진 날씨에 맞는 간편한 옷차림에 ‘꾸안꾸’ 무드 가미할 포인트 액세서리로 추천한다.
SOFA FOR TWO
YIN AND YANG
핸드빌딩으로 제작된 미니 의자 시리즈 중 스트라이프 버전. 자주 착용하는 액세서리나 작은 소품을 의자 위에 앉혀 보자. 의자 내부 공간도 활용할 수 있어 작은 크기에 비해 만족스러운 수납력을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