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무나씨
나와 타인과의 관계와 경계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 때마다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감정을 겪다 보니, 내 마음안에 뚝 떨어진 감정을 바라보고 분석하기보다는, 각각 감정의 기원은 어디인지에 대해 더 관심을 두게 되는 것 같아요. 나와 타인의 물리적인 경계에 대한 관심도 있지만, 심리적인 경계면은 어디일까, (신체가 아닌) 영혼의 차원에서 과연 각각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하는 것들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흑과 백, 명암과 여백을 통한 묘사가 특징이에요.
흑백으로 표현 가능한 모든 것을 담아내고 싶습니다. 영원히 ‘흑과 백’만을 고집하겠다는 얘기는 아니예요. 아직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작품에 전부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등장해요.
똑같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같은 그림을 관람해도 보는 사람마다 그림을 마주한 그날의 자신의 마음을 투영하게 되니까요. 관객에게 그 인물은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연인이기도 하고, 부모님이기도 하며, 자신 이외의 모든 타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자유롭게 다른 마음들을 투영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무나씨’를 상상하고 그렸습니다. 그림 속 인물은 어떤 특정 나이, 성별, 직업, 국적 등을 연상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런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어떤 감정도 먼저드러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표정을 짓고 있지 않습니다.



관계를 주제로 작업하면서 포착하는 감정은 주로 무엇인가요?
하나의 단어로 포착하기 힘든, 경계가 모호한 ‘덩어리’로서의 어떤 것입니다. 먼저 원초적인 두려움, 흥분, 떨림, 욕망과 같은 동물적인 신호들이 감각되고, 나중에 그것이 ‘불안’, ‘절망’, ‘행복’, ‘사랑’, 등 언어적 표현으로 규정되면서 감정의 형태를 띄게 됩니다. 저의 작업은, 모호한 덩어리로서의 정서나 분위기를 구체적인 감정으로 잘게 쪼개어 표현하거나, 이미 분절된 감정들을 다시 모호한 분위기의 정서로 환원시키는 과정입니다.




무나씨가 생각하는, 건강하고 견고한 관계를 위한 ‘적절한 거리감’이란?
개인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절한 거리감이란, 타인으로부터 나를 구분해서 볼 수 있고, 나와 분리된 타인을 그 자체로 볼 수 있는 정도의 거리입니다. 나와 타인이 서로 혼동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온기가 느껴지는 그런 거리입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은 ‘나를 잊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결국 나를 더욱 또렷이 자각하게 되지요. 따라서 작가님에게 있어서 ‘나를 잊고자 한다’는 건 어떤 뜻인지, 또 그 바람은 또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요.
나를 영원히 잊고자 한다. 언제까지나 나를 잊은 채 해탈하여 살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며, 말씀하신 것처럼 타인을 볼수록 그와 구분되는 내가 더 도드라지고 또렷해지는 것도 사실이지요. ‘감정유희’라는 작품의 가장 높은 곳에 떠 있는 빈 공처럼, 순환하는 감정적 폭풍에 몸을 내맡기고 늘 휩쓸리기보다 잠시 멈추거나 잊고 싶을 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입니다. 그림 그리는 행위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이 됩니다. 손에서 멀어진 공은 아주 잠시 공중에 떠 있을 뿐이지만,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시간을 느리게 흘러가도록 할 수도 있고, 어쩌면 아예 멈추게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글 소원
자료 협조 에브리데이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