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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4

조선 왕실의 꽃 모란이 만발하다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안녕 모란.
전시장에 들어서자 형형색색 꽃밭이 발 밑에 펼쳐진다. 관람객 움직임에 따라 바닥에서 모란 꽃이 활짝 피며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어디선가 은은하게 흘러나와 코 끝을 간지럽히는 포근한 모란꽃 향기. 조선시대 왕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꽃 모란을 다각도로 만나는 화제의 전시 <안녕 모란>의 풍경이다.

서울 청운동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안녕, 모란>은 모란꽃을 매개로 조선왕실 문화를 살펴보는 특별전시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전 예약을 통해 입장 인원을 시간당 100명으로 제한하는데, 거의 모든 시간 예약이 꽉 찰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모란은 호화로운 꽃송이와 묵직한 향 덕분에 ‘꽃 중의 왕’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실과 민간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식물 자체는 물론 무늬로도 최고의 꽃이었다. 삼국시대에는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비싸서 왕실과 부잣집은 되어야 모종을 심을 수 있었단다. 정원에는 모란꽃을 심고, 실내에는 모란이 그려진 그림을 걸며 모란꽃을 즐겼다.

 

모란도 병풍

 

조선 왕실에서 모란 꽃 사랑은 절정을 이뤘다. 용이나 봉황, 거북 못지 않은 ‘원픽’ 디자인이었다. 풍요와 영화로움이 깃들기를 기원하며 궁궐이나 생활용품 장식에서 모란을 즐겨 사용했다. 모란에 담긴 의미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부귀영화에 머물지 않는다. 조선 왕실에서는 왕실 인물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무늬로 모란을 썼다. 고인의 시신과 혼이 자리하는 곳에는 모란도 병풍을 두르며 조상신이 된 고인이 나라에 영원한 안녕과 번영을 가져와줄 것을 기원했다.

 

이번 전시에는 모란도 병풍을 비롯하여 모란꽃을 장식으로 사용한 궁궐의 그릇, 가구, 의복 등 각종 생활용품과 의례용품 등 유물 120여 점이 한 자리에 모였다. 모란이 수놓인 창덕궁 왕실혼례복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허련의 모란 그림을 모은 화첩, 《소치묵묘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창에 모란을 그린 가마
복온 공주 혼례용 방석
궁중 여성 혼례복
복온 공주 혼례복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가꾸고 즐기다’에서는 영상과 조경물로 연출된 정원을 통해 모란이라는 식물을 가꾸고 감상하는 전통을 만난다. 의자에 앉아 모란꽃을 직접 살펴보고 향기를 맡으며, 빗소리와 새의 지저귐을 들을 수 있는 이곳은 관람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전시장을 감도는 향은 올봄 창덕궁 낙선재 화계(계단식 화단)에 핀 모란에서 포집해 제작한 향. 전면 벽에 설치된 스크린에서는 18~19세기의 대표적 모란 그림인 허련, 남계우 등의 작품이 재생된다.

2부 “무늬로 피어나다”에서는
조선왕실 생활공간을 장식한 무늬로서 모란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왕실에서는 부귀영화의 상징인 모란을 각종 생활용품에 무늬로 사용하면서, 풍요와 영화가 가득하기를 기원했다. 나전 가구, 화각함, 청화 백자, 자수물품 등 다양한 유물을 통해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모란 무늬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때는 혼례복이나 가마와 같은 왕실 혼례다. 전시장에는 총 2벌의 혼례복이 걸려 있다. 한 벌은 복온공주(순조의 둘째딸)가 혼례 때 입은 것인데, 남아 있는 활옷 중 유일하게 제작 시기와 착용자가 명확한 유일하다. 나머지 한 벌은 창덕궁에서 전해 내려오는 활옷. 재미있는 것은 보존처리 중에 옷 속에서 발견한 종이심이다. 겉감과 안감 사이에 넣어 옷의 형태를 유지하도록 한 이 종이심은 1880년 과거시험 답안지를 재활용한 종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창덕궁 활옷은 이번 전시에서 일반에 최초로 공개된다. 특히 혼례용품이 놓인 구획에는 삼베를 천장에서부터 길게 늘어뜨린 후 그 위에 혼례복의 다양한 꽃무늬를 활용한 미디어 아트를 재생하는 흥미로운 연출이 돋보인다.

 

 

3부 “왕실의 안녕과 번영을 빌다”에서는 왕실의 흉례와 조상을 모시는 의례에 사용된 모란을 조명한다. 중심 유물은 단연 모란도 병풍. 흉례의 전 과정에 모란도 병풍을 사용한 것은 왕실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다. 전시장 3면을 모두 모란도 병풍으로 두르고, 관람객이 병풍을 최대한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유물과 유리면 사이 거리를 좁혔다.

 

 

<안녕, 모란>전 제목에는 깊은 뜻이 있다. 꽃에게 건네는 정다운 인사말이자 조선 왕실에서 모란을 사랑한 마음처럼 전례 없는 전염병 속에서 국민 모두가 탈 없이 평안한 안녕(安寧)을 되찾길 바라는 기원이다. 조선왕실에서 모란이라는 식물과 무늬를 어떻게 사용하고 즐겼는지 확인할 수 있는 <안녕, 모란>전은 7월 7일부터 10월 31일까지 계속된다. 현장 입장도 가능하나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 사전 예약을 하는 편이 좋다. 입장료 무료.

 

 

유제이

자료 협조 국립고궁박물관

장소
국립고궁박물관 (서울시 종로구 효자로12)
일자
2021.07.07 - 202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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