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시간이 흘러도 그 가치를 잃지 않는 디자인을 최고로 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어떤 이들은 시대의 유행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 디자인을 선호한다. 지난 2월 28일, 제 29회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동시 행사로 진행된 ‘리빙 트렌드 세미나’에서 그 질문에 대해 심도 있게 파고든 연사들의 강연을 직접 들었다.
스페이스10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케이브 포우르(Kaave Pour)
“집에서 건강 검진을?”
스페이스10은 이케아의 비밀 혁신 연구소, 자율주행차, 생성형 인공지능 등의 앞서 나간 아이디어와 프로젝트를 통해 120개 이상의 디자인상을 수상 및 후보로 지명된 바 있는 디자인 연구소다. 스페이스10의 공동 설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케이브 포우르는 세미나의 포문을 열며, 디자인을 통해 사회의 불평등과 기후변화 등을 해결하는 그 첫걸음을 집에서부터 시작하자고 제시했다.
그가 언급한 다섯 가지 집의 미래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집에서 태양열이나 운동 에너지를 활용해 전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해 ‘에너지 자급자족’이 가능해지며, 주거 공간 중 주방에 해당하는 공간은 사라진다. 대신, 공유 주방의 개념이 보편화되어 집에서 하던 활동을 제3의 공간에서 대신한다. 집에 도입된 AI 시스템을 통해 병원에서 하던 건강검진과 같은 의료 기술을 집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스페이스10의 연구에 따르면, 2035년까지 주거 공간에 AI 시스템을 도입해 응급 상황으로 인한 병원 방문이 30% 줄어들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인터넷에서 설계도를 다운로드해 작은 집을 만들거나 공간 맞춤형 가구 제작이 가능해진다.
스트링 퍼니처 총괄 마케팅 디렉터
보 헬버그(Bo Hellberg)
“75년이 흘러도 세련된 디자인의 비밀”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모듈형 선반 제조업체, 스트링 퍼니처(String Furniture)는 건축가이자 발명가인 니세 스트리닝(Nisse Strinning)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가 1949년에 스트링 시스템을 최초로 설계한 이래로 같은 치수를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1955년에 금메달을 수상한 이 선반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 접이식으로 개발되기도 하고, 다양한 색상으로 출시되기도 했지만 이 제품만의 고유한 독창성은 유지한 채로 진화했다.
브랜드의 마케팅을 총괄하는 보 헬버그에 따르면, 스트링 퍼니처는 장인정신과 오랜 전통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이러한 가치관은 스웨덴 내에서 3~4세대에 걸쳐 가구를 제작해 온 생산자들의 자부심과 업무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 이들의 손길을 거친 제품은 예외 없이 고품질임이 보장된다. 이것이 바로 스트링 퍼니처가 해외로 생산 기지를 옮기지 않고 스웨덴 내에서 계속해서 제조 활동을 진행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이스코스 디자인 디자이너
알렉세이 이스코스(Aleksej Iskos)
“4년 만에 탄생한 의자”
이스코스 디자인의 디자이너 알렉세이 이스코스는 덴마크의 리빙 브랜드 무토(MUUTO)를 위해 디자인한 ‘화이버 체어’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했다. 화이버 체어는 무토의 스테디셀러이자 100%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로 제작된 의자다. 그는 오래 사랑받는 디자인을 만들고 싶다면, 시간을 많이 들여 디자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이버 체어를 위해 컨셉부터 실험, 제조까지의 과정이 총 4년 소요되었다고 말한 그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는 언제나 주변을 살피고 관찰하라는 명언을 남겼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출신인 그는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 시계 브랜드 ‘ZAVOD’와의 손목시계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프로젝트 진행 중 발발한 전쟁으로 인해 모두 각각 흩어졌지만, 구성원들의 강한 의지로 완성될 수 있었던 이 손목시계의 디자인에는 인생을 매 순간 감사히 여기라는 뜻이 담겼다고 전했다. 더불어, 그는 인생은 변화무쌍하니 사람 혹은 자연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다소(多少) 디자이너
후정광(侯正光)
“살리는 디자인”
후정광이 창립한 중국의 가구 브랜드 ‘다소’는 15년 동안의 디자인 연구와 실천을 통해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품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는 사용되지 않는 고무나무를 활용하여 만든 ‘Dancer’ 의자, 재활용된 폐세라믹으로 제작된 ‘Flowing Cups Along the Winding Stream’ 테이블, 명나라 시대 의자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Birthmark’ 의자 등 다양한 제품들을 선보였다.
이러한 제품들은 지속 가능한 소재의 사용뿐만 아니라 전통과 현대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후정광의 디자인 철학을 반영한다. 그의 작업은 현대 사회에서도 과거의 가치와 우수성을 재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새로움이 넘치는 시대 속에서도 전통적인 요소들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콰글리오 시모넬리 디자이너
안드레아 콰글리오 & 마누엘라 시모넬리
(Andrea Quaglio & Manuela Simonelli)
“보이는 것 너머의 가능성”
브랜드 렉슨(LEXON)의 미나(MINA) 조명으로 국내에서도 뜨거운 사랑을 받는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스튜디오 콰글리오 시모넬리는 ‘표면의 깊이’라는 주제로 세미나의 마지막 순서를 장식했다. 그들의 디자인이 완성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게 되었는지 그리고 좋은 디자인의 조건을 설명했다. 반복적으로 강조한 것은 수많은 레퍼런스를 참고하고, 충분한 대화를 나누라는 것. 지금까지 그들이 디자인한 제품들을 예시로 보여주며, 좋은 디자인의 조건을 총 네 가지로 제시했다.
장미꽃을 보면 왜 기분이 좋은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만인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테다. 이처럼, 사용자와 정서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제품이 좋은 디자인이라는 것. 크기 및 소재의 균형 또한 중요하다. 물건을 분해해서 새로운 균형을 잘 창조해 낸다면, 역동적인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 다양한 문화권의 건축 양식이나 공예품에서 영감을 얻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들은 이 모든 디자인은 결국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제품이어야만 하며, 삶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전하며 참석자들의 박수갈채 속에서 강연을 마무리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연사들이 최근의 리빙 디자인 동향과 우수한 디자인 기준을 논의한 이번 국제 세미나는, 업계 전문가들과 학생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적 영감을 제공했다. 국적을 불문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디자인, 지속가능한 디자인에 힘을 쏟는 그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글 성채은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디자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