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9

마음이 평온해지는 바느질멍

최희주 전시, 바느질 생활.
손바느질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 최희주 작가는 이를 불멍, 물멍에 빗대어 ‘바느질멍’이라고 말했다. 손을 계속해서 움직이면서 한 땀 한 땀 실을 잇다 보면 마음이 정리되고 평온함이 찾아든다는 것. 작가가 그간의 바느질멍으로 완성한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동반사물가게 늬은에서 열리고 있는 <최희주의 바느질 생활>전시다.

 

최희주 작가가 바느질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 데에는 바느질과의 거듭된 인연에 있다. 출판사 편집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일본인과 결혼해 기모노 장인인 시어머니가 생겼다. 도쿄문화복장학원 출신으로, 연세가 들어 굽어진 자신의 등 모양에 맞춰 스스로의 옷을 지어 입으실 정도로 바느질을 가까이하는 분을 곁에 두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 더욱이 작가 본인의 아버지는 양복을 짓고, 어머니 또한 뛰어난 바느질 솜씨를 자랑하던 분들이니 태생부터 바느질과 가까웠던 삶이다.

 

“일본에선 아이를 처음 유치원에 보낼 때 도시락 가방이나 준비물을 담는 작은 파우치 같은 물건을 엄마가 직접 만들어 보내요. 엄마가 직접 만든 것을 곁에 두면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이들이 낯선 곳에서도 빨리 안정을 찾는다고 생각해서죠. 바느질에 제아무리 서툴더라도 한두 개 정도는 꼭 손수 만들어 보내는 그들의 문화 속에서 바느질과 더 친해진 것도 있지요.” -최희주 작가

 

 

작품의 소재는 불규칙한 결과 빳빳한 질감, 한지를 바른 창호처럼 은은하게 비치는 느낌이 매력적인 모시, 삼베, 무명이 주를 이룬다. 이 같은 한국 전통 천연섬유로 만든 작품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세월을 머금고 숙성된다. 흰색 모시 작품은 빛에 바래 갈색이 되기도 하고, 콩풀을 먹인 갈색 삼베 작품은 빨면 빨수록 고운 흰색이 되는 것. 모시나 삼베, 무명 같은 천연 전통섬유가 가진 결과 올을 따라 재단하여 틀을 잡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대로” 수를 놓은 작가의 작품들은 단정하고 정갈하다.

작품 또한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오브제나 생활을 위한 일상의 패브릭 소품이 많다. 이리저리 접다가 우연히 만들어낸 콩깍지 모양에 영감을 얻은 ‘콩 모빌’ 시리즈는 작은 천 조각도 소홀히 하지 않는 작가의 평소 습관 덕에 태어난 작업이다. 산책길에서 만난 작은 대나무숲 바람 소리를 옮긴 ‘풍경’은 천으로 만든 대나무 잎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위해 실크 실로 잎을 연결해 완성하였다.

 
최희주 작가가 삼베로 지은 다양한 사이즈의 함

 

이번 전시에서 주를 이루는 작품은 함이다. 이부자리 머리맡에 두고 반지 같은 작은 장신구들을 담을 수 있는 손바닥만 한 것부터 잡다한 물건들을 수납할 수 있는 제법 넉넉한 크기까지 다양한 사이즈의 함들이 전시되고 있다. 천으로 만들어져 연약한 듯싶지만 든든히 속을 댄 삼베에 단단히 바느질해 꼿꼿하게 각이 서 있다.

소파 옆, 식탁 위같이 눈길이 닿는 곳에 두었다가 마음이 동할 때마다 끌어다 바느질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만든 반짇고리 바구니.

 

바느질 도구를 담는 용도의 천 바구니도 눈길을 끈다. 여기엔 바느질을 쉽게 여기고 자주 가까이 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 “요즘 사용하는 반짇고리라는 것이 실용만 따져 플라스틱으로 만들었거나 화려하고 다소 부담스럽기까지 한 크기의 팔각함이 대다수잖아요. 서랍이나 옷장 안 깊숙이 두고 필요할 때만 꺼내 쓰게 되는 모양새죠. 눈길 닿는 어디에든 꺼내두어도 예쁜 바느질함이 있었으면 했어요. 마음이 동할 때면 언제든 끌어다가 바느질을 할 수 있도록 말이죠.”

 

커다란 눈으로 액운을 막는 북어를 대신할 최희주 작가의 ‘액막이 모시 명태'

 

그녀의 바느질 작업은 일상에도 닿아 있어서, 작은 선물조차 그냥 하는 법이 없다. 정성과 마음을 담아 바느질한 물건을 선물한다. 귀엽고 앙증맞은 ‘액막이 모시 명태’가 탄생한 배경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이웃해 지내던 갤러리들이 이사를 했던 시기였어요. 개업식에 매다는 북어의 큰 눈은 액운을 막아준다죠. 그렇지만 저는 북어를 볼 때마다 무섭고 그다지 위생적이지 않은 것 같아서 마음에 걸렸거든요. 그래서 제 식대로 바느질해 만들어 선물해야겠다 생각했지요.” 지인들의 요청으로 한두 점씩 더 만들어보던 ‘액막이 모시 명태’는 지난해 말 ‘한 점 갤러리 <클립>’을 뜨겁게 달궜다. 연이은 호응으로 일주일만 판매하기로 한 것을 무려 6개월이나 판매를 연장해야 했을 정도이다.

결이 고운 모시를 조각 내지 않고 그대로 만든 여름 모시 가방. 작은 천 조각 하나까지 소중히 여기는 작가의 마음 씀이 묻어난다.

 

한남동에 위치한 작가의 공방 <희원>은 손바느질을 익히는 배움터다. 코로나19로 인해 지금은 잠시 수업이 중단된 상태지만, 작가는 바느질이란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앞으로도 시간과 정성을 들일 계획이다. 자신에게 바느질이 즐거운 몰입이듯, 꼼지락거리며 만든 물건을 쓰는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은 마음이다.

 

 

주리아

자료 협조 늬은

장소
늬은 (서울시 강남구 양재천로185 2F)
일자
2021.07.07 - 2021.07.25

콘텐츠가 유용하셨나요?

0.0

Discover More
마음이 평온해지는 바느질멍

SHARE

공유 창 닫기
주소 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