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10월 11일부터 3일간 독일 베츨라(Wetzlar)에 있는 라이카 본사인 라이츠 파크(Leitz Park)와 기타 주요 라이카 스테이션에서 여러 행사가 진행되며 사진 관련인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12일 저녁에 진행된 시상식 행사였다. 이 행사에서 라이카 오스카 바르낙 어워드(Leica Oskar Barnack Award(LOBA))와 더불어 라이카 명예의 전당(Leica Hall of Fame Award) 및 올해의 라이카 사진(Leica Picture of the Year) 부문의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또한 시상식에서는 영국의 시인이자 작가인 후세인 마나워(Hussain Manawer)가 낭송식을 하며 행사를 빛냈다. 13일에는 LOBA 수상자와 사진 전문가들이 모여 현재 포토저널리즘의 급변하는 상황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진행되었다.
올해로 43회가 되는 LOBA는 35mm 사진의 선도적인 발명가이자 선구자인 오스카 바르낙(Oskar Barnack)(1879-1936)을 기리며 만들어진 상이다. 사진가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1979년부터 상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으며, 1980년부터 시상식을 시작했다. 매년 한 명의 사진가에게만 상을 수여했던 이 시상식은 2009년부터 대상과 신인상을 나눠 시상하기 시작했다.
올해의 대상은 방글라데시 출신 사진작가 이스마일 페르두스(Ismail Ferdous)에게, 신인상은 중국 출신 사진작가 지이 레(Ziyi Le)에게 돌아갔다. 두 수상자의 작품과 더불어 최종 후보에 올랐던 10명의 사진들은 라이츠 파크 내에 있는 에른스트 라이츠 박물관(Ernst Leitz Museum)에서 내년 1월까지 전시되며 사진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시상식의 명성을 높일 예정이다.
이스마일 페르두스는 현재 미국에서 활동 중이며, ‘바다 해변(Sea Beach)‘시리즈로 심사위원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시리즈는 방글라데시 최남단에 있는 콕스 바자르(Cox’s Bazar) 해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20km의 길이로 세계에서 가장 긴 천연 해변으로 알려진 이곳은 매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휴양을 위해 찾는 곳으로, 작가에게 있어 소중한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가족들과 함께 이곳을 자주 찾았던 작가는 뉴욕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하면서도 여전히 이곳을 찾으며 작업을 진행했다. 바다 해변 시리즈는 겨울 시즌, 정오에만 사진을 찍는다는 콘셉트에 따라 4년간 진행되었으며, 작가는 추가로 인공 광원을 추가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커플, 어린이, 대가족, 조개를 찾는 사람들, 노점상, 어부, 인명 구조원, 심지어 소까지 해변에 모인 모습을 담은 사진에서는 방글라데시의 다채로운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와 더불어 다른 나라의 해변에서는 자연스레 볼 수 있는, 옷을 벗고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옷을 벗고 일광욕을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일이다. 이들에게 있어 해변을 즐기는 일반적인 방법은 가장 좋은 옷을 입고 해변을 따라 조용히 걷는 것이라고 한다. 서양 문화가 들어오면서 제트 스키, 패러세일링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기는 경우는 생겼지만 여전히 이들의 전통적인 문화는 유지되고 있다. 밝은 톤으로 구성된 해변의 풍경은 이국적인 감성과 더불어 동시에 작가의 추억의 장소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지이 레는 개인적으로 느끼는 공허함과 자기 회의를 반영한 인물 사진 시리즈 ‘뉴 커머(New Comer)‘로 수상의 영광을 얻었다. ‘새로 온 사람’ 또는 ‘풋내기’라는 뜻을 가진 단어를 반영한 시리즈에서는 사회에서 본인의 자리를 찾으려 애쓰는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공허함, 소외감, 회의감이 담겨있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프로 작가 생활을 위해 2020년부터 혼자 살았기에 가족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꼈으며 늘 외딴 곳에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웨이보를 통해 자신이 느끼는 이러한 공허함과 소외감을 토로했고, 이에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응하며 시리즈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창밖을 내다보는 생각에 잠긴 청년, 서로를 지지하는 듯 포옹하는 젊은 커플, 멍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 등 작가의 사진에 담긴 사람들은 방향성을 잃은 채 마음 속에 무거운 무언가를 짊어진 듯한 모습이다. 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젊은 시절 느끼는 방황도 있겠지만 팬데믹의 영향도 컸다. 팬데믹으로 인해 집에 갇혀 고립된 이들은 직업을 얻는 것과 잃는 것에서 모두 두려움을 느꼈다.
사진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미래에 대한 질문, 정체성에 대한 탐색, 실존적인 두려움의 감정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작가는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감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라며 작업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라이카는 2021년부터 라이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뛰어난 라이카 사진가들에게 라이카 올해의 사진을 헌정해 왔다. 그리고 현재까지 12명의 유명한 사진가들이 평생의 작업에 보답 받듯 이 상을 수상했다. 올해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이는 매그넘* 회원인 엘리엇 어윗(Elliott Erwitt)이었으며, 올해의 사진은 그가 2000년에 촬영한 흑백 사진에게 돌아갔다.
* 매그넘(Magnum) 정식 명칭은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1947년 설립된 국제 자유 보도사진 작가 그룹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문으로 하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대표하는 엘리트 그룹으로 이름을 알렸다. 로버트 카파(Robert Capa),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데이비드 시모어(David Seymour), 조지 로저(George Rodger) 등 현재까지도 큰 사랑을 받는 사진 작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불도그를 무릎에 앉혀 놓은 사람의 모습이 유머를 선사하는 이 사진에서 사진가가 평생 동안 추구한 작품 철학을 느낄 수 있다. 수상의 영광을 얻은 이 사진은 전 세계 라이카 갤러리에서 80점 한정으로 전시된다. 또한 어윗이 명예의 전당을 위해 선정한 50점의 사진은 베츨라의 라이카 갤러리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전 세계 라이카 갤러리의 아트 디렉터이자 관장인 카린 렌-카우프만(Karin Rehn-Kaufmann)은 “엘리엇 어윗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진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됩니다. 현대사에서 주목받는 유명 인물뿐만 아니라 기억에 남을 순간을 흑백 사진으로 기록한 그의 작품 세계는 현대 사진의 걸작으로 꼽힙니다. 작가의 사진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유머는 엘리엇 어윗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엘리엇 어윗은 유대계 러시아인 부모 밑에서 1928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했다. 1939년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10대 시절부터 사진에 관심을 가졌고, 로스앤젤레스, 뉴욕에서 사진 및 영화에 대해 배웠다. 1951년 군에 징집된 후에는 독일과 프랑스의 육군 신호대 부대에서 복무하면서 다양한 사진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프리랜서 사진가로 일하던 어윗은 설립자 로버트 카파의 초청으로 1953년 매그넘 멤버가 된다. 마를린 먼로, 재키 케네디, 체 게바라 등과 같은 유명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것으로 유명해졌다. 또한 그는 닉슨의 소련 방문, 존 F. 케네디의 장례식 등 사회 정치적인 사진도 작업했다. 1970년대부터는 다큐멘터리와 영화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어윗은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순간들을 그만의 해학적인 감성을 담아 포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언제나 동물, 어린이, 남녀의 로맨틱한 순간 등을 아름답게 담았다. 작가가 꾸준히 모델로 삼았던 ‘개’의 모습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재치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렇게 그의 사진은 언제나 아이러니하면서도 유쾌하며, 따스한 분위기가 담겨있다.
그래서 어윗의 사진은 어려운 예술 사조나 철학 등을 공부하지 않아도 보는 즉시 이해하고 웃을 수 있다. 다른 사진 작가들과 차별화되는 그만의 매력적인 장점이다. 그래서 그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진작가가 되지 않았나 싶다.
뉴욕 타임스의 사진비평가 비키 골드버그(Vicki Goldberg)는 그런 그를 두고 ‘세계가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지는 순간을 찍는 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 평가처럼, 모든 매체가 참혹한 사진들을 내거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언제나 세상의 빈틈을 찾아 누구나 유쾌하게 느낄 수 있는 상황을 사진으로 남겼다. 90세가 넘었지만 여전히 사진집을 내고 전시회를 열며 세상의 따스함을 전달하려는 작가의 열정은 그의 삶이 이어지는 날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