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600명 이상의 건축가들과 파트너십을 맺은 국제적인 팀인 H&dM은 유럽, 미주, 아시아 전역에서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바젤의 본사를 비롯하여 베를린, 뮌헨, 파리, 런던, 홍콩, 뉴욕,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스튜디오와 코펜하겐, 예루살렘, 항저우에 있는 현장 사무소와 함께 협력해오고 있다. H&dM은 2000년 폐건물이었던 화력발전소를 테이트 모던으로 탈바꿈시킨 프로젝트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공공 문화 시설 건축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이들은 새로운 프로젝트마다 건축의 잠재력을 상상하고 건물의 맥락과 목적에 대해 지속적인 질문을 던진다.
H&dM은 다른 건축가들과 달리 시그니처 스타일은 없지만 세밀한 연구와 분석을 통해 누구도 예상하기 힘든 독자적인 디자인을 개발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H&dM이 건축을 표현하는 창의적인 방식과 이를 뒷받침하는 사고 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 건축 자체를 전시할 수 없기 때문에 H&dM은 ‘대체물’을 찾았는데, 이는 사진, 필름, 모델, 재료 샘플, 목업, 도면, 3D 기술 등 건축 작업에 사용되는 다양한 도구와 기법을 소개하는 것이다. 전시는 현재 진행 중이거나 최근에 완성된 주요 프로젝트인 런던 테이트 모던(2000/2016), 런던 라반 댄스 센터(2003), 베이징 국립 경기장(2008), 함부르크 엘브필하모니(2016), 리햅 바젤(2002/2020), 홍콩 M+(2021), 런던 왕립 예술대학교(2022), 취리히 대학교(2024 완공 예정) 등 박물관, 병원, 경기장, 민간 및 공공 건물 등을 포함한다.
전시는 건축을 만들고 경험하는 아이디어와 과정을 함께 탐구하는 세 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공간은 바젤부터 런던까지 이르는 개방형 수납 및 연구 공간인 H&dM의 캐비닛의 일부를 가져온 것이다. 수년에 걸쳐 H&dM은 연구, 디자인 및 제작의 물리적, 디지털적 흔적을 세심하게 수집해 왔다. 이들은 건축에 대해 생각하고 제작하는 과정, 즉 끊임없는 대화를 다양한 형태로 구현하고 여러 가지 유물을 흔적으로 아카이빙 한다. 각 프로젝트는 시작과 동시에 기능적 정체성과 연대기적 순서를 제공하기 위해 번호가 부여되며, 이 유물들은 바젤에 위치한 작업 아카이브이자 실험실인 캐비닛에 보관되어 미술품 및 사진 컬렉션과 함께 개방형 스토리지를 제공한다. 여기에는 완공 및 미완공 초기 프로젝트부터 현재 진행 중이거나 건설 중인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자료가 전시된다.
H&dM에서 개발한 것과 동일한 모듈식 목재 선반에는 다양한 모형, 재료, 판화, 사진, 필름 클립, AR 체험 등 400여 개의 오브제가 전시되어 있어 보다 구체적인 프로젝트의 범위를 나타낸다. 또한 H&dM은 증강 현실(AR)을 통해 실제 갤러리 전시물과 상호 보완적인 가상 모델을 재미있게 결합한 스마트폰 앱을 개발했는데, 공간 지각 실험과 실제 상황에서 인체와 건축의 관계에 대한 탐구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관람객은 이 AR을 통해 디지털 3D 모델과 애니메이션을 통해 전시장에서 생생하게 구현된 프로젝트를 더욱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AR 체험은 전시회의 일부로, 전시된 프로젝트에 대한 관람객의 경험을 향상시키고 추가적인 가상 전시물과 함께하는 12가지 체험이 제공된다. 각 오브제에는 AR을 활성화하는 아이콘과 이미지 트리거가 근처에 있다. 앱은 앱 스토어에서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으며, 현장의 QR 코드를 스캔하면 왕립예술원 웹사이트의 추가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캐비닛 진열장 옆에는 건축에 대한 인식과 예술가와의 오랜 협업에 대한 H&dM의 관심을 보여주는 9개의 대형 사진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사진작가 토마스 루프(Thomas Ruff)의 작품 6개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의 작품 3개가 그것이다. 아티스트와의 협업은 항상 H&dM의 예술 작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작업은 1991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를 위한 토마스 루프의 사진 작업 중 일부를 전시한 것으로 건축과 사진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돕는다.
두 번째 전시실은 영화 공간이다. H&dM은 초기부터 영화감독 및 영화 제작자들과 협력하여 사람들이 건물 주변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움직이는지 탐구해왔다. H&dM 에게 영화는 디자인을 위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갤러리로 가져올 수 없는 건축물을 상징한다. 중앙의 대형 스크린에는 바젤에 위치한 H&dM의 신경재활 및 하반신 마비 클리닉인 리햅 클리닉(REHAB Clinic)의 일상을 담은 영화감독 베카 & 르모인(Bêka & Lemoine)의 신작을 통해 건축과 치유 사이의 관계를 조명한다. 이와 동시에 스크린 반대편에는 H&dM 프로젝트에 입주한 사람들이 어떻게 건물을 점유하고 사용하는지에 대한 일상을 담은 영상이 공개된다.
마지막 전시실은 치유 건축을 위한 공간으로, 2024년 완공을 앞두고 있는 스위스 취리히 어린이 대학병원의 설계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이 프로젝트는 2012년 선구적인 병원 건축을 갖춘 새로운 시설을 필요로 하는 국제 공모전에서 우승한 작품으로,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건축가들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아이디어를 물리적 현실로 전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H&dM에게 있어서 병원은 건축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최고 수준의 공공 접근성과 가장 사적이고 개인적인 순간이 만난다는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건물 유형이다. 이미 이들은 2002년 리햅 바젤에서부터 전인적 치유에 중점을 둔 의료 기관을 만들어 왔다. 단순한 의료 시설이 아닌 환자, 방문객, 직원을 위한 편안함과 보살핌의 공간으로 작용한다. 햇빛, 신선한 공기, 나무와 같은 자연 요소를 사용하여 차분하고 선명하며 따뜻하고 인간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이 공간에는 병원 병실의 한 부분을 1:1로 축소한 인테리어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관람객들은 AR을 통해 병실을 실물 크기로 둘러볼 수 있는데, 병실 디자인에서 H&dM이 지향하는 휴머니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큐레이터 Vicky Richardson(영국 왕립예술원 건축학장), Drue Heinz(영국왕립예술원 큐레이터)
그래픽 디자인 Daly & Lyon
오디오 비주얼 KSO Audiovisual Ltd
조명 Record Lighting
설치 The White Wall Company, Unusual Rigging
AR 개발 컨설팅 Bandara VR GmbH
그래픽 프로덕션 Omni Colour
글 김정아 객원 필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Royal Academy of Arts, Herzog & de Meur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