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아트카로 선정된 BMW의 M 하이브리드 V8은 카본 소재의 차체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또한 키드니 그릴에 보랏빛 라이트가 더해져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마치 게임 속 경주차처럼 보이는 모습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아트카의 주인공이 된 M 하이브리드 V8은 지난해 BMW가 내구 레이스의 최상위 클래스인 LMDh(Le Mans Daytona hybrid)로 복귀할 것을 발표하면서 개발된 차량이다. 2024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맞춰 선보이게 될 스무 번째 아트카는 르망 레이스 이외에 북미 웨더텍 스포츠카 챔피온십에도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BMW는 모터스포츠의 새로운 역사를 쓸 기회를 노리고 있다.
* 르망 24시간 레이스(Le Mans 24-hours Race) 1923년 시작된 르망 서킷에서 열리는 스포츠카 레이스. 말 그대로 24시간 내내 연료 보충, 타이어 교환, 드라이버 교체를 진행하며 달리며, 자동차의 고속 성능과 내구력 테스트에 중점을 둔 경주이다. 덕분에 세계 최고의 자동차 경주대회로 인정받고 있다.
최고 성능의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회사의 확고한 다짐을 드러내는 차를 자신만의 감각으로 탈바꿈시킬 이는 바로 ‘줄리 머레투(Julie Mehretu)‘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태어난 작가는 현재 뉴욕에 거주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미국 현대 미술을 이끄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회화를 중심으로 작업하는 작가의 작품은 대규모의 추상적인 풍경이 다층적으로 겹쳐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작가는 캔버스에 다양한 도시 건물의 기술 도면 요소를 스케치한 후 이를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하고, 여기에 연필이나 펜 등으로 반복적인 이미지를 더하며 층을 쌓아 올리는 작업을 통해 작품을 완성한다. 이를 통해 전 세계적 규모의 사회적 상호 작용에 대한 복잡하고 추상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동시에 도시의 사회정치적 변화의 누적된 영향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의 독특한 감성이 녹아든 작업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덕분에 작가는 2020년 타임지가 선정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포함되며 그 명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뉴욕 타임스는 ‘이미 규범 내에 있는 동시대 흑인 여성 화가의 드문 예’라고 그를 소개하며, 작가가 예술계를 비롯하여 전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BMW는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대미술 작가에게 ‘완전한 창작의 자유’를 부여할 것이라 밝혔다. 이를 통해 뛰어난 성능을 가진 자동차가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 것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머레투는 “저는 평생 동안 자동차를 장난감, 오브제, 가능성 등으로 사랑해 왔습니다.”라며 “무엇보다도 차세대 BMW 아트카 작업을 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BMW AG의 인사 및 부동산 이사회 멤버인 일카 호츠마이어(Ilka Horstmeier)는 “BMW 아트카 컬렉션은 50년 넘게 이어져 온 세계적인 문화적 약속 중에서 핵심적인 요소였습니다.”라며 “기술과 예술, 디자인과 모터스포츠의 결합은 시대를 초월하는 매력을 불러옵니다.”라고 협업을 설명했다.
BMW는 예술가와의 협업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고향에 기반한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9개월에 걸쳐 아프리카 8개 도시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며 지역 예술가들의 교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워크숍의 결과물은 2025년 케이프타운 자이츠 아프리카 현대미술관에서 스무 번째 BMW 아트카와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예술가들과 협업을 지금까지 20번이나 해왔다는 점을 통해, BMW가 얼마나 예술에 진심인지를 알 수 있다. 이들은 아스팔트 위를 달리기만 했던 경주용 차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탄생시키며 전혀 접점이 없을 것만 같은 분야들의 조화를 꾀했다. 수십 년 동안 진행된 이 시리즈는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며 사람들에게 창의력을 불러일으켰다.
이 놀라운 협업의 역사는 1975년부터 시작되었다. 첫 협업을 진행한 이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선구자이자 모빌의 창시자인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였다. 그는 BMW 3.0 CSL 경주용 차에 화려한 색감을 입혔고, 이 차를 시작으로 사람들은 예술과 자동차의 만남이 꽤나 흥미진진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재밌는 사실은 아트카 제작을 BMW가 먼저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출전할 프랑스 출신 드라이버 에르베 풀랭(Hervé Poulain)이 자신이 운전할 93번 3.0 CSL의 도색을 칼더에게 의뢰하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이는 칼더와 풀랭이 친구 사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풀랭은 2년 뒤 1977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다시 참여했고, 이번에는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 로이 릭턴스타인(Roy Lichtenstein)이 BMW 320i의 도색을 맡았다. 작가가 주로 사용했던 두꺼운 검은색의 윤곽선과 화려한 색감, 그리고 ‘벤 데이 도트(Ben Day dots)‘를 입힌 자동차의 모습은 경쾌했다.
이런 경쾌함은 제프 쿤스(Jeff Koons)의 결과물에서도 동일하게 느낄 수 있다. 제프 쿤스는 2010년 BMW M3GT2를 작업하며 그만의 감성을 드러냈다. 두 작가 모두 팝 아트를 대표하는 예술가이기에, 유사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듯하다.
BMW 아트카 시리즈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바로 앤디 워홀(Andy Warhol) 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자동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79년 BMW M1 레이싱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아트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팝 아티스트의 디자인 덕분에 자동차 역사상 가장 가치 있는 자동차 중 하나가 되었다.
워홀은 차의 빠른 속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28분 만에 6킬로그램 이상의 페인트를 차에 흩뿌렸고, 그 덕분에 독특한 컬러와 패턴이 차에 새겨지게 되었다. 작가는 “자동차가 정말로 빠르게 주행할 때, 모든 선과 색은 흐릿하게 변합니다.”라며 작업 과정을 설명했다. 이 아름다운 차는 경주에서도 6위라는 성적을 내며 성능 면에서도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 밖에도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1976년), 에른스트 푸크스(Ernst Fuchs)(1982년),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1986년),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1995년), 제니 홀저(Jenny Holzer)(1999년)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BMW의 경주용 자동차를 캔버스 삼아 작품 활동을 펼쳤다.
2000년대가 넘어서면서 아트카에 도색 이외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이 접목되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007년에 선보인 아트카는 이전에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작업을 맡은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이 BMW의 H2R를 거대한 얼음 고치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차체에 여러 겹의 철망을 두르고 매일 물을 뿌려 얼리는 작업을 진행했다. 예술가이자 환경 운동가로 활동하는 작가다운 발상이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지속 가능한 에너지와 지구온난화의 연관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수소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보다 극적으로 알리는 데 도움이 된 작품이 아닌가 싶다.
2017년 중국 멀티미디어 예술가 카오 페이(Cao Fei)와의 협업 또한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실제로 볼 때에는 M6 GT3의 검은 차체만 보이지만, 아트카 전용 앱을 통해 보면 차 위로 다양하고 화려하게 떠 있는 불빛들을 볼 수 있다. 작가는 현재 경주용 차에서 사랑받고 있는 카본 소재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현실과 가상을 혼합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자동차 성능을 높이는 노력과 더불어 동시에 최고 성능의 차를 더욱 주목하게 만드는 아트카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기술과 예술의 조화가 얼마나 아름답고 대단한지를 보여준다. 전체 아트카 시리즈에 대한 다양한 정보는 BMW 홈페이지 및 어큐트 아트(Acute Art) 앱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글 박민정 객원 필자
자료 출처 press.bmwgroup.com, bm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