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04

전시 관람에 ‘쉬운 정보’가 왜 중요한데요?

전시 정보가 쉬워진다면, 미술관에는 무슨 변화가 생길까?
하나의 전시를 보게 되는 과정을 찬찬히 떠올려 보자. 관심 분야의 전시가 열린다는 정보를 (주로 온라인을 통해) 접한다. 언제 어디서 진행하는지 확인하고,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면 예약한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전시장까지 경로를 찾고 전시장에 도착한다.
소소한소통은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에서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정보 약자를 위해 미술 작품에 대한 쉬운 해설 레이블을 제작했다. 사진 출처: 소소한소통 비핸스

관람하는 중에도 작품뿐 아니라 작품 이해를 돕는 수많은 정보를 알게 모르게 습득한다. 간단하게는 작가의 이름이나 작품의 제목, 제작 시기나 사용 재료 등이 있을 것이다. 전시 기획 의도나 작가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긴 글도 필요한 자료다.

다음 전시실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동선을 파악해야 한다. 화살표를 따라가거나 계단을 오르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는 아예 건물 밖으로 나와 가까운 다른 건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는 화장실 표지판을 찾아 움직인다. 모든 행위가 정보를 따라가며 이뤄지는 셈이다. 그러나, 이 정보가 모든 사람에게 유효할까?

사진 출처: 소소한소통 비핸스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정보 약자를 위해 쉬운 정보를 만드는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이 <모두를 위한 전시 정보 제작 가이드>를 펴내고 배포한 이유는 위 질문과 이어진다. 2017년 창업한 이후, 소소한소통은 장애인의 권리나 안전부터 복지, 취업, 자립, 문화여가 등 일상 전반에서 필요한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소소한소통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근로계약서와 선거 교육자료를 제작·배포하고, 인지하기 쉬운 사이니지를 디자인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과 협력해 쉬운 전시 해설을 제공하기도 했다.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 왔음에도, 이들은 자신들의 노하우와 지침을 아낌없이 담은 <모두를 위한 전시 정보 제작 가이드>를 만들어 무료로 공개했다.

〈모두를 위한 전시 정보 제작 가이드〉 ⓒ 소소한소통

이들이 6개월에 걸쳐 만든 가이드에는 누군가의 삶을 확장하는 쉬운 정보의 의의는 물론, 전시 관련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고려할 사항이 옹골차게 들어 있다. 소소한소통은 왜 이러한 가이드를 만들었고, 무료로 배포했을까? 전시 기획자는 물론 더 많은 사람에 가 닿는 콘텐츠를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될 <모두를 위한 전시 정보 제작 가이드> 이야기를 소개한다.

Interview with 주명희 소소한소통 총괄본부장

<모두를 위한 전시 정보 제작 가이드> 제작기

지난 8월 8일 <모두를 위한 전시 정보 제작 가이드>를 공개했습니다. 이 가이드를 기획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전시 작품 해설을 쉽게 제공하는 프로젝트들을 다수 진행하면서 ‘쉬운 정보’가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음을 확인했고, 더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작품의 쉬운 해설 제작은 이전까지 소소한소통이 해온 일과 겹치는 부분이 분명히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다른 고민과 관점이 필요한 작업이라는 것도 알게 됐고요. 발달장애인뿐 아니라 예술 작품 감상을 어렵고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시 정보가 쉬워졌을 때 관람이라는 행위에 한층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판단했어요.

구성 순서. ‘목차’가 아닌 ‘순서’로 쓴 점이 눈에 띈다. ⓒ 소소한소통

성심껏 만든 가이드를 무료로 배포하기로 한 이유이기도 하겠군요.

이런 작업이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는 데 쓰이길 바랐습니다. 발달장애인을 비롯해 더 많은 관람객이 전시를 누릴 수 있도록 더 확산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미술관과 박물관은 모두를 위한 곳이니까요.

존재하는 다양한 관람객을 떠올려 볼 것. 10쪽 ⓒ 소소한소통

특히 ‘정보를 누구에게나 쉽게 제공하는 일’에 집중하는 듯합니다. 정보 접근성은 왜 중요할까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모르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보를 통해 삶의 크고 작은 일들을 선택하고 결정하며, 이런 경험들이 쌓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저마다 다른 모습이 됩니다. 쉬운 정보는 문해 수준을 보다 포괄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정보에 접근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쉬운 정보를 통해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보다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거죠.

<쉬운 정보, 만드는 건 왜 안 쉽죠?> 중 발췌

 

“아! 그게 차별이구나. 이제 알았어요.

앞으로 나에게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있으면 차별이니까 하지 말라고 할 거예요.”

– 차별, 학대 관련 쉬운 정보를 본 A

“오늘 회사에서 소소한소통이 만든 근로계약서로 계약했어요.

내용이 쉬워서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지 않고

회사와 하는 약속이 어떤 건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 쉬운 근로계약서로 근로 계약을 체결한 B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모르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보를 통해 삶의 크고 작은 일들을 선택하고 결정하며,

이런 경험들이 쌓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저마다 다른 모습이 됩니다.

주명희 소소한소통 총괄본부장

— <모두를 위한 전시 정보 제작 가이드>는 상세하고 쉬운 예시를 담아,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고 누구나 쉽게 적용해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가이드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이었어요?

소소한소통은 쉬운 정보를 실제로 다양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교육을 의뢰받아서 다수 진행해 왔습니다. 그런데 쉬운 정보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실제로 적용을 해보려면 직접 고민하고 써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쓰기’ 실습을 기반으로 한 교육을 많이 권유하고 있어요. 2022년 11월에는 서울시립미술관과 함께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글 작품해설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같은 내용을 쉽게 써보라고 하면 열 명이면 열 명 모두 다르게 씁니다. 이 문장은 이렇게 쓰고, 저 문장은 저렇게 쓰면 된다는 식으로 공식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죠. 다만 정답이 없는 일을 가능하게 하려면,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지양하거나 지향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정도는 지침으로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토대로 참고할 수 있는 사례를 함께 제시하면 여러 전시에 적용해 보는 데 실질적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쉬운 해설 작성 시 체크해야 할 점 일부. 27~33쪽 ⓒ 소소한소통
쉬운 해설 예시. 35쪽 ⓒ 소소한소통

‘쉬운 정보’를 위한 가이드 중 하나인 만큼, 원고 작성은 물론 배열, 서체 등 레이아웃 디자인까지 두루 신경을 썼어야 할 것 같아요. 기획부터 원고 작성, 교열, 디자인 등 책 한 권을 만드는 과정은 어땠나요?

제작하는 데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어요. 3개월 정도를 예상했는데 6개월 가까이 소요되었습니다. 이 기간 중 거의 5분의 1을 기획과 원고 작업에 사용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노하우들을 기존 저희가 가진 지침과 유기적으로 연결해 정리해야 했고, 그간 작업해 왔던 사례들과 해외 유사 사례, 자료까지 총망라해서 보다 보편적으로 적용해 볼 수 있는 방향과 범위로 다루기 위해 메시지를 좁히고 다듬는 과정도 필요했거든요. 신뢰할 수 있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기에 팩트를 체크하고 검증하는 과정도 마지막까지 반복했습니다.

쉽게 바꾼 캡션을 간결한 디자인으로 보여준다. 41쪽 ⓒ 소소한소통

디자인 면에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요.

모든 편집 디자인 작업이 그렇겠지만, 내용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으면서도 보기에도 좋은, 두 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하려고 노력했어요. 연구자료처럼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가벼워 보이지는 않았으면 해서 글과 디자인 모두에서 이런 부분을 신경 썼던 것 같습니다. 가령 이 가이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전시 정보 파트의 예시를 만들 때는, 원문 해설과 쉬운 해설을 어떻게 담아야 더 직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또 글로 된 내용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려 한 부분은 이미지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더했고요. 한편 애초부터 무료로 배포하기로 기획했기 때문에, 개인이 프린터로 출력했을 때나 웹으로 PDF를 보았을 때 모두 편안하도록 고려해서 편집했습니다. 표지 디자인을 맡은 담당 디자이너는 이 가이드에 접근성에 대한 다양한 메시지가 담겨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어요. 표지에 수어 이미지가 들어 있는데요, 이 수어는 ‘걷다’라는 의미입니다.

표지. 왼쪽 페이지에 수어 이미지가 들어 있다. 이 수어는 ‘걷다’라는 뜻이라고. ⓒ 소소한소통

이번 가이드는 어떤 역할을 할까요?

‘예술이 굳이 쉬워야 하는가?’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쉬운 해설은 예술이라는 낯선 땅에서 길을 잃거나 엉뚱한 자리를 헤매지 않도록 돕는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정보를 알지 못한 채 자신만의 감상을 느끼는 데서 더 나아가도록 하는 거예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쉬운 해설은 작품의 매력을 놓치지 않도록, 전시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오롯이 갖고 돌아가도록 작품과 관람객을 더 가깝게 하는 매개가 됩니다.

‘예술이 굳이 쉬워야 하는가?’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쉬운 해설은 예술이라는 낯선 땅에서 길을 잃거나

엉뚱한 자리를 헤매지 않도록 돕는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주명희 소소한소통 총괄본부장

또 이 가이드는 어떤 분들이 활용하면 더 좋을까요?

특정한 누군가만을 위한 전시가 아니라, 누구나를 위한 전시에 대해 고민하는 전시 기획자, 보다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전하고 싶은 창작자에게 이 가이드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휠체어 사용자와 어린아이가 보기에 적절한 레이블 부착 위치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43쪽 ⓒ 소소한소통

쉬운 정보를 만드는 일을 하는 마음과 바람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쉬운 정보를 만드는 일을 하며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쉬운 정보가 실제 발달장애인의 ‘앎’을 돕고 발달장애인의 ‘삶’의 변화를 이끄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소소한소통은 발달장애인이 머무는 모든 공간에 쉬운 정보가 스며들기를 바라요. 이것은 우리의 미션이기도 하죠. 하지만 ‘일상’의 반경이란 너무나 넓기 때문에, 이 목표는 작은 사회적기업이 달성하기엔 어렵기도 합니다. 이번 가이드 제작을 통해 ‘전시 공간’이라는 영역으로 한 걸음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아직 쉬운 정보가 닿지 못한 분야가 많아요. 그 영역에 발을 디디는 일을 계속해 나가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공감과 협력이 꼭 필요합니다.

<모두를 위한 전시 정보 제작 가이드>

 

발행일 2023년 8월 8일

발행인 백정연

발행처 소소한소통

글·편집 반재윤, 윤선혜, 주명희

디자인 홍사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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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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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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