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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2

북극의 자연과 함께 살아온 이누이트의 삶을 표현한 건축물

풍경의 일부가 된 캐나다 ‘누나부트 헤리티지 센터’
캐나다 이누이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고, 이누이트와 비이누이트를 연결하는 공간이 생긴다. 마치 자기가 속한 풍경의 일부처럼 보이는 이 건물은 이누이트의 문화와 생활 유산을 기리는 ‘누나부트 헤리티지 센터(Nunavut Inuit Heritage Centre)'다. 누나부트는 이누이트 인구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캐나다 북부의 준주로, 이누이트 언어로 ‘우리들의 땅’이라는 뜻이다.

이누이트의 눈과 바람을 따라 그린 건물

누나부트 헤리티지 센터 예상 조감도. 이미지|MIR, Dorte Mandrup
이미지|MIR, Dorte Mandrup

덴마크 출신 건축가 도르트 만드럽(Dorte Mandrup)이 설계한 이 건물은 위에서 보면 바람이 불면서 쓸려가 쌓인 거대한 눈 더미처럼도 보인다. 바위 투성이 언덕을 깎아낸 후, 그 자리에 양 끝이 지면과 만나는 건물이 들어서도록 계획했다. 건물의 곡선은 언덕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건물과 지형 사이의 경계선을 흐린다. 건물의 옥상은 다시 바위와 잔디로 덮어 풍경 속으로 스며들게 했다. 건물이 누나부트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이칼루이트 시내와 그 너머의 광활한 툰드라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어, 옥상은 훌륭한 전망대의 역할도 한다. 벌어진 바위 틈을 닮은 건물의 창은 전면 유리를 통해 햇빛을 비롯한 바깥 날씨를 실내로 끌어들인다.

이누이트 헤리티지 트러스트(Inuit Heritage Trust, IHT)의 디자인 공모를 통해 선정된 이 설계는 이누이트의 생활을 가장 잘 반영하는 ‘칼루토카니크(kalutoqaniq)’ 바람을 주제로 했다는 점이 공모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칼루토카니크는 일정한 방향으로 불면서 오랜 세월 이누이트 선주민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을 해온 바람의 이름이다. “현지 설원의 풍경과 눈과 바람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점에서 이누이트의 문화적이고 공동체적인 유산을 기리고 공유하기 위한 장소가 되기에 가장 어울리는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언덕의 바위 지형이 건물 양 끝에서부터 이어져 옥상으로 연결된다. 이미지|인스타그램 @mir.no

누나부트 헤리티지 센터는 캐나다 이누이트 인구의 유산과 정체성을 기록할 독점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에서 출발했다. IHT에 따르면 누나부트 이누이트족의 전통 문화와 관련된 자료들은 현재 공개된 박물관이 아닌 폐쇄 시설에 보관되고 있다. 외부인은 물론이고 이누이트들 역시 자신들의 뿌리와 조상에 대해 알 수 있는 흔적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이다. IHT는 유형의 유산은 물론, 무형의 유산까지 전수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적이라는 생각에서 이 센터를 추진해왔다.

이미지|MIR, Dorte Mandrup
이미지|MIR, Dorte Mandrup

총 면적 5110 제곱미터의 이 센터는 완공 후 다양한 목적을 가진 복합 공간이 될 예정이다. 나무 조각, 카약 제작, 베리 채취와 같은 전통적인 생업과 관련한 기록 및 체험 공간과 함께 각종 점포와 오피스, 카페, 어린이집 등 일상을 위한 상업 공간들이 들어서고, 한편에는 방문객을 위한 호스텔도 운영할 계획이다. 건축가 도르트 만드럽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미래 세대에게 꼭 필요한 고유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전수할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센터를 소개했다. 또 “사물, 스토리, 공동체 활동을 통해 집단의 역사와 (현재가) 연결될 수 있다”라며 “이누이트와 비이누이트 사이의 문화적인 치유와 화해를 지원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취지를 밝혔다. 만드럽 외에도 현지 건축업체들과 컨설턴트 다수가 참여한 누나부트 헤리티지 센터는 2027년 오픈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도르트 만드럽의 또 다른 작품, 북극해를 바라보는 곡선 건물들

그린란드에 있는 일루리사트 아이스피요르드 센터. 이미지|The Icefjord Centre 페이스북
노르웨이에 있는 더 웨일. 이미지|MIR, Dorte Mandrup

도르트 만드럽의 건축 디자인 스튜디오는 이전에도 북부의 자연을 반영하는 건축물들을 디자인한 바 있다. 지난 2021년 문을 연 그린란드 유네스코 보호구역 커뮤니티 센터, ‘일루리사트 아이스피요르드 센터(Ilulissat Icefjord Centre)‘는 마치 누나부트 헤리티지 센터의 축소판처럼 생겼다. 지역 주민과 기업, 기후 연구소, 관광객들이 모두 방문하는 곳으로 이곳 역시 옥상이 전망대로 기능한다. 노르웨이 안데네스 지역에 들어설 ‘더 웨일(The Whale)’은 고래와 파도에서 영감을 얻은 곡선 형태로, 고래 생태계와 고래를 가까이서 접하며 살아온 해안 마을의 문화를 연구하고 지속 가능하도록 관리하는 곳이다.

박수진 객원 필자

자료 제공 Dorte Mandrup, Inuit Heritage Tr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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