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초량은 감탄사 ‘오!’를 풀밭에 난 오솔길을 뜻하는 지명 ‘초량(草粱)’ 앞에 붙인 네이밍이다. 100년의 시간을 품은 목조 주택의 새로운 이름에서 드러나듯 초량이라는 지역성은 공간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준다. 일본식 가옥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은 ‘적산가옥’이다. ‘적의 재산’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부정적인 시선도 오초량을 살필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 한 세기 동안 묵묵하고 고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초량의 시간은 오늘을 살아가는 세대에게 다양한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20세기의 시작과 동시에 근대화의 파도가 바다 앞에 자리한 나지막한 언덕 위의 길목 초량을 덮쳤다. <땅 이름 점의 미학>에서 저자 오홍석은 “부산의 개항과 더불어 신도시의 조성 과정에서, 초량에는 경부선의 종착역인 부산역과 해상 교통의 근원지인 중앙 부두가 세워졌다”라고 말한다. “길목에 바탕을 둔 교통 기능이 근대화된 모습으로 발전”되기 시작한 것. 부산역에서부터 텍사스 스트리트, 차이나타운, 백제병원, 초량시장, 정란각, 산복도로까지 이어지는 부산 원도심은 풀밭에 난 오솔길과 산을 깎아 매축한 초량 앞 바다 위에 형태를 갖춰나갔다. 오초량은 부산역 앞에 펼쳐지는 근대 문화 루트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근대에서 현대까지. 격변의 시대를 겪으며 문화는 다른 문화와 접촉하고 섞이면서 변화하고 새로움을 생성해 왔다. 변화의 소용돌이를 지나온 집이 오늘의 오초량이다.
1876년 오카야마현 출신으로 경부선 신설공사를 수행하기 위해 한반도에 건너온 것으로 알려진 ‘다나카 후데요시’는 20세기 초 부산 근대화 과정에서 큰 부를 거머쥔다. 경부선 철도 공사, 부산진 매축, 동해남부선 공사 등 굵직굵직한 토목 사업에 뛰어들며 기회의 땅 조선에서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이룬 것. 1925년 4월 16일, 다나카는 본인이 거주하기 위해 지금의 오초량을 짓는다. 그의 넘치는 부는 공간 곳곳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쓸모를 고민하기보다는 심미적인 만족을 위해 만들어지고 남겨진 것들이 ‘오!’ 감탄사를 내뱉게 한다. 유리창에 새겨진 꽃문양, 촘촘하고 얇은 기둥, 다양한 방식으로 마감된 동그란 창 등 섬세하고 화려한 장식부터 전형적인 일식 주택의 히로마와 도코노마, 장지문, 다다미까지 그 세부적인 디테일이 돋보인다. 한편 주택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정원의 독특한 풍경 또한 시선을 사로잡는다. 외부를 거닐면 일본 전통 건축 정원의 원형과 모란, 배롱나무, 문인석, 제주의 돌 등 한국적 요소를 함께 경험할 수 있다. 정원 한쪽 편의 2층짜리 서양식 주택이 있던 자리에는 직사각형의 긴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본래 양옥을 받치던 두 기둥만이 흔적으로 남아 이곳에 건축물이 존재했음을 간접적으로 알린다. 이처럼 오초량의 정원은 일식 정원의 구성 위에 그리스 신전을 떠올리게 하는 서양식 기둥, 기하학적 형태의 석못, 한국적 요소들이 얽히고설켜 무국적 상태를 이룬다. 다양한 국적의 것들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그려내는 무용한 아름다움. 그 이면에는 공간과 시간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담겨있다.
오초량은 1925년부터 20년간 일본인이 살았지만, 1945년 한반도가 일본 제국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80년간 한국 사람이 살며 한국 사람의 손길로 돌보아 왔다. 일본인이 떠난 뒤 남은 일본식 가옥. 국가는 물론, 누구에게도 보살핌의 의무는 없었다. 그러나 일맥문화재단의 창립자 황래성 선생은 1971년 이 목조 주택을 사들이며 직접 거주하고 보살피기 시작했다. 2000년엔 일맥문화재단에 기부되어 우리나라 근대 주택사와 생활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돼 왔다.
얼핏 해방 이후 초량의 일본식 주택이 누군가의 돌봄 아래 안온한 시간을 보낸듯하지만,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거센 변화의 물결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동시대의 변화는 바다 건너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시작했다. 오초량을 포함한 지역 일대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것. 해당 필지엔 고층 아파트 네 동이 지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맥문화재단은 오초량의 자리를 지켰고 이를 팔지 않았다. 필연적인 선택의 순간, 재단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장소에 담긴 기억과 시간의 정체성을 지킨 것이다. 결국 시공사는 100년의 세월을 견딘 일본식 주택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 재개발 필지의 다른 오래된 것들을 모두 허물었다. 공사 계획 역시 변경될 수밖에 없었을 터. 지역엔 고층 아파트 네 동이 아닌 세 동이 세워졌다. 그렇게 오초량은 아파트가 삼 면에 둘러선 형국으로 다소 이질적이고 낯선 도시 풍경을 그린다.
지난 5월 10일부터 7월 9일까지 열린 개관전 <오! 분더카머>에선 또 다른 시간이 오초량 위에 포개졌다. 분더카머란 호기심의 방, 경이로운 방이라는 뜻으로 16~17세기에 유럽의 지식인들이 자신의 저택에 온갖 진귀한 사물들을 수집하여 진열하고 모아두었던 공간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물이 타 문화권에서 온 새로운 사물들이었고 이런 호기심의 방에서 유럽 문화는 더욱 확장되었다. 오초량은 본 전시에서 분더카머 즉, 호기심의 방이 된다. 기후와 풍토가 다른 지역, 각자 다른 물성과 시대적 맥락을 달리하는 미드-센트리 책상과 의자들, 100년 된 가옥의 기와, 창문. 한국 동시대 유리, 나무, 섬유, 도자 공예가 함께 놓인 풍경은 이질적이지 않고 제자리에 놓인 듯 자연스럽다.
<오! 분더카머> 전시 이후, 지난 7월 18일부터 오는 8월 15일까지 <오!초량 여름학교-지구에 쓸모>가 진행되고 있다. 도자, 조경 등 다채로운 분야의 크리에이터와 함께 지구와 우리의 삶에 쓸모를 더하는 것들을 함께 고민하고 창작하는 시간으로 4주가 채워진다. 앞으로도 오초량에선 시간과 장소의 사회적 가치를 더하는 교육, 전시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부산의 중심에서 근대 개항의 파도를 맞이한 주택. 일본식 가옥임에도 한국 사람의 시간과 생활이 더욱 많이 담긴 공간.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꿈꾸며 끊임없이 부서지고 세워짐이 반복되는 지금 도시 개발과 역사, 문화적 장소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곳. 시간의 흐름이 잠시 멈추는 도시의 작은 틈 오초량. 하지만 작은 틈에 남겨진 질문들은 절대 작지 않다. 겹겹이 쌓인 시간과 기억 위에 새겨진 공간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지켜야 하는 것과 변화하고 개발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을까. 오초량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가 아닌 하나의 거대한 질문으로 부산, 여기 초량에 놓여있다.